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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로그인] 윈스턴 홀세일몰의 '인종 풍경'

윈스턴 홀세일몰의 북쪽 입구에는 이라니안 부부의 잡화점이 있다. 콧수염 두둑한 아르메니안이나 히잡 쓴 여인들이 지나치다 몰 안으로 들어서는 시작점이다. 옆 잡화점에서는 말솜씨 좋고 인심 후한 한인 여주인에 바지런한 히스패닉 헬퍼가 온 동네 손님들을 자석처럼 끌어모은다.

긴 통로 중앙에는 춤추는 엘비스 프레슬리나 우스꽝스러운 버블 헤드를 파는 대만 부부의 취미용품점이 흑인 커스토머들을 단골로 두고 있다. 가톨릭 성모상에 종류도 다양한 천사 조각상이 매일 한두개씩 깨져 나가도 그러려니 하는 장식품점의 주 고객은 히스패닉이다. 본토 중국 출신의 여주인은 앞집 대만 부부와 북경어인지 민난어인지 모를 그들만의 언어를 주고받고 도시락을 나누며 자매처럼 지낸다.

남쪽 입구에서 쇼케이스 하나 놓고 체인월렛과 라이터를 파는 젊은 남자는 히스패닉이다. 멕시코 깃발 펄럭이는 출입문 앞에서 하루 종일 라틴 채널 라디오를 틀어놓고 사람 좋은 미소를 날리며 지나는 행인들을 쇼핑몰로 이끈다. 몰 바깥 스트리트 파킹 미터기 앞의 깡마른 흑인 남자는 미터기 시간이 다 되면 쿼터를 넣어 시간을 벌어준다. 뒤늦게 허둥대며 달려온 히스패닉 손님이 그라시아스를 연발하며 팁을 건넨다.

가장 큰 잡화점의 한국인 주인은 쇼핑몰의 읍장이다. 이라니안이건 차이니즈건 멕시칸이건, 가게 주인이건 손님이건 헬퍼건 대동단결 하소연하고 의논하고 울고 웃으며 그를 찾는다. 매일 드나드는 세일즈맨은 코리안, 차이니즈, 인디안, 멕시칸, 살바도리안에 말레이시안까지 제각각의 ‘장기’ 가 있다. 덕분에 한국서 들여온 고급 액세서리에 다양한 인도 가죽용품에 중국 현지 공장과의 잡화 직거래가 저렴하게 펼쳐진다.

한낮에는 소시지 김밥을 찾는 히스패닉과 도넛에 한국 믹스 커피를 주문하는 흑인과 사발면 뚜껑에 나무 젓가락을 올려둔 차이니즈가 좁은 스낵숍 안을 요령껏 오가며 행복한 점심을 즐긴다. 4.29 폭동 때 코리아타운에서의 무용담을 수년 째 반복하는 스낵숍 사장과 그 얘기에 서슴없이 엄지를 치켜드는 흑인 손님도 그곳에 있다.

다운타운 토이 디스트릭트의 작은 홀세일 몰 안에서 그들은 다같이 그렇게 ‘덕분에’ 살아간다. 그가 있어 멀리 브라질에서 현금 다발 두둑한 빅 커스토머가 찾아오고 그가 있어 아르메니안 소매상이 부담없이 가게에 발을 들이며 그가 있어 흑인 잡화상이 집집마다 기웃대며 흥정을 한다.

그가 있어 예수 조각상과 함께 생뚱맞은 지갑 한 다즌이 팔리고 액세서리 단골이 어느날 문득 백팩을 라이터를 팔아보자고 옆가게에 들어선다. 몰 안에 어느 조각 하나도 빠지면 안될 퍼즐같은 공생의 현장이다.

인종을 녹여낸 용광로까지 바랄 필요도 없다. 샐러드로 비빔밥으로 어우러지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만들어지고 존재 이유가 생겨난다. 서로의 차이에서 서로의 소중함을 배우고 감사하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나는 미국의 맨 얼굴을 보았고 미국 사회의 귀한 정신을 배웠다.

'히스패닉의 침공' - 지난 주말 엘파소에서 총기 난사로 40여명의 사상자를 낸 백인 총격범이 온라인 게시판에 남긴 선언문은 히스패닉이 텍사스를 장악할 것을 염려하였노라고, 이를 저지하고자 분연히 총격을 가했노라 외치고 있다. 하지만 그는, 그들은 진정 모르는 것인가. 우리가 사는 이 땅의 시작과 성장의 과정을, 누구의 손에도 주인의 채찍 따윈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아니 외면하는 것일까. 지금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는 '다함께' 이 사회의 주인이어야 한다는 그 엄연한 진실을 말이다.


최주미 디지털부 부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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