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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속의 '작은 네덜란드'…정ㆍ재계에 막강 영향력

워싱턴주 국경 마을 린든

워싱턴주 국경마을 린든은 1871년 네덜란드 출신 개척자들이 정착하고 네덜란드인들이 모여들면서 1891년 3월 공식적으로 마을을 설립했다. 지난 20년 동안 인구가 두 배로 늘어 1만5000여 명의 주민이 거주하는데 네덜란드계가 반 이상이다.

워싱턴주 국경마을 린든은 1871년 네덜란드 출신 개척자들이 정착하고 네덜란드인들이 모여들면서 1891년 3월 공식적으로 마을을 설립했다. 지난 20년 동안 인구가 두 배로 늘어 1만5000여 명의 주민이 거주하는데 네덜란드계가 반 이상이다.

미국의 주류는 1600년대부터 미국의 동해안에 정착한 영국계(white anglo saxon protestant)이다. 반면 영국인에 차별받던 아일랜드인이나 독일, 동유럽의 유대인, 이탈리아, 폴란드, 러시아인들은 1800년대 중반이후 점차적으로 미국으로 이주해 왔다.

이들은 도시의 외곽이나 신개척지인 서부로 향해 삶의 터전을 개척해 나갔다. 유럽인들의 미국 이민이 늘자 원주민인 인디언들을 몰아내기 시작했다. 인디언들이 사라진 광활한 남부에는 흑인노예를 부리는 탐욕스러운 백인들의 대농장들이 들어섰다.

남북전쟁 이후 서부로 영토를 확장하면서 군대를 보내 인디언의 땅을 빼앗았다. 1887년에는 도스법(The Dawes Act)을 통과시켜 인디언 땅을 강제적으로 줄여 철도회사와 새로 유입된 유럽 백인들에게 불하했다.

미국의 대도시에는 전세계 많은 민족들이 섞여 살지만 소도시나 시골 마을은 한국의 집성촌처럼 유럽의 같은 민족끼리 또는 교회나 종파에 따라 모여 사는 곳이 많다.

자동차로 지방도로를 이용해 여행하면 미국의 시골풍경을 자연스레 접하게 되는데 대개는 마을 입구에 묘지가 있고 그 지역 주민들을 특정짓는 건물이나 상징물들을 발견할 수 있다. 캘리포니아나 워싱턴주 시골을 다니다 보면 풍차를 만들어 놓은 마을들을 발견할 수 있는데 네덜란드인 마을이다.

아이오와주 출신 화가 그랜트 우드의 대표작 '아메리칸 고딕' 모사품이 이곳 농촌풍경을 대변하듯 골동품 가게에 서있다.

아이오와주 출신 화가 그랜트 우드의 대표작 '아메리칸 고딕' 모사품이 이곳 농촌풍경을 대변하듯 골동품 가게에 서있다.

미국에는 대략 500만 명의 네델란드계 백인(Dutch American)이 살고 있다. 이들의 다수는 뉴욕과 캘리포니아, 미시간, 몬태나, 미네소타, 위스콘신, 워싱턴주에 살고 있다.

튤립과 풍차의 나라 네덜란드는 전세계 금융과 보험업계를 지배한다. 국민총생산(GNP)가 한국의 2배가 넘는 세계 최고 부국 중 하나이다.

네덜란드의 부는 1500년대 후반 스페인과 포르투갈에 살던 유대인들이 기독교인들의 박해를 피해 네덜란드로 이주한 후부터다. 네델란드로 이주한 유대인들이 1602년 아시아와 무역을 하는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인 동인도회사를 설립했다. 1600년 영국 동인도 회사가 설립되었고 1709년 영국 동인도 회사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합병되면서 런던 경매 시장에서 인도, 중국산 면화, 후추, 차와 향신료 거래로 큰 돈을 벌었다.

동인도 회사의 부를 바탕으로 1609년 네덜란드 국왕은 헨리 허드슨이라는 영국인을 고용해 지금의 뉴욕지방을 탐험케 했다. 네덜란드는 이 지역을 뉴암스테드담으로 칭하고 유대인, 퀘이커, 신교도(프로테스탄트)들을 받아들여 종교와 자유를 보장하는 네덜란드 식민지를 건설했다.

1626년에는 뉴암스테르담 책임자이며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대리인 피터 미노이트와 유대인들이 인디언들에게서 맨해튼 섬을 24달러(2015년 가치로 약 1050달러 ) 상당의 옷감, 철 주전자, 도끼 머리, 괭이, 유대인의 하프와 장신구를 주고 사들였다.

영국의 군함이 쳐들어와 당시 뉴암스테르담 시민들을 몰살한 1664년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뉴욕은 실로 북미 대륙의 교역, 정치의 중심지였다. 뉴암스테르담을 점령한 영국인들이 당시 영국왕 찰스 2세의 동생 요크 공작의 (Duke of York) 직책을 따서 뉴욕(New York)으로 이름을 바꿨다.

유명한 월스트리트는 실제로 네덜란드인들이 영국군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벽을 쌓은데서 이름이 유래한다. 할렘도 당시 네덜란드 한 지방 명칭이었던 Haarlem을 본 뜬 것이었다. 그 외에 브루클린, 브로드웨이, 스테이튼 아일랜드 등 현재도 뉴욕시에는 네덜란드 지명이 많다.

미국에서 네덜란드 유대인과 네덜란드인들의 영향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유명한 네덜란드인의 후예들도 많다. 8대 대통령 마틴 밴 뷰런(Martin Van Buren)과 프랭클린 루스벨트,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뿐 아니라 뉴욕 주지사, 연방 상.하원의원 등 정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데 이들의 정치력을 뒷받침하는 것은 막강한 재력이다.

네덜란드 유대인인 최고의 발명가였던 토머스 에디슨이 사업에 실패하자 그의 전구 특허를 사들여 제너럴 일렉트릭이라는 세계 최고 기업을 일군 이도 네덜란드계 집안 루스벨트이다.

루스벨트, 밴 뷰런, 밴더빌트, 에디슨 집안 모두 뉴욕 인근에서 일가를 이루고 지금도 미국의 재계, 정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이들 네덜란드인들은 영국 출신의 청교도가 아님에도 미국의 권력과 정신을 지탱하는 소위 WASP 집단의 구성원으로 꼽는다.

지난 가을 북서부 워싱턴주 캐나다 국경과 얼굴을 맞대고 있는 네덜란드 마을 린든(Lynden)을 찾았다. 1871년 네덜란드 출신 개척자들(Holden과 Phoebe Judson)이 인디언 마을 근처(Nooksack Indian Village Squahalish)에 정착하면서 네덜란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해 1891년 3월 16일 공식적으로 마을을 설립했다.

네덜란드 마을 린든시는 눅색강(Nooksack River)을 따라 넓은 계곡에 자리 잡고 있으며 이곳에서 유제품, 딸기, 블루베리를 생산한다. 린든은 1900년대에도 네덜란드 이민자들이 들어왔는데 이들은 낙농업을 했다. 지난 20년 동안 인구가 두 배로 늘어 1만5000여 명의 주민이 거주하는데 네덜란드계가 반 이상이다.

린든(Lynden) 프런트 스트리트(Front Street)에는 네덜란드 풍의 건물, 풍차, 음식점, 선물가게 등 눈요깃거리가 많다.

매년 8월에 열리는 노스웨스트 워싱턴 페어(Northwest Washington Fair)는 2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한다. 이 지역 주민들이 생산한 농산물, 미술품, 공예품을 전시하는데 가족 친화적 박람회로 유명하다.

2016년 5월에는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가 린든 노스웨스트 워싱턴 컨벤션센터(Northwest Washington Fairgrounds)에서 유세를 했다. 인구도 얼마 되지 않는 북서부의 끝 작은 시골마을임에도 대통령 후보가 캠페인 랠리를 가졌을 정도로 막강한 네델란드인의 재력과 정치력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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