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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빛나는 밤' 고흐의 마지막 마을

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sur-Oise)

고흐 그림에도 등장하는 오베르 시청사(La Mairie d'Auvers-sur-Oise).

고흐 그림에도 등장하는 오베르 시청사(La Mairie d'Auvers-sur-Oise).

'까마귀 나는 밀밭'으로 가는 길은 아름다웠다. 고뇌와 열정의 사나이를 만나러 가는 길. 길은 군데군데 파였지만 담 옆으로 예쁜 꽃이 보인다. 고흐가 좋아한 해바라기는 아니다. 그러나 보라색 리빙스턴데이지는 가슴 시리도록 아름답다. 드디어 고흐와 테오가 묻힌 파리 인근의 오베르 공동묘지 앞에 섰다. 아! 얼마나 오고 싶었던 곳인가. 고흐가 마지막 70일을 보내고 죽고 묻힌 마을.

고흐가 사랑한 오베르의 밀밭, 그는 권총을 들고 밀밭으로 들어갔다.

고흐가 사랑한 오베르의 밀밭, 그는 권총을 들고 밀밭으로 들어갔다.

고흐와 테오가 묻힌 묘지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초라했다. 고흐의 묘지 앞으로는 화려한 대리석 무덤들이 펼쳐져 있고 묘지 끝 중앙에는 프랑스 국기가 펄럭인다.

빈센트 반 고흐는 1853년 네덜란드 북부 브라반트 지방, '준데르트'에서 태어났다. 4년 뒤 동생 테오가 태어났다. 바로 고흐를 평생 뒷바라지해준 의리의 동생이다. 테오는 고흐에게는 동생이 아니었다. 오히려 부모보다 더 고흐를 인정해 주고 도운 도량 넓은 인물이었다. 테오는 15세(1872) 때부터 고흐와 편지를 주고 받았다. 당시 고흐는 네덜란드어, 프랑스어, 영어를 자유롭게 구사했다. 신학대 입학시험을 준비하던 22살 때는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공부하기도 했다. 편지는 네덜란드어, 프랑스어, 가끔 영어로 글을 쓸 때도 있었다. 성서 이야기, 신학 이론, 읽을만한 책을 테오에게 추천해 주기도 했다. 어린 테오에게 고흐는 인생의 멘토였다. 테오는 고흐와 편지를 주고 받으며 형이 천재요 열정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 우울증이 있는 고흐가 화를 내거나 광기를 부려도 테오는 그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 결혼하고 아기가 생겨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아내를 이해시키고 첫아들의 이름을 빈센트라고 지었다. 고흐가 죽자 테오는 큰 충격을 받았다. 6개월 후 테오도 숨을 거둔다.

고흐는 평생 4개국에서 서른 여덟 번이나 주소를 옮기며 살았다. 마지막 거주지가 바로 오베르 마을이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는 '우아즈 강 위에 있는 오베르 마을'이란 뜻이다. 고흐는 테오에게 편지 쓰기를 오베르는 아주 아름답고 조용한 시골 마을이라고 했다. 사실 오베르는 고흐 이전에 코로, 도비니, 피사로, 세잔 등 다른 화가들도 찾았던 마을이다.

특히 도비니는 고흐가 아주 존경한 화가였다. 그는 고흐가 마을로 오기 10년 전 세상을 떠났다. 그의 집은 현재 도비니 미술관으로 운영된다. 오베르는 고흐 이후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마을로 변했다. 2000명에 불과했던 주민수는 7000명으로 늘어났고 매년 방문객은 30만명이 넘는다.

샤를 프랑수아 도비니(Charles-Fran?ois Daubigny)의 흉상.

샤를 프랑수아 도비니(Charles-Fran?ois Daubigny)의 흉상.

방문객들은 고흐의 체취가 있는 라부 여인숙, 시청사, 마을의 계단, 오베르 교회, 까마귀 나는 밀밭, 묘지 등을 방문한다. 2020년은 고흐가 세상을 떠난 지 130년 되는 해다.


곽노은 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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