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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미하기 시작할 때 커피가 더 즐겁다

LA커피칼리지 연응주 학장의 커피 이야기

커피에 대한 향미(4)

전문가들이 커피의 향미를 평가하기 위한 커핑을 하고있다.

전문가들이 커피의 향미를 평가하기 위한 커핑을 하고있다.

커피를 음미하다.

소크라테스는 음미하지 않은 삶은 가치가 없다고 했다. 이를 빗대어 한국어로도 번역이 된 'Philosophy for Everyone: Grounds for Debate' 책에서 저자는 "음미하지 않은 커피는 마실 가치가 없다"라고 말하고 있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철학적 내용이 많기도 하거니와 커피를 주업으로 삼고 있는 나에게도 이 책에 담긴 커피에 대한 예찬과 철학적인 접근이 크게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철학서들이 그렇듯이 너무 형이상학적이고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여러 번 읽다 보니 내 경험과 일치하는 부분이 점차 늘어났고, 이성적으로 이해가 안 되던 부분도 마음으로 동감하기 시작했다.

지난 6년간 중앙교육 문화센터와 LA 커피컬리지 수업을 진행하면서 많은 이들을 만났다. 카페나 커피 전문점 창업을 위한 분들, 취미로 커피를 배우길 원하는, 취업을 위해 자격증이 필요하신 사람 다양한 연령대에 여러 가지 사연을 가진 이들을 많이 만나게 됐다. 이들은 공통으로 커피를 꽤나 좋아했고 이미 수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전문가 수준의 정보와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아쉬운 점은 가장 핵심인 커피의 맛과 향을 즐기는 이는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종종 수업을 시작하면서 어떤 커피를 좋아하냐고 묻곤 했는데, 스타벅스의 베스트 셀러인 캐러멜 마끼아또를 즐겨 먹는 사람이 많았고, 바닐라 라테나 모카를 즐겨 마신다고 하는 이들도 생각보다 많았다. 그리고 그렇게 맛있다고 느끼는 커피는 그 자체의 맛과 향이 좋은 커피가 아니라 시럽이나 초콜릿 등이 가미되어 달달한 맛을 내는 커피 음료를 맛있는 커피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됐다. 그중에 블랙커피를 즐겨 마시는 분들도 종종 있었는데, 커피에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향미보다 카페인 섭취가 주목적인 경우들이 많아 안타까웠던 적이 적잖이 있었다.

스페셜티 커피는 간단히 '향미 또는 풍미가 스페셜(Special)한 커피'를 말한다고 얘기했었다.

커피 아로마 키트(Scentone Aroma Kit).

커피 아로마 키트(Scentone Aroma Kit).

그렇다면 이런 스페셜한 향미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커피의 맛과 향

이렇게 커피를 마시고 평가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맛과 향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기본적인 맛에는 단맛, 신맛, 짠맛, 쓴맛, 우마미 등 5가지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넓은 의미로는 매운맛, 떫은맛, 후미도 맛의 범주에 포함을 시키고 있다.

맛을 느끼는데 있어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감각기관은 혀이다. 혀의 표면에는 유곽, 엽상, 용상, 사상이라는 4종류의 돌기가 분포하고 있다, 이들 돌기에는 미뢰라고 불리는 작은 기관이 존재 한다. 이 미뢰의 수는 사람마다 틀리기는 하나 약 5000여개가 존재하며 각 미뢰당 약 100개의 미세포가 있어 맛을 느끼게 된다. 기본적인 5가지 맛은 이 미세포에 있는 '미각 수용체'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되는 반면, 매운맛과 떫은맛은 미뢰이외의 장소에서 감지되는 화학감각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의 의문점이 생긴다. 커피뿐 아니라 맛있는 음식의 맛을 표현할 때 우리들은 단순히 달다, 시다, 쓰다 등 5가지 기본맛만으로 맛을 표현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달아도 어떻게 달며 어떤 단맛과 비슷하다는 느낌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이것은 우리가 맛을 표현할때 단순히 혀에서 느끼는 기본적인 맛으로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향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내포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과에는 사과맛이 있고, 땅콩에는 땅콩맛이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완전한 잘못된 것이다. 사실 사과에는 사과향이 있고, 땅콩에는 땅콩향이 있어 우리가 이를 맛으로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커피도 마찬가지다. 커피에서 복숭아나 살구의 맛을 느꼈다면, 이는 혀를 통해 느껴지는 맛이 아니라, 커피를 마실때 비강을 통해 복숭아와 살구의 향기 물질이 후각세포에 감지되기 때문이다.

즉, 맛있는 커피를 잘 분별하고 잘 표현하기 위해서는 향에 대한 공부와 경험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요즘 커피에 대한 연구중 많은 부분이 향에 대한 연구가 차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에 '전자코'라 불리는 GC(Gas Chromatography) 분석기기를 통해 밝혀진 바에 의하면 커피에는 5000여 가지가 넘는 향기 성분이 존재 한다고 한다. 이 수많은 향기 물질은 생두에 있는 효소때문에 발현되는 것도 있고, 발효 과정을 거치면서 가지게 된 것도 있다. 그 중에 로스팅 과정 중에 분해.생성되는 향기 물질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렇다면 커피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이 모든 향들에 대해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커피의 향미를 위해 SCA(Specialty Coffee Association)에서 개설하는 전문 관능평가(Sensory Skills)등과 같은 수업을 듣는다면 과학적으로 향을 평가하는데 도움이 되겠지만, 커피 애호가 수준에서는 여러지역의 커피를 고루 마셔보며 스스로 후각을 발전시키는 편이 현실적이며 경제적인 방법이다.

일반적으로 아프리카 이디오피아 커피는 과일의 향, 꽃의 향을 특징으로 가지며, 높은 고도에서 재배되며 수세식으로 처리되는 대부분의 콜롬비아 커피는 깔끔한 산미를 특징으로 가진다. 또한 다른 지역의 커피도 지역에 따라 구분되는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이런 특징을 하나씩 음미하면서 본인의 미각과 후각의 스펙트럼을 넓혀 나가는 과정은 재미도 있고 좋은 커피를 즐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 생각한다.

요즘은 많은 커피 전문점에서 커피 산지에 대한 정보, 로스팅 정보와 함께 커피에서 느낄 수 있는 향미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바리스타들과 커피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다양한 향미에 대한 경험치를 차근히 늘려 간다면 머지않아 커피 애호가의 수준을 넘어 와인 소믈리에처럼 화려하게 커피를 평가 할 날이 올 것이다.

좋은 커피를 얻기 위해서 많은 커피 전문가들이 산지를 돌아 다니며 발품을 팔아 맛있고 의미있는 커피를 구해오고 있다. 이들 입장에서는 소비자들이 이를 알아 주지 않는다면 좀 서운한 감정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소비자들이 커피를 음미하고 의미를 찾아 준다면 커피를 재배한 농부에서부터 음료를 정성스레 만들어준 바리스타에게 정말 큰 힘이 되지 않을까 싶다.

커피를 마실 때 카페인만을 원할뿐, 누구나 공감하는 향미를 찾기위해 커피를 음미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 것이다. 커피를 음미하기 시작할때 커피를 마시는 가치를 가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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