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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이민자 촌…매년 100만명 찾는 가주 명소

덴마크 마을 솔뱅

독특한 반목조 건축물 덕분에 솔뱅은 연간 1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는 캘리포니아의 주요 관광 명소가 되었다. 처음에는 솔뱅의 건물 대부분이 이 지역의 다른 건물과 같은 스타일로 지어졌다. 그러다 네브래스카 출신의 페르디난트 소렌슨이 1940년대 중반, 덴마크 여행을 하고 솔뱅으로 돌아온 후 덴마크풍의 집을 짓고  풍차를 만들어 관광객을 유치했다.

독특한 반목조 건축물 덕분에 솔뱅은 연간 100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는 캘리포니아의 주요 관광 명소가 되었다. 처음에는 솔뱅의 건물 대부분이 이 지역의 다른 건물과 같은 스타일로 지어졌다. 그러다 네브래스카 출신의 페르디난트 소렌슨이 1940년대 중반, 덴마크 여행을 하고 솔뱅으로 돌아온 후 덴마크풍의 집을 짓고 풍차를 만들어 관광객을 유치했다.

인어공주 동상이 있는 마을 입구. ‘인어공주’를 쓴 한스 크리스티앙 안데르센은 덴마크가 낳은 창작 동화의 개척자이고 전세계에 친덴마크 정서를 심은 덴마크 영웅이다.

인어공주 동상이 있는 마을 입구. ‘인어공주’를 쓴 한스 크리스티앙 안데르센은 덴마크가 낳은 창작 동화의 개척자이고 전세계에 친덴마크 정서를 심은 덴마크 영웅이다.

동북부 펜실베니아주 피츠버그는 석탄과 석유, 철광석이 매장돼 있어 공업도시로 발전했다. 1800년대에는 앤드루 카네기(Andrew Carnegie)가 철강제국을 건설했다.

카네기가 만든 피츠버그의 제철소는 공장과 철도에 철강을 공급해 미국 산업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당시 미국 철강 생산의 3분의 2가 피츠버그의 제철소에서 생산됐다.

이 지역 초기 이민자들은 영국 등 앵글로색슨(Anglo-Saxons)족 출신들이었고 1800년대 중반에는 독일인과 아일랜드인이 이주해 왔다. 철강산업이 번창하자 1880년경에는 수천명의 동유럽과 남유럽 출신 이민자들이 피츠버그 제철소 노동자로 왔다.

피츠버그하면 전쟁의 지옥같은 참상과 인간성 피괴라는 전쟁 후유증을 그린 1978년 로버트 드니로가 주연했던 베트남 전쟁 영화 디어 헌터(Deer Hunter)가 생각난다. 이 영화는 전쟁의 비극을 가감없이 보여주어 미국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영화에 등장하는 월남전에 파병된 군인들은 우크라이나 이민자 후손들인 피츠버그 제철공장 젊은 노동자들이었다. 이들은 여느 이민자 집단처럼 마을을 만들어 모여 사는 한동네 청년들이었다. 주인공들이 전쟁에 휘말리게 되고, 마을 사람들까지 전쟁의 상처에 고뇌한다는 내용이다.

솔뱅 안데르센 박물관에는 그의 삶과 작품을 소개하는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솔뱅 안데르센 박물관에는 그의 삶과 작품을 소개하는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LA에 전세계에서 제일 큰 코리아타운이 있듯이 이민의 나라 미국은 시골, 도시를 막론하고 마치 원시 씨족사회처럼 같은 민족, 같은 종교를 믿는 사람끼리 모여 산다.

미국의 이민 역사는 17세기에 약 17만 5000명의 영국인이 북미로 이주를 하면서 시작됐다. 영국 식민지 시대를 거쳐 18세기까지 미국으로 온 유럽 이민자의 절반 가량은 농장의 일꾼들이었다.

19세기 말부터 북유럽, 동유럽인 순으로 유럽 이민자가 들어왔다. 북유럽, 동유럽 이민자들이 오기 전까지는 영국과 서유럽 국가 출신 이민자들이 이민사회를 형성하고 있었다. 1907년 한 해에만 무려 130만명 가까운 동유럽 이민자들이 몰려와 1910년에는 이민자 인구가 1300만명을 넘어섰다.

이민자가 급증하자 1924년 개정 이민법을 만들어 동유럽인, 유대인, 이탈리안, 슬라브 민족의 이민자 수를 제한했다. 1965년 이후에는 1882년 중국인 배제법(Chinese Exclusion Act)으로 막혔던 동양인과 남미인들에 이민문호가 개방되었다.

LA에서 북서쪽으로 120마일 가량 떨어진 샌타바버러 카운티에 인구 5500여명의 소도시 솔뱅(Solvang: Sunny Field)이 있다. 솔뱅은 덴마크 이민자들이 모여사는 덴마크 마을이다.

1800년대 말 미네소타주로 이민왔던 덴마크인들 일부가 추위를 피해 1911년 캘리포니아에 땅을 구입해 따뜻한 곳(Solvang)이라 이름짓고 덴마크인 공동체를 설립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640년대에 뉴암스테르담(현재 뉴욕)의 인구는 1000명이었는데 그중 절반이 덴마크인일 정도로 초기 북아메리카 식민사에서 덴마크인들의 활약은 적극적이었다.

미국의 국부 조지 워싱턴의 심복이었던 한스 페비게르(Hans Christian Febiger, 1749-1796)는 덴마크계였다. 1860년부터 1930년까지 경제난으로 어려움을 겪던 덴마크인 30만명이 미국으로 이주했다.

덴마크의 이주민은 유타, 위스콘신, 일리노이, 미네소타, 아이오와, 네브래스카, 사우스다코타주에 정착했는데 덴마크계 미국인 숫자는 2009년 인구조사로 151만 6126명이다.

덴마크인들은 민족성이 강해 정착하는 곳마다 루터교회와 민족학교를 세워 덴마크어를 가르치고 정체성을 확립했다. 1911년 솔뱅에도 루터교회와 민족학교를 만들어 언어와 춤과 노래 등 민족문화를 교육했다.

그러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민족주의가 팽배해지며 덴마크어 사용이 금지되었다. 2차대전 이후 미국 민족주의가 수그러들면서 덴마크풍 스타일의 목조건물을 짓고 풍차를 만들어 관광객을 유치해 1년에 100만명이 찾는 명소로 발전했다.

지금도 덴마크 타운 솔뱅 루터 교회는 크리스마스 예배를 덴마크어로 진행한다. 마을 입구에 안데르센의 인어공주 동상이 있는 미국 속의 유럽 덴마크 타운 솔뱅은 성공한 이민자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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