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마당] 빈 집
그 집은 오래도록 비어 있다가로수 그늘이 넘겨다 보고
파랑새 벌새들 가끔 그림자를
던지는 집
견디는 것은 일상이 되어
새벽으로 수십 개의 검은 화물칸을 달고 기적을 울리는
기차소리에 오래된 그 집은 흔들렸다
빗발이 들이치는 소리
좋기만 하여 창문을 닫지 않았다
햇빛이 드리울 때
두꺼운 커튼을 내리고 가만히 누워
바람이 불고 천둥이 치고
번개가 날카롭기를 기다렸다
종일토록 트렁크에 짐을 챙기고 좋아하는 시집을 손에든 채
뒤에 두고 나오는 빈집
나를 떠나 보내는 슬픈 집
연분홍 작은 꽃이 수북이 떨어져 있었는데
지금은 조막만한 모과가 무수히 달려 익어가고 있겠지
자칫 돌아가는 길을 놓치지 않을까
떠나올 때마다 한번 더 돌아보았네
눈 오는 날엔 더 꼭꼭 눌러 발자국을 남기고
비 오는 날엔 빗물로 눈물을 훔쳤네
바람이 거세게 부는 날 빈집을 두고 올 때
외투자락을 더 넓게 벌려서
마음대로 휘청이며
두고 온 빈집
들판과 계곡을 떠돌다
내가 텅 비어가고 있었네
이제 돌아가
나무 그림자 새소리 천둥소리 기적소리
낙엽 익어가는 내음이 가득 차 있는
그 빈집에 문을 열고 들어가 보려 하네
김가은 / 시인·뉴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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