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융통성 없음'의 유용함
아직도 '코리안 타임'이라는 꼬리표를 단 사람들이 있다. 자기 시간만 더 소중한 것처럼 약속 시간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화도 나고 속상할 때가 있다.'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못산다'며 P는 나를 융통성 없음에 빗대서 꼬집는다. 한데 융통성하고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가 아닌가. 시간을 잘 지키는 것은 융통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상대에 대한 예의다.
누구 하면 '아! 그이, 말에 대한 책임과 예스 노가 분명하고 약속을 잘 지켜. 그와 약속은 신경 쓸 필요 없어'. 돈 안 드는 크레딧이다. '완전하게 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완전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 인간은 겸허한 사람'이라고 탈무드에서는 말한다. 세상에는 완전한 사람이 없다는 '변명의 방패막이'를 높이 쳐들고 노력조차 안 한다면 세상은 얼마나 함부로 막 굴러 가겠는가.
언젠가 어느 친구가 약속 시간에 한 시간이나 늦게 나타났다. 그러면서 "우리도 똑같이 다음에 그리하면 느끼는 것이 있지 않겠느냐"고 한다. 난 "아니요, 똑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요. 잘못인 줄 알면서 그럴 수는 없어요" 했다.
이민 와 무서워 운전을 2년 후에야 큰 용기를 내 배웠다. 재미있어 겁없이 혼자 연습을 했다. 운전선생은 좌회전시엔 길 가운데 맨홀 뚜껑을 바퀴로 지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거의 직각으로 바퀴를 돌리라는 뜻이리라.
그날 밤 혼자 언덕에서 신나게 내려오면서 좌회전을 하다 아뿔싸! 그만 길가에 주차한 차를 들이받고 말았다. 밤을 뜬눈으로 새고 일찍 현장에 가며 잘못을 사과하고 변상하리라 했다. 한데 막상 아침에 가보니 그 차는 타이어도 다 펑크난 못쓰는 차를 집앞에 세워놓은 것인데 조그만 흠집도 없다. 융통성없이 선생 말을 곧이곧대로 지키느라 그랬다. 순간 가슴을 쓸어내렸다.
맞다. 난 융통성을 타고나지는 못했다. 하지만, 타인의 아픔을 진정 아파하고 기쁨 또한 내 것인 양 축하하며 나눈 시간을 생각하면 돌연변이 융통성 없음도 쓸모가 있다고 생각한다. 조금밖에 가진 것은 없지만 따뜻한 마음을 나누고자 한다면 무심할 수 없다. 그것이 곧 그 어떤 것보다 더 값진 삶의 윤활유가 되기에.
흔히 사람들은 자신의 나태나 헐렁한 일 처리는 여유에서 비롯된 것이고, 약속을 잘 지키고자 하는 행동은 융통성 없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잘못 여긴다. 그런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우리 삶의 공간은 늘 불신의 수렁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나의 융통성 없음에서 비롯된 것일까.
우리는 남의 잘못에 대해서는 민감하지만 자신에 대해서는 관대하니 이 또한 모순인지 융통성인지 모르겠다. 그건 자기한테만 특권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박유선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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