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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빨간색 크레파스

나는 원래 공부하는 머리가 모자라 학교가 항상 문제였다. 요새도 진땀이 나는 나쁜 꿈은 주로 내가 다시 학교에 앉아 시험지를 받고 있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난 이제 늙었다고, 학교는 옛날에 분명히 졸업했다고 소리를 쳐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은 무서운 꿈. 꿈인 것이 너무 다행이라서 깨고 나면 행복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국민학교 때부터 항상 환경미화반이었고 미화반장을 해 본 일도 있었다. 나는 공부는 한심할 정도로 못 했지만 동네, 교회사람들 돌상, 잔칫상 차리는 일 등 잘 꾸미는 것으로 작은 명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한번은 엄마가 학교에 와서 나를 조퇴까지 시켜가며 아는 사람 잔칫집에 데리고 가기도 했다. "우짜겟노, 마, 지난번에 김 집사집도 안 해 줏나, 그집 사진 잘 나왔따꼬 즈그도 해달라카는데 우째 몬한다카노, 하믄만 더 해라." 엄마 생각에도, 어자피 나는 교실에 앉아있어 봤자 성적이 오를 일도 없을거란 판단이셨나 보다.

환경미화란 교실 귀 게시판을 꾸미는 일부터 교실 안에 이것 저것 붙이고 화병에 꽃을 꼽는 것 등을 하는 거였다. 꽃을 살 돈이 없으면 나뭇가지를 꺽어 꽂았다가 칭찬을 듣기도 했다. 그런데 불조심과 반공 포스터는 항상 새로 그려 붙여야 했다. 미술시간에도 가끔 사생대회 준비로 풍경화, 정물화를 그리는 것 빼고는 맨날 불조심과 반공 포스터를 그렸다. 그래서 여러 색이 있는 크레파스에 빨강색이 제일 빨리 없어졌다. 학교 앞 문방구에선 빨강색만 따로 팔기도 했다.

하루는 선생님이 반공 포스터를 새로 그려 붙이라고 하셨다. 그때는 반공교육이 학과목이 될 만큼 북한 빨갱이 마귀들, 간첩을 잡는 법 등 온갖 무서운 이야기들을 많이 들어왔었다. 그래서 어둡고 추운 방안에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뚜뚜 모리스 코드로 북한에 신호를 보내고 있는 간첩을 그리고 그 위엔 자수하여 광명 찾자 정도의 글도 써 넣었다. 빨강색 크레파스 하나를 몽땅 다 쓸만큼 으시시한 붉은 톤의 포스터였다. 그런데 여러 포스터 중 이 그림이 기억에 남는 건 그걸 그리면서 내가 막 울었기 때문이다. 가족도, 아무도 옆에 없이 혼자 외롭게, 잡힐까 무서워서 벌벌 떨면서 뚜뚜두를 보내고 있는 이 마귀같이 생긴 남자가 너무 불쌍해서였다. 이렇게 간첩을 불쌍해하다가 들키면 나도 붙잡혀 갈까봐 무서워서 또 눈물이 났다.

다음날 울면서 그린 포스터를 뒷벽에 붙였더니 선생님이 아주 잘 그렸다고 칭찬해 주셨다. 나는 또 울게 될까봐 선생님 얼굴도, 포스터도 올려다 보지를 못했다. 훗날, 결핵퇴치를 위한 NGO단체를 따라 북한에 처음 갔을 때 그 무서운 포스터와 오래 받은 반공교육 덕분에 막 무서워 떨었던 생각이 난다. 그 뒤로 몇 번을 다니면서 너무 어려운 정치 밑에 고생하는 사람들과 그들이 받은 교육 또한 무서운 걸 여러 번 느꼈다.

지금은 이 따뜻한, 정열적인 붉은톤을 자주 쓰지만, 나에게 빨강은 아직 불조심, 반공포스터 색깔인 것 같다. 이 기억의 그림자를 가진 아름다운 색깔이 지금도 조금 무섭게 느껴지기도 한다. 세뇌가 별것이 아닌 것이다.


김원숙 / 화가·인디애나 블루밍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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