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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괄도네넴띤'과 댕댕이

댕댕이. 요즘 한국의 일부 젊은이들은 '멍멍이'를 이렇게 부른다. '귀엽다'를 '커엽다'로 읽기도 한다. '귀여운 멍멍이'는 그래서 '커여운 댕댕이'라고 말한다. 일종의 신조어다.

이렇게 한글 자모를 모양 비슷한 다른 단어로 바꿔 읽거나 표기하는 것을 '야민정음(野民正音)'이라 한단다. 세종대왕 훈민정음에 빗댄 언어유희다. 탄생 배경이 재미있다. 스마트폰 시대, 작은 화면 속 글자를 읽으려다 보니 '머'와 '대'가 잘 구분이 안 된다. '광'과 팡'도 헷갈린다. 그래서 생겨난 게 '머전팡역시'(대전광역시)다. '명'은 '띵'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명곡은 '띵곡'이 됐다. 눈물이란 단어를 위 아래 180도 뒤집은 '롬곡'도 있다.

요즘은 '괄도네넴띤'이라는 말이 화제다. 언뜻 네팔말 같기도 하고 태국말 같기도 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정식 출시된 제품 이름이란다. '팔도비빔면'은 35년 동안 팔려온 인기 상품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포장지 글자를 우연히 '괄도네넴띤'이라 읽었다. 한글을 처음 배운 외국인이 그랬다는 이야기도 있고 할 일 없는 백수가 장난삼아 그렇게 읽었다는 설(說)도 있다. 아무튼 젊은이들이 열광했다. 인터넷 검색어 1위에도 올랐다. 눈치 빠른 제조 회사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발 빠르게 10만 개 한정으로 진짜 '괄도네넴띤'을 출시했다. 결과는 대박. 하루도 안 돼 매진이 됐다. 다시 출시한 2차 판매에서도 조기 판매 완료됐다고 한다.

이런 현상을 보면 늘 나오는 소리가 있다. 한글 파괴, 소통 장벽 등의 우려다. 하지만 쓸데없는 걱정이다. 그렇게 해서 파괴될 한글이라면 500년을 이어오지도 않았다. 이런 정도에 소통이 막힐 거면 다른 어떤 것으로도 소통이 될 리 없다. 유행어는 유행 지나면 사라진다. 온갖 우려와 걱정 속에서도 한글은 건재했고 한국말은 더 풍성해져 왔다. 나는 이런 놀이(?)를 보면 오히려 신세대의 기발한 창의성이 부럽고 거칠 것 없는 발랄함에 질투가 난다. 세계 어떤 젊은이들이, 어떤 글자로 이런 재미난 놀이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염려론자들의 진짜 걱정은 한글 파괴라기보다 한국어 오염일 것이다. 그 점에선 미국 사는 한인들이야말로 '오염의 주범'일지 모른다. 현지 영어 발음 좇다보니 한글 표기법은 얼마나 제멋대로인가. 한국말도 아닌 것이, 영어도 아닌 것이 또 얼마나 일상적으로 쓰이고 있나. "라이드는 내가 할 테니 넌 케어나 잘 해. 오더 받고 투고 딜리버리도 커스터머 컴플레인 안 나오게 조심하고. 파킹장서 스크래치라도 나면 애니타임 수~하는 게 여기잖아."

미주 한인들이 무심코 쓰는 이런 말들이 또 한국에선 '미국식'이라 해서 그대로 모방해서 쓰인다고 하니 할 말이 없다. 그러니 우리도 너무 미안해하지는 말자. 영어 나라에서 이 정도라도 한국어 지키며 사는 게 어디인가. 어차피 언어란 생명체와 같아서 시대와 환경에 따라 바뀌고 진화하는 법이다. 기존에 있던 말만 정답인 것도 아니다. 아무리 나라에서 '자장면'이라 해도 다수 언중(言衆)이 '짜장면'이라고 하면 '짜장면'이 바른 말이 되는 거다.

2014년 국립국어원은 미주 한인들을 대상으로 '재미동포 언어 실태조사'를 했었다. 그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어를 모국어로 생각하는 한인 2세 비율이 61.4%나 됐다. 비록 한국말은 서툴러도 많은 젊은이들이 한국어나 한국인에 대한 정체성을 갖고 있었다는 뜻이다. 한국어가 미국에서도 여전히 생명력을 가진 언어로 남을 수 있는 희망이 이것이다.

댕댕이면 어떤가. '꿀잼(정말 재미있음)'이나 '밀당(밀고 당기기)' 같은 신조어는 얼마나 신선한가. 미주에서도 이런 말 못 만들란 법 없다. 방법은 하나다. 한국어의 영역을 좀 더 확대하는 것이다. 마음대로 우리 말과 글을 가지고 놀도록 허(許)하는 것이다. 더 이상 한국어는 한국 사는 한국 사람만 쓰는 말이 아니다.


이종호 논설실장 lee.jongho@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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