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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적 드문 산길 '곰 두 마리'를 만나다

킹스캐년 14마일 7시간 '놀멍쉬멍' 산행기

산은 걸어야 제맛이다. 킹스캐년을 찾은 한인들이 기암절벽 사이로 하이킹을 즐기고 있다.

산은 걸어야 제맛이다. 킹스캐년을 찾은 한인들이 기암절벽 사이로 하이킹을 즐기고 있다.

추억은 사진으로 확실히 남는다. 한인 등산팀들이 킹스캐년 패러다이스밸리트레일에서 스핑크스 봉우리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추억은 사진으로 확실히 남는다. 한인 등산팀들이 킹스캐년 패러다이스밸리트레일에서 스핑크스 봉우리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미국에는 2019년 9월 현재 모두 61개의 국립공원이 있다. 캘리포니아에 가장 많다. 네바다주에 걸쳐있는 데스밸리, 세쿼이아-킹스캐년 국립공원(Sequoia & Kings Canyon National Parks)'으로 불리는 것을 따로 계산하면 모두 9개나 된다.

패러다이스 밸리 트레일에서 만난 곰 두 마리.

패러다이스 밸리 트레일에서 만난 곰 두 마리.

캘리포니아의 간판 국립공원은 1890년에 지정된 요세미티와 세쿼이아다. 이 둘 사이에 있는 킹스캐년도 빼놓을 수 없다. 유명세는 다소 떨어지지만 장엄한 자연만 놓고 보면 이들 지역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하늘을 찌르는 큰 나무들, 만년설 덮인 호수와 다양한 야생 동물, 거대한 화강암 사이를 콸콸콸 흘러내리는 폭포와 계곡은 오히려 방문자가 상대적으로 적은 킹스캐년에서 오히려 더 잘 만끽할 수가 있다.

미국 국립공원이 어디나 그렇듯 킹스캐년도 제대로 맛보려면 적어도 2~3일은 숙박을 해야 한다. 하지만 연휴나 여름 성수기 땐 숙박시설 잡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캠핑장도 곳곳에 있긴 하지만 자리잡기가 어렵긴 매한가지다. 마침 올해는 노동절 연휴 대학 동문회 행사 덕분에 그 어렵다는 킹스캐년 한 복판에서 이틀 밤을 묵을 수 있었다. 그 중 하루를 할애해 하이킹을 했다.그랜트 그로브빌리지 캠프장에서 차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180번 도로(California State Route 180) 끝나는 지점에서 시작해 미스트폭포(Mist Falls)를 거쳐 패러다이스 밸리 트레일(Paradise Valley Trail) 일부까지 왕복 14마일, 놀멍쉬멍 다녀온 7시간 코스였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배려

#. 새벽 별을 보느라 간 밤 잠을 설쳤다. 그럼에도 공기가 좋아서인지 아침은 상쾌했다. 삶은 계란 하나와 바나나 한 개를 조반으로 때우고 일찌감치 길을 나섰다. 180번 길을 따라 계곡으로 들어가는데 주변 풍광이 장난이 아니다. 천 길 낭떠러지를 곁에 두고 꼬불꼬불 돌고 돌아 내려가는 길,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옆으로는 킹스리버 강물이 나란히 달린다. 눈 녹은 물이 흘러내린 킹스리버(South Folk Kings River)다.

킹스캐년 강물소리


로드 엔드(Roads End)에 도착하니 아침 8시. 부지런한 등산객들은 이미 삼삼오오 모여 출발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등산화 끈을 조여 맨 뒤 바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타박타박 터벅터벅. 일정하게 걸음을 옮기면서 가끔씩 고개를 들어본다. 짙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가파른 암벽들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다. 나뭇가지 사이를 헤집고 쏟아지는 햇살이 부챗살처럼 눈부시다. 모자를 고쳐쓰고 선글라스도 닦아 다시 끼어본다.


시원하게 흘러내리는 계곡물을 따라 한참을 걷다보니 갑자기 주위가 어두워진다. 쭉쭉 뻗은 울창한 나무 숲이다. 발 아래엔 웃자란 고사리가 지천으로 널렸다. 거대한 나무 둥치엔 연두색 이끼가 가득하고 그 위로는 이름모를 넝쿨들이 얼키설키 흘러내린다. 마치 영화 속 정글 탐험대가 된 기분이다.

길은 조금씩 더 가팔라진다. 안내 책엔 별로 험한 코스가 아니라고 나와 있지만 산길 치고 만만한 길이 하나라도 있었던가. 어느새 이마에 땀이 맺히고 호흡은 거칠어진다. 그에 비례해 머릿속은 계속 더 맑아진다. 무념무상. 내 주장은 옳고 네 주장은 틀렸다며 모두가 악악대고 와글거리는 광기의 시대에 그래도 이런 시간만큼은 그런 악다구니로부터 떨어져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숨을 고른다. 인적 드문 외길임에도 고르게 손질해 놓은 돌계단이 여기저기 보인다. 등산객을 위한 자상한 배려다. 사람 손길이라고는 전혀 미치지 않은 자연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또 누군가의 신세를 진다. 그러면서 아무리 높은 지위, 많은 재물을 가졌다 한들 저 혼자 잘 난 성공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이런 데서 다시금 깨닫는다.

그렇게 두어 시간 남짓 걸었을까. 쿠르르 물소리와 함께 습한 공기가 훅 밀려온다. 미스트 폭포다. 엷은 안개라는 이름 그대로 폭포에서 튕겨 나온 물방울들이 안개처럼 흩어져 얼굴까지 날아온다. 폭포 아래에선 몇몇 아이들이 줄낚시를 하고 있다. 마침 무엇인가를 낚은 듯 환호 소리가 들린다. 가까이 가서 보니 의기양양, 잡은 물고기를 흔들어 보여 준다. 무지개 송어(Rainbow trout)다. 얼음처럼 차가운 심산유곡에 이런 예쁜 물고기가 살고 있다니.

하긴 미국의 자연은 야생 동물 천국이다. 코요테, 사슴, 너구리, 방울뱀 따위는 웬만한 주택가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운이 좋거나, 혹은 운이 나빠도 산양이나 곰, 산사자 같은 큰 동물과 맞닥뜨릴 수 있다. 이번 산행에서도 행여 그런 동물을 대면할 수 있을까 기대했다. 그런데 그 기대가 현실이 되었다.

힘들다면서 왜 산에 가나

#. 폭포를 지나 한 시간 쯤 더 올라간 지점. 길섶으로 이상한 낌새가 느껴져 고개를 돌렸더니, 으악! 흑곰 두 마리다. 불과 5~6미터 거리. 어미 곰과 그 뒤를 따르는 작은 새끼 한 마리가 지나간다. 일순 덜컥 겁이 났지만 우리 일행 숫자가 더 많아서인지 오히려 녀석들이 먼저 피한다. 순간적으로 스마트폰을 꺼내 셔터를 눌렀다. 어미곰은 달아나고, 그 와중에도 아기 곰은 뭐가 궁금한지 연신 내쪽을 돌아본다. 어린 것의 호기심은 동물이라고 다를 게 없는 것같다.

킹스캐년 곰 두마리



곰을 만나고 나니 더는 올라가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제법 높이 올라오기도 했거니와 저녁 일정도 있어 결국 그쯤에서 발길을 돌리기로 했다. 멀리 건너편 말발굽처럼 패인 자국 위에 뾰족하게 솟은 스핑크스 봉우리(The Sphinx, 9143ft)를 배경으로 여러 장 사진을 찍었다. 그래도 아쉽다. 아무리 인간 기술이 발달했다 한들 고작 담아낼 수 있는 건 언제나 찰나이고 부분인 것을. 그럼에도 악착같이이 순간을 붙들어두려는 것은 인강의 나약한 기억이 미덥지 못해서일 것이다.

#. 오늘로 킹스캐년을 누비고 온지 닷새 째다. 얼마나 됐다고 다시 몸이 근질거린다. 사실 등산은 갈 때마다 온 몸이 비명을 내지를 만큼 힘이 든다. 숨은 차고 발바닥은 아프고, 때론 무릎까지 시큰거린다. 그럼에도 또 때가 되면 마음이 들썩이고 다시 산을 찾게 되는 것은 왜일까. 산과의 대면 만큼 아무런 불순물 섞이지 않는 완벽한 만남이 없어서일지 모른다.

내 몸이 견딜 수 있을 만큼 걷고 또 걸을 수 있는 산. 그러다가 힘 다한 곳 아무데서나 철퍼덕 쉬었다가, 아무런 흔적 남기지 않고 홀연히 돌아올 수 있는 산. 그것 때문에 또 한사코 산을 찾는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우리는 이 땅에 손님처럼 왔다가는 인생이 아니던가.

여행정보

숙박=180번 길을 따라 공원 안으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나오는 곳이 그랜트 그로브 빌리지다. 이곳의 존 뮤어 랏지나 주면 캐빈을 이용하면 된다. 캠핑 사이트도 많다. 단, 언제나 수요가 많으므로 예약은 재주껏 해야 한다. 180번 길이 끝나기 직전에 있는 시더 그로브빌리지는 캠퍼라면 누구나 꿈꾸는 '꿈의 야영장'이다. 킹스리버를 끼고 320여개의 캠프 사이트가 있다. 대부분 선착순으로 이용할 수 있다.

가는 길=LA에서 5번프리웨이를 따라 북상하다 99번으로 갈아타고 프레즈노까지 계속 올라가서 180번을 만나 동쪽으로 끝까지 가면 공원 매표소가 나온다. 입장료는 35달러. 80달러 애뉴얼 패스를 사면 전국의 국립공원은 1년 동안 무제한 사용할 수 있다. 공원 안에는 수많은 트레일이 있으니 체력과 시간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아쉽다면 여기도…

▶로어링 리버 폭포(Roaring River Falls)
시더 그로브 빌리지에서 180번 동쪽으로 3마일 거리에 있다. 차에 내려 5분만 걸어가면 나온다. 하얀 포말로 부서지는 폭포가 장관이다.

▶보이든 동굴(Boyden Cavern)
180번 길, 킹스리버 강 옆 절벽에 있는 종유 동굴이다. 그랜트 그로브와 시더 그로브 중간쯤에 있다. 입장료는 13세 이상 16달러, 5~12세 8달러, 4세 이하 5달러.

▶제너럴 그랜트 트리(General Grant tree)
자이언트 세쿼이아 나무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나무다. 키 81.5m. 밑둘레 32.8m. 수령 1650년. 그랜트 그로브 비지터센터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세계 최대 나무는 세쿼이아 국립공원 있는 제너럴 셔먼 트리다.

▲흄레이크(Hume lake)
그랜트그로브 지역서 10분 거리에 있는 멋진 호수다. 180번 길을 타고 10분쯤 안으로 들어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호수 입구 팻말이 보인다. 크리스천 캠프 휴양지로 다양한 위락시설이 갖춰져 있다.


이종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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