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민씨 살인사건 재심청구 최종 기각
20년전 사건, 대중매체 선동이 부른 비극
“소수계 향한 차별, 분명한 목소리 필요”
한인 이해민씨(Hae Min Lee, 사건당시 17세) 지난 1999년1월 실종됐다가 4주만에 사체로 발견됐었다. 당시 볼티모어 카운티에 위치한 우드론고교 12학년생이었던 이씨를 죽인 범인은 파키스탄계로 알려진 애드넌 샤이드였다. 그는 이씨의 전 남자친구였다.
애초 범인 샤이드는 2000년 2월 1급살인혐의로 종신형과 추가 3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이었으나 뜻밖의 주목을 받아 사건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됐다. 이 사건은 2014년 미국은 물론 전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탔던 탐사 저널리즘 팟캐스트 ‘시리얼’의 첫 번째 주제로 소개돼 재심 요구가 봇물을 이뤘다.
2016년 7월 마틴 웰시 판사는 샤이드의 혐의를 기각하고 재심을 청구했으며 2018년 3월 메릴랜드 특별항소법원이 재심을 허용함으로써 한인사회에 충격을 던져준 바 있다.
이씨는 1980년생으로 1992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와 볼티모어에 정착했다. 고교 재학당시 영재반에 등록할 정도로 공부를 잘했으며 라크로스와 필드 하키 선수로도 활동했었다.
이씨와 범인은 1년정도 데이트를 했으나 사건 직전 결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범인의 셀폰 위치추적 조사와 공범의 자백 등을 통해 범인이 이씨를 목졸라 죽이고 공원에 매장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하지만 팟캐스트 등을 통해 범인의 알리바이를 증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인물 ‘아시아 맥클레인’이 등장했다. 이 팟캐스트는 청취자가 수백만명에 달했다.
그는 범인이 범행을 저질렀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시간대에 자신과 함께 학교 도서관에 있었다고 증언했다. 항소특별법원은 하급심 재판부가 피고가 주장하는 증인과 증거 등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재심을 받아들인다는 판결을 내리고 말았다.
이후 재심청구 사건은 매우 복잡하게 전개됐다. 항소특별법원이 재심을 허용했으나 검찰측이 다시 상고해 대법원까지 올라갔으며 대법원이 항소법원의 판결을 준용하겠다는 결정을 내렸고, 항소법원 합의부 재판에서 4-3으로 재심청구 기각판결이 나온 것이다.
재심청구는 어차피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증인은 도서관에서 창문밖으로 범인을 잠깐 보았다고 밝혔으나 알리바이를 충분히 증명할 만한 수준이 아니었으며 또다른 범행 증거를 뒤집을 만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범인의 변호사는 "알리바이를 증명할 증인보다 더 강력한 증거는 없다“고 반발했다.
전문가들은 법원이 법과 원칙에 따른 판결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선정성에만 초점을 맞춘 뉴미디어 팟캐스트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고 비판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과연 피해여성이 한인과 같은 소수계 중에서도 가장 약한 소수계가 아니었다면 마녀사냥처럼 휘몰아가서 재심 확정 일보 직전까지 갔겠느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팟캐스트가 불러일으킨 선동여론은 범인과 피해여성이 모두 소수계였기 때문에 가능했었다. 과연 용의자나 피해자가 백인 혹은 흑인이었다면 이들 커뮤니티의 눈치를 보느라 이같은 프로그램이 기획조차 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메릴랜드주의 브라이언 프로쉬 검찰총장은 "정의는 이해민씨와 그의 유가족 편이었다“고 밝혔다. 공소를 유지했던 띠루 비그내레야 특별 부검찰총장은 “재심청구를 둘러싼 일련의 사태는 이해민씨 가족을 매우 힘들게 만들었다”며 “법원의 이번 최종판결이 유가족에게 위로의 한 방법이 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김옥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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