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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마당] 방안의 뱃사공

멋쟁이 동생이 현관에 벗어 놓은 높은 구두에 걸려 넘어져서 발목을 삐었다. 나는 도저히 엄두도 못낼 엄청난 하이힐, 그게 나를 잡은거다. 단순히 언제든 있을 수 있는 사고인데, '아! 이게 나이구나'라는 생각이 들고 가슴이 철렁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고 가족들도 친구들도 다 내 나이를 들먹였다.

참 이상한 일이다. 없던 물건이 나타나서 거기 걸려 넘어지는 건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데 왜 나이가 금방 원인이 되는걸까. 아이들도 안경을 쓰고, 야구선수도 큰 시합 다음날에는 손가락이 아플 것이고, 난 어릴 때부터 우산을 챙겨오는 법이 없이, 뭐든 잘 잊어먹는 '깜빡이' 였고, 다리 아프면 누구나 천천히 걷게 되는 건데, 다 누구에게나 있는 일인데 이제는 무조건 나이가 주범이 된다.

선명하게 다가오는 나이라는 거인. 겸허히 받아들이고 순응하기엔 어색하고 억울하다. 싸운다고 절대로 이길 수 없는 괴물이지만 그냥 자리를 내주고, 다 나이 탓으로 돌리는 것도 내키지 않는다.

이 나이라는 거인과의 싸우는 수단 중 하나는 운동이라서, 화실 한 쪽에 노를 젓는 몸짓을 하게 하는 기구를 들여놓고 간간이 올라 앉아 구부리고 앉아 그림 그리던 몸을 풀어본다. 몇 분이 지나면 땀이 나고 숨이 가빠진다. 그런데 자꾸 웃음이 난다. 방안에 앉아 노를 저으며 헉헉대는 내 모습이 엉뚱하다. 어딜 향해 가는걸까? 뱃사공이 되어 노를 젓는다는건 유유한 몸짓과 여유로운 마음으로 하늘과 물결을 번갈아보며, 입가엔 엷은 미소라도 있어야 할 텐데… 나는 역류를 거슬러 도망치듯 사납게 얼굴을 찌프리고 숨을 거칠게 쉬고 있는 이건, 아 그렇지, 싸움이구나, 이 거인과의 싸움이라서 이렇게 힘이 드는구나 하며 큰소리로 웃었다.



조금 더 힘차게 노를 젓다 보면 머릿속에서 윙윙 소리가 나고 어지러워진다. 방안이 돌아가고, 가구들도 막 휘어져 춤을 추고, 그림들이 태풍에 휘말린듯 허공을 맴돌고 있다. 천정에 달린 등은 이태백의 달이 되어 방안 거울 속에서 흔들리고 있다. 피곤은 해도 기분이 막 좋아지는게 마약이 따로 없다. 그런데 어릴 때도 아이들이랑 서서 막 맴돌다가 쓰러지면 세상이 빙빙 돌면서 신이 나서 막 웃었던 기억이 난다. 뭐 특별히 달라진 건 분명 없는 거다. 단지 지금 느끼는 이 몸의 변화들은 이미 승부가 결정돼 있는 시간과의 싸움이라서 좀 서글픈 것 뿐이다.


김원숙 / 화가·인디애나 블루밍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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