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마비는 '교훈'…세계 여행은 '덤'
이하성·이형숙 부부
지난 5월부터 석 달간 터키를 비롯해 발칸반도 8개국과 중앙아시아 4개국을 여행하고 지난달 돌아온 이하성·이형숙 부부를 패서디나 자택에서 만나봤다. 만남은 여행 무용담을 듣는 것만으로도 유쾌했지만 부부의 소박한 삶과 지혜를 엿볼 수 있어 더 즐거웠다.
#여행에 미친 닥터 부부
이들 부부가 제대로 여행이라는 걸 시작한 계기는 1996년 이 전문의가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병원신세를 진후부터.
"1979년 LA한인타운 VIP플라자에 개원한 이래 그때까지 병원 문 닫고 휴가 간다는 건 꿈에도 생각 못했죠. 그런데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니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생 세상구경이나 실컷 하자는 생각이 들더라고요.(웃음)"(이하성)
그래서 1997년 큰 맘 먹고 병원 문을 2주간 걸어 잠그고 갈라파고스로 여행을 떠난 걸 시작으로 막내아들이 대학 졸업하던 해인 2000년부터는 본격적으로 팔 걷어 부치고 세상 구경에 나섰다. "그전까지는 시간도 없었고 2남1녀 학비 대느라 경제적 여유도 없었죠. 그러다 막내가 졸업하면서 그동안 학비 내던 돈으로 좋아하는 여행을 다니자 결심한 거죠.(웃음)"(이형숙)
그래서 2000년 이집트를 시작으로 부부는 지난 20여 년간 남극, 남미를 거쳐 실크로드를 횡단하고 중앙아시아에서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100여 개국 이상을 여행했다. 그리고 2009년 '여행에 미친 닥터 부부' 1권을 필두로 지난 10년간 여행기 3권을 출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 부부에게 여행은 단순한 세상 구경 이상의 의미가 있다. 이들에게 오지 여행은 곧 무료진료 봉사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연세대 간호학과 졸업 후 미국에서도 간호사로 일한 아내와 이 전문의는 여행을 떠나기 전 회충약이며 항생제, 진통제, 비타민 등 각종 의약품을 비롯해 칫솔, 문구, 생필품 등을 이민가방에 한 보따리 준비한다.
"의사를 보기 힘들고 약도 귀한 지역이 아직도 세상엔 참 많이 있어요. 그런 오지를 여행할 때면 꼭 시간을 내 진료도 하고 필요한 약과 생필품을 나눠주기도 하죠. 몸은 고되지만 여행보다 더 값지고 보람 있는 시간입니다."(이하성)
#아름다운 인생 2막을 꿈꾸며
부부의 은퇴는 미리 계획 된 것은 아니었다. 의사가 천직이라 여겼던 그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진료를 계속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5년 전 건강이 악화되면서 어쩔 수 없이 병원 문을 닫아야 했다. 이후 투병생활로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헌신적인 아내 덕분에 그는 건강을 되찾아 지금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고 활기찬 시간을 보내고 있다. 특히 요즘 그가 몰두하는 것은 성경공부와 서예, 그리고 건강강의 준비다. 강의 주제는 현대인들이 가장 관심 많은 성인병과 암. 이는 그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기에 실생활에 필요한 정보로 가득하다. 강의는 주로 동창회, 한인단체, 교회 등에서 이뤄지는데 건강에 관심 많은 중장년층들과 시니어들의 반응이 뜨겁다. 형숙씨 또한 주변에서 미국병원 통역 요청이 있으면 언제고 달려가 도와줄 만큼 부부의 한인커뮤니티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
"이민 와 40여년을 한인커뮤니티와 함께 했으니 그 마음이 남다를 밖에요. 앞으로도 한인사회를 도우며 살 수 있다면 이보다 더 보람 있고 감사한 일이 어디 있겠어요."(이형숙)
결국 이 부부가 환자를 돌보고 세상을 탐험하며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것은 따뜻한 사랑과 소망일지도 모르겠다.
이주현 객원기자 joohyunyi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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