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목표는 현대화를 통한 글로벌 마켓 구축”
리브라더스 이어 받은 이라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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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씨 로고 현대화 작업은 3년 전부터 시작됐다. 상품 구매층이 점점 다양해지면서 한글 로고의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600 가지 이상 제품군 중 현재 150여개 이상 새 로고와 포장으로 마켓에 진열돼 있다. 손님들과 매장 책임자들 및 지인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어 감사하다. 한꺼번에 모든 제품군을 싹 다 바꾸지 않은 것은 구매자들의 의견을 듣고 반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기 위해서였다. 앞으로도 소통에 힘쓸 것이다.”
▷본인의 성장기와 회사(리브라더스)의 성장이 함께 이뤄진 셈인데. 그 과정에서 어떤 식으로든 기여할 기회가 있었나?
“메릴랜드에서 태어나 자라며 중고등 학생 시절 롯데 마켓 지점이 오픈할 때면 주말에 가서 카트 정리도 하고 배깅(bagging)도 했다. 아르바이트비를 받은 것도 아니고 주말에 나가 일하는 게 늘 반갑지만은 않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런 시간들이 알게 모르게 일을 배울 수 있었던 기회들이었다. 나보다 7살이 많은 형(이용빈)은 버지니아 페어팩스 지점이 오픈할 당시 매장 운영에 참여하기도 했다.”
▷대학에서 마케팅을 전공하게 된 계기는?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선택을 당했다는 편이 맞을 것이다. NYU 스턴 비지니스 스쿨(경영대학) 재학 시 1학년을 마치고 여름 방학 때 친구가 한국에 같이 가자고 제안했다. 가서 뭘 할 거냐 물으니 인턴쉽을 하지 않겠느냐고. 당연히 부모님이 환영했다. 그 친구를 통해 한국 제일기획(광고 에이전시)에서 인턴쉽을 할 수 있었다. 그 경험이 경력이 돼 뉴욕에 돌아온 후 2, 3학년 여름 방학 때 뉴욕의 광고회사에서 인턴 근무를 할 수 있었다.
NYU 경영대학 학과과정은 경영, 재무, 마케팅 등 기업경영에 대한 제반 이론을 다 가르치는데, 그 중 마케팅이 가장 나와 잘 맞았다. 졸업할 즈음 동기들 중 미취업인은 나 하나였는데, 졸업한 후 형이 자리잡은 LA로 가려고 계획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형은 그 당시 서부에 리브라더스 자회사격인 ‘Korean Farm’을 세우는 중이었다. 졸업 전 잠시 여행차 방문했을 때 동부와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진 LA 에 호감을 느껴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 처음에는 미국 광고 회사에 주니어 어카운트 관리자로 취직 했고, 그 후 닷 컴 바람이 일면서 웹 에이전시로 옮겨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직장 생활을 했다.
그 당시 인터넷 관련 회사들은 고위직 임원이 20대 후반이었고 복장 부터 근무 시간 등 모든 것이 실용적이었다. 2-3년 정도 체류할 계획이었는데 21살 경부터 33살 까지 머물며 나중에는 형을 도와 Korean Farm 에서 일하기도 했다. 그 때 지인 소개로 현재 아내(Jennie)를 만났다. 만났을 때 아내는 간호학을 막 끝내고 취업준비 중이었다”
▷리브라더스 대표직은 언제부터 맡았나?
“2007년 LA 에서 다시 메릴랜드로 돌아오면서 정식으로 리브라더스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은퇴를 고려하고 있었고 아이들(잭10, 벤 7, 에밀리 6) 교육을 위해서도 동부로 돌아올 필요를 느꼈다. 2012년 어느날 갑자기 아버지가 ‘이제부터 네가 해라’하고 말씀하셨다. 물론 그 전부터 경영에 참여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의견을 내면 ‘생각 대로 하라’고 힘을 실어주시긴 했다. 감사하고 존경하는 것은 은퇴 후 내 판단과 경영에 대해 전폭적으로 지지해 주시고 일선에서 물러나셨다는 점이다.
그런 과감한 결단이 직원들이 새로운 경영 체제에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한 몫 했다. 180여명 직원 중 상당수가 몇 십년 째 장기근속하고 있고 가족적인 분위기를 유지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들은 모두 내게 중요한 사람들이다. 회사의 성공은 직원들의 역량에 달려있고 경영자로서 그들의 삶이 안정되도록 돌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버지도 그렇게 대하셨고 그런 태도가 내게도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최고 경영자로서 비전이 있다면?
“어떤 경영자든 자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본인만의 스타일이 나오는 것이다.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재정비를 한다는 것이 꼭 그전 방법이 잘 못 됐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아버지는 정치학도였는데 비지니스의 길로 들어선 경우였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신 것이다. 나는 학습된 지식 위에 미 주류사회 직장 생활을 통한 경험들을 더해 이미 활발하게 생산활동을 하며 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기업에 체계적인 틀을 덧입혀 보강한 것이다. 설립 후 40여년 이상의 시간이 흐르면서 사회 전반에 걸쳐 모든 분야가 발전했고 사람들의 의식 수준 또한 높아졌다. 기업 또한 그 흐름에 맞춰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되고 만다.
리브라더스 또한 점진적으로 현대화하며 더욱 도약할 것이다. 그 과정들을 관통하는 기본 개념이 코리안의 정체성을 이어가되 세계화 추세와 미국내 유통 사업이라는 현실에 발맞춰 포용적인 자세를 갖는 것이다. 한국 식품을 넘어 아시안 푸드가 미국과 세계인의 식탁에 주류로 자리매김하는 것에 기여하는 것이 리브라더스의 목표다”
김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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