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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대결한 개인… 최인훈의 걸작들

타계 1주기 맞춘 중·단편선
일제 폭력 그린 ‘달과 소년병’
한·일 관계 비추는 ‘총독의 소리’
빼놓을 수 없는 9편 수록

생전 최인훈 작가의 모습. [일러스트=오정택]

생전 최인훈 작가의 모습. [일러스트=오정택]

달과 소년병

최인훈 지음
문학과지성사


'광장'의 작가로 잘 알려진 최인훈의 새 소설집이 묶여 나왔다. 1년 전, '4.19 세대'를 대표하는 한국 문학의 거장의 타계 소식에 가슴 아파하던 독자들에게는 반가운 전언이다. 4.19혁명이 일어난 직후, 불과 7개월 뒤 나온 소설 '광장'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린 '새벽 별' 같은 작품이었다. 그가 통과했던 한국 현대사는 그야말로 격동기 자체였다. 고향을 이북에 둔 월남민인 최인훈은 직접 경험한 역사의 질곡을 소설로 승화시킨 작가였다. 그의 소설에는 일제 강점기 식민지인의 비애, 남북 분단의 아픔, 5.16과 유신 체제를 겪는 지식인의 고뇌 등이 남김없이 녹여져 있다. 더욱이 그의 소설의 뛰어난 이유는 '세계 속의 일원'으로서 살아가는 약소국 국민으로서의 의식을 예리하게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소설에는 항상 생생하게 살아있는 개인, 그리고 그가 치열하게 대결하는 대상으로서의 세계가 존재한다.

이번 선집에는 등단작 '그레이 구락부 전말기'(1959)와 표제작 '달과 소년병'(1983), 수많은 독자에게 읽혀온 중편 '구운몽'(1962), 작가 개인의 이야기가 반영된 '느릅나무가 있는 풍경-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연작 제1장'(1970) 등 총 9편의 중.단편소설이 실렸다. 하나라도 놓치면 안 될, 최인훈의 대표 걸작들이다. 그러나 특히 독자와 문학 연구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킬만한 작품은 '최인훈 전집'에 수록되지 않았던 단편인 '달과 소년병'일 듯 싶다. 이 소설에는 일본군에 의해 가족을 잃은 한 독립군 소년이 등장한다. 아이가 겪는 가슴 아픈 상황을 통해 작가는 국가와 이념이 가하는 폭력의 무게를 냉정하게, 그러나 뼈아프게 보여준다.

최근 뜨거운 관심사로 떠오른 한일 관계와 관련해서 다시 한번 일독을 권할만한 작품도 있다. '총독의 소리' '주석의 소리'가 그것이다. '총독의 소리'는 조선총독부 비밀 조직이 아직 한국에 남아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송출하고 있다는 역사적 가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실지회복(失地回復), 반도의 재영유, 이것이 제국의 꿈입니다. 영토에 대한 원시적인 향수, 이것이야말로 참다운 강자의 활력의 기초입니다"라는 가상의 담화를 작금의 현실 속에서 재독하는 일은 치열한 지적.정서적 모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1960년대 한일 관계라는 역사적 배경 속에서 쓰인 이 소설은 지금, 2019년에 읽는 어떤 텍스트보다 '현대적'이다. 그는 식민주의와 제국주의가 약자에게 가하는 폭력을 쉼 없이 비판했던 시대의 양심이었다.



이제와 새삼스럽게, 최인훈이 정치와 역사라는 거대 담론에만 몰두해 인간의 삶과 실존적 상황을 외면했던 작가가 아니었음을 강조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그의 시선이 세계와 역사를 향할 때도 손과 발, 그리고 의식이 가장 투철하게 뿌리박고 있던 대상은 다름 아닌 '인간' 자신이었다. 특히 이번에 출간된 선집은 최인훈의 작품들 가운데서도 난해하다는 평가를 받는, 인간 무의식의 불가해한 영역을 깊숙이 탐색한 소설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인간 내면의 무의식이 만들어낸 "상상적 현실"(이광호)을 감각적으로 그린 '웃음소리' '가면고' '구운몽' 같은 작품이 작가의 색다른 이면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급진적인 소설적 실험들을 통해 작가가 궁극적으로 도달하려는 경지는 무엇이었을까? 이 선집의 해설을 쓴 이광호 평론가는 "'네이션'의 이념을 넘어서는 급진적이고 불온한 욕망"으로서의 '사랑'이 그를 끊임없이 다른 차원으로 밀어붙이는 원동력이었다고 진단한다. 역사적 상상력과 미학적 실험의 극점에서 인간에 대한 사랑을 발견하는 길, 최인훈의 소설은 시대를 뛰어넘어 이 과정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문학평론가 이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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