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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호 역사칼럼]아메리카 역사와 사탕수수

인간은 달콤함을 매우 좋아한다. 건강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누구나 단맛을 좋아하고 찾게 된다. 적당량의 당분은 건강에도 이롭겠지만, 너무 많이 섭취하는 것이 문제이다. 설탕이 보급되기 이전에 한국에서는 주로 엿, 조청, 꿀로 단맛을 냈으나 설탕이 나타나자 그 자리를 설탕에 내주었다. 현대에는 사탕, 혹은 설탕은 단맛을 대변하는 물질이다. 그러나 이 단맛의 그늘에는 쓰디쓴 역사가 드리워져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평소에 별로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콜럼버스가 신대륙 항로를 발견한 이후 아메리카의 역사는 단맛을 내는 농작물의 역사와 상당 부분 겹쳐진다. 단맛을 내는 농작물이란 바로 사탕수수를 말하는데 이것을 재배하는 데에 수많은 노예가 동원되어 노동력을 착취당한 쓰라린 역사가 있다.

사탕수수의 원산지를 우리는 흔히 아메리카 대륙일 것이라고 막연히 추측하는 경우가 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사탕수수를 주로 재배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사탕수수의 원산지는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이다. 이 지방에는 여러 종류의 사탕수수가 아직도 야생으로 존재한다. 인도 지방에서는 기원전부터 사탕수수 줄기를 씹으면 단물이 나오는 것을 알았지만, 현대처럼 설탕으로 제조하는 방법이 없었으므로 별로 실용적인 작물이 아니었다. 그러다 기원후 5세기경 인도 사람들이 사탕수수에서 나오는 단물을 가루 즉, 설탕으로 만드는 법을 알아냈다. 이후 인도의 설탕은 중동지방을 통해 유럽과 중국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설탕 가격이 너무 높아 귀족이 아니면 도저히 맛도 볼 수 없을 정도도 귀한 물건이었다. 중국에서는 18세기까지도 설탕은 금가루보다도 비싼 물품이었다. 이렇게 비싼 설탕은 무역업자들의 중요한 거래 물품이었으며, 따라서 설탕을 운반하던 배와 상인들은 설탕을 노리는 해적을 비롯한 도적들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신대륙 항로를 발견한 콜럼버스는 2차 원정 때 사탕수수 씨앗을 가져가 아메리카 식민지에 심었으며, 이것이 아메리카에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이 생긴 시발점이 되었다. 유럽의 강대국들은 고가의 설탕이 돈을 버는 데에 매우 유용한 상품으로 보고 이에 눈독을 들이게 되고, 따라서 온화한 날씨의 아메리카 지방에는 사탕수수의 재배가 급속도로 퍼지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탕수수 재배와 설탕 제조에는 큰 노동력이 필요하지만, 노예 신분으로 전락한 아메리카 원주민을 쓰면 되기에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심한 노동과 질병에 견디지 못한 원주민들이 죽어 나가자, 유럽인들은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끌어오는 아이디어를 냈다.

유럽인 무역업자들은 중남아메리카에서 생산된 설탕을 유럽으로 싣고 가 팔아서, 그 돈으로 유럽의 상품을 사서 아프리카로 싣고가고, 노예와 물물교환한 다음, 다시 아메리카 대륙으로 가서, 노예를 아메리카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을 경영하는 농장주에게 파는 삼각무역을 했다. 이들은 삼각무역을 통해 어마어마한 이득을 남겼다. 이런 사업의 이권을 다투느라고 유럽에는 전쟁이 비일비재하기도 했다.



미국 땅에는 미국이 독립하기 이전에도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이 다소 있었으나, 본격적인 재배는 독립 이후에 미국이 루이지애나 지방을 사서 영토를 두배로 늘린 이후에 시작되었다. 루이지애나 지방을 중심으로 재배된 사탕수수를 통해 한때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설탕을 생산하는 국가인 적도 있었다. 하지만 대다수 미국의 플랜테이션 업자들은 쿠바에서 대규모 사탕수수 농장을 경영했으며 미국 국내 설탕의 수요도 주로 쿠바에서의 설탕 수입으로 충당했다. 이로 말미암아 미국은 쿠바의 종주국이던 스페인과 쿠바에서의 경제적인 이권을 놓고 서로 다툼을 하기에 이르렀다. 서로 으르렁거리던 양국은 1889년 마침내 전쟁을 벌이게 되고, 이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은 푸에르토리코, 필리핀, 괌 등 카리브해와 남태평양의 많은 영토를 얻게 되었다. 아직도 일부 미국인들은 이 때 쿠바를 미국 영토로 삼지 않았던 것을 아쉬워하기도 한다.

산업혁명이 이루어진 이후에는 설탕이 손쉽게 생산되어 현재에 이르렀다. 수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주며 세계 역사를 바꾸어 놓을 만큼 커다란 영향력을 가졌던 설탕이 현대에 와서 과잉으로 넘쳐나다 못해 이제는 건강을 위해서는 피해야 하는 물질, 즉 애물단지로 전락하다시피 했다. 아무리 효용성의 가치가 높아도 흔하게 되면 귀하게 취급받지 못하는 신세가 되는 것은 인간 사회에서 생기는 자연스런 현상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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