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꽃이 필 때
우리는 어떤 가지로 살아가고 있는지요. 나무에 단단히 붙어있음으로, 수분과 양분을 공급받아, 우리의 꿈을 하루하루 영글어나가는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가두고, 힘들게 하고, 힘으로 나를 밀어붙여 무엇을 얻어내려고 발버둥 치고 있지는 않은지요. 내가 가지임을 알고 그 안에 거할 때 비로소 그 사랑이, 그 기쁨이, 그 감사가 내 안에 저절로 충만해 지는 것이지요. 내가 꽃피우려는 노력의 결과물이 아닌 절로 내 안에 꽃이 피고 탐스런 열매가 맺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가지로 살면서 이해 할 수 없는 것들을 다 알아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해할 수 없어도 하루라는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 날 어느 순간 기억의 창고에 저장되었던 잃어버렸던 사랑이, 미움으로 그칠 뻔했던 순간이, 잠 못 이루었던 그리움이, 가슴 떠질듯한 행복이, 살을 에이는 듯 깊은 아픔들이, 무릎을 탁 치며 깨닫게 되는 날이 있게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 앞에는 모르는 것의 미덕에 대하여, 덮어야 하는 것들의 자유에 대하여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입니다. 밀밭에 밀이 자라는 소리가 들리고, 들판에 들풀의 속삭임이 들리게 될 것입니다.
꽃이 필 때
꽃이 필 때
하늘이 온다
높은 하늘이
낮은 세상으로 내려
얼굴을 부빈다
꽃이 필 때
물결이 설레인다
잔잔한 물결이
설레임으로 다가와
어깨에 기댄다
꽃이 필 때
한 얼굴이 온다
낯익은 한 얼굴이
그리운 홍조 띄고
옳은 걸음으로 온다
꽃이 필 때
하나의 설레임
하나의 그리움
또 하나의 세상이 온다 [시카고 문인회장]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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