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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계수나무 꽃비

낯선 땅에 내리면 두렵다. 그러나 걸음을 옮길 때마다 새로운 풍경과 다른 표정들의 사람을 만나면 불안은 사라지고 어떤 새로운 것을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와 희망을 가지게 된다. 계림이 이번 여행의 마지막 코스다. 그동안 여러 곳을 강행군을 하다가 보니 이제 몸도 피곤하고 집 생각도 난다. 아침 일찍 장사에서 고속열차를 타고 점심 때쯤 계림에 내렸다. 이곳은 처음이지만 유명한 곳이라 기대를 많이 하고 왔다. 점심 후부터 진귀한 모양의 봉우리들 사이를 역사를 따라 소리 없이 흐르는 이강 뱃놀이를 했다.

계림에서 제일 높다는 요산은 리프터로 산 정상까지 20분 정도 올라가고 내려오며 보이는 계곡과 산봉우리들은 눈길이 스치는 곳마다 거대한 산수화가 된다. 계림의 산수는 '산수갑천하'라고 말한다. 밤에는 양강사호 유람선을 타고 유유히 흐르는 강의 황홀한 야경의 양편에서 여러 소수민족들의 화려한 공연도 보고 유명한 '가마우지' 낚시를 구경할 수 있었다.

다음날 양삭으로 가는 길에 들린 '세외도원'은 도연명이 지은 '도화원기' 속의 무궁무진한 상상력과 동경을 담아냈다고 하니 신비로운 느낌마저 들기도 한다. 배를 타고 수상관람을 하는데 소수민족들의 다양한 옛모습을 볼 수 있었다. 도연명이 꿈꾸었다는 무릉도원이 이랬을까 하고 잠시 생각하게 한다.

수없이 많은 기묘한 동굴도 있지만 이곳에서 다 말할 수는 없고 유명한 장예모 감독의 '인상유삼저'는 참으로 장관이었다. 무대가 따로 없이 실제로 있는 산과 호수를 무대로 하여 펼쳐진다. 가까이에 살고 있는 여러 연령대의 농부나 어부들과 어린 학생들이 낮에는 자신들의 생업에 종사하고 밤에만 등장해서 배우가 되어 자연과 서로 조화를 만들어 거대한 스케일로 펼쳐 놓은 예술극이다. 중국은 모든 것이 크고 많다.



다시 처음 내리던 고속열차 기차역으로 돌아가자. 계림으로 들어가는 차 안에서 가이드가 이야기 하는 중 계림 시내에 있는 가로수는 계수나무라고 한다.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동요에 나오는 계수나무는 달나라에서만 살고 있는 나무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달나라에서 계수나무 아래서 토끼가 떡방아를 아직도 찧고 있다고 믿었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지금까지 계수나무는 동요에만 나오는 나무로 생각했는데 이 곳은 길 주위의 가로수가 전부 계수나무라고 해서 놀랐다. 이곳이 계수나무가 잘 자라는 것은 기온이 온화하고 수량이 풍부하고 계수나무가 자라기에 좋은 토양이라고 한다. 그래서 계림이라고 한단다. 차에서 내리는 즉시 나무와 꽃을 사진에 담아두고 둘러보니 이강을 중심으로 물이 풍부하고 눈길 가는 곳마다 기묘한 봉우리와 푸른 곡식과 야채가 눈에 들어온다.

1960년대 말 일 하다가 우연이 바라본 텔레비전 화면을 보고 한편으로는 경이롭고 다른 한편으로 무척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그것은 그때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해서 생명체라고는 있을 것 같지 않은 달 표면에 우주인과 성조기가 바람에 날리는 것을 본 순간 나의 달에 대한 환상은 완전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그때의 내 생각은 차라리 인간이 달에 가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았다. 그때부터 달에는 계수나무가 없고 지구상에도 볼 수 없는 환상 속의 나무로 알고 있었다. 지금은 우리나라에도 관상용이나 정원수로 쓰이고 있다고 한다.

파산 아래 뜰과 공원은 가는 곳마다 많은 계수나무가 있어서 차를 기다리는 동안 계수나무 그늘에서 쉬어 갈 수 있었다. 마침 이때가 꽃이 피는 계절이라 나무 밑에만 서면 잔잔한 연미색의 꽃도 은은한 향기도 바람에 날려서 머리 위도 콧등에도 꽃비가 되어 떨어져 앉는다. 처음에는 머리에 앉은 꽃을 털려고 했지만 어느 순간 향기에 취해서 화관을 쓰고 꽃비에 젖어 꿈속을 걷고 있었나 보다.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계수나무의 실물을 보았지만 동화 속의 토끼는 없었다. 오랜 세월 동안 옳고 바른 길이라 믿고 살아 온 가치관이 흔들리는 어지러운 순간도 많았다. 잠시나마 달나라의 한 자락을 걷고 있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김동주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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