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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바람의 얼굴을 보라

본 눈이 최고다. 안 보면 모른다. ‘며느리감은 본 눈 있는 집안에서 골라야 한다.’ 우리 어머니 늘 하시던 말씀. 사람은 보고 배운다는 말이다. 듣도 보지도 경험하지도 못한 것은 추리하기 힘들다. 추리(推理)는 알고 있는 것을 바탕으로 알지 못하는 것을 미루어 짐작하는 것을 말한다. 붉은 고추를 보고 맵다고 생각 하는 건 고추를 먹어본 경험 때문이다. 실제로 듣고 보고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이다. 세상의 모든 책을 다 읽을 수 없고 알고 있는 지식이란 것도 세상만사에 비하면 티끌만도 못 된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것만큼 안다.

바실리 간딘스키는 원래 모스코바 대학에서 법률경제를 가르치는 교수였다. 간딘스키로 하여금 ‘미술은 사물을 그리는 것’이라는 고정 관념에서 깨어나게 한 발단은 모네가 그린 ‘건초더미’라는 단순한 구도의 그림 때문이다.

겨울 풍경을 배경으로 빛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오묘한 색채와 섬세한 붓 텃치로 제작된 건초더미 연작은 모네에게 지베르니 작업장에 집과 정원을 지을 수 있는 돈을 마련해 준 작품이다. 대상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게 그린 그림에 열광하는 관객을 보며 사물을 정확하게 그리지 않아도 훌륭한 작품이 된다고 깨닫게 된 간딘스키는 화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한 점의 그림이 한 인간의 인생을 바꾸고 추상화의 아버지로 미술사의 혁명을 주도하게 만든다. 추상화는 점, 선, 면, 형, 색 등의 순수조형 요소만으로 작가의 내면 세계를 표현한 작품이다.

한국 추상화의 선구자 남관(1911~1990)은 가시적인 것보다도 보이지 않는 인간 내면의 진실인 희로애락, 생명의 영원성 등을 정제되고 세련된 색채에 담아낸 세계적인 화가다. 매달 생활비로 보내주기로 약속한 지인이 맡긴 생활비를 사업자금으로 날려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리며 몽파르나스의 반지하에서 죽든 살든 그림만을 그린다. 벽에 물이 흐르고 침대 밑이 물이 괴어 벽돌을 바닥에 놓고 캔버스를 세워 그림을 그렸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녹 슬고 이끼 낀 폐허같이 황폐함과 처절함이 절절하게 전해오는 대목이다. 그의 처절한 사투는 한국인 최초로 1958년 파블로 피카소, 앙리 마티스, 조르주 블라크 등이 전시한 ‘살롱 드 메(Salon de Mai)’에 초대되는 영광을 가져다준다. 1966년 망퉁 국제비엔날레에서는 P.R.피카소, B.뷔페, A.타피에스 등 세계적 거장들을 물리치고 대상을 수상, 확고한 작가적 위치를 다지게 된다

바람의 얼굴은 아무도 모른다. 실체가 안 보인다. 추상화가들은 바람의 얼굴을 찿아내고 빛의 소리를 듣고 사유의 속살을 들여다 보고 영혼으로 물감을 푼다. 보이는 것만 바라보면 사는 게 궁색해진다. 인생의 길을 보이지 않는다. 하늘만 쳐다보면 구름 위 펼쳐진 하늘길이 안 보인다. 땅의 길 대신 인생의 길을 멀리 바라보면 숨통이 트인다. 실체도 없이 스켓치도 불가능한 것이 인생이라 해도, 길이 안 보여도 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바람 속에서 그대 얼굴을 본다.

예술은 사시나무로 어둠에 떨던 어깨 감싸주던 그대 다정한 손길로 험한 세상, 차가운 내일로 발길을 재촉하라 이른다. 바람의 얼굴이 없다고 말하지 마라. 수억 수만개의 얼굴로 추상화처럼 혹은 별자리로 반짝인다. 안 보여도 보이는 동그라미로 구원의 십자가로 스쳐가는 세월 속에 흔들리며 흐느낀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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