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마당] 습관이 지은 집

미니멀로 살며 알뜰살뜰 살림하는 내가 와인만은 떨어지지 않게 부지런히 사러 나간다. 값나가지 않는 와인을 사는 것은 아깝지도 않다. 친구들과 수다 떨며 즐기는 것도 좋다. 그러나 음악 들으며 술잔을 기울이면 더 좋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담배를 피워 물고 연기를 내뿜을 때 긴장을 풀고 눈을 지그시 감듯이, 한잔 들어가면 원래의 내 모습을 찾은 듯 심신이 느긋하게 가라앉으며 자유로워진다.
이삿집센터 인부가 뒤 포켓에서 꺼낸 납작한 독주를 들이킨 후 힘에 부치는 물건을 번쩍 들어올리는 모습에서 순간적인 술기운의 위력이 전해진다. 부엌으로 들어가기 싫은 나도 인부처럼 술 마시면서 저녁상을 뚝딱 쉽게 차린다. 남편이 싫다가도 함께 잔을 기울이면 견딜 만해진다. 그래서 권태기가 없었다고 장담할 수 있다. 맨정신으로 어떻게 한 남자와 35년을 살 수 있단 말인가? 술이 들어가면 세상이 흐리멍덩해지며 뭉게구름 위에 누운 듯 홀가분해진다. 그러니 중독이 아니랄 수도 없다.
"주말인데 그냥 한잔하지?" 저녁상에서 말이 줄어들고 재미없는 나에게 남편은 마시라고 부추기지만 적어도 자가진단 확신이 들 때까지는 거부한다. 혼자 반주하는 남편의 술벗이 돼주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면 "마시지 뭐. 까짓것. 확실히 봤지? 중독 아닌 것." 하며 다시 마시기 시작한다.
매달 식비보다 술값이 더 든다던 은퇴한 지인이 저세상으로 갔다. 주위에서 남겨진 부인이 살아갈 경제적인 면을 걱정했다. 그러나 나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왜냐하면, 만기 은퇴 연령 유족인 부인은 남편의 100% 연금을 받는다. 게다가 일단 술을 입에 대지 않는 부인으로서는 그 많던 술값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내가 처한 환경은 나의 습관이 지은 집이다.' 무서운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의 환경이 나의 습관으로 이루어졌을진대? 과연 내가 지은 습관의 집 기둥이 무너질 기미가 있나? 없나? 찬찬히 둘러봐야겠다.
일단 한잔하면서.
이수임 / 화가·맨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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