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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산책] 취객들에게

한국의 밤거리는 미국과 달라 환하다. 밤 12시가 지나면 휘황찬란한 네온사인 불빛이 빛나고 남녀노소가 취객이 된다. 술에 취한 젊은이는 길에 널브러지고 노인들은 술에 취해 허공을 향해 삿대질하며 세상을 원망한다.

한 청년이 술김에 할머니를 때려서 죽인 사건을 뉴스로 전해 들으며 한국의 밤거리를 떠올렸다. 우리 고국은 술에 대하여 어디까지 관대해질 것인가? 폐지를 줍는 할머니를 20대 청년이 두드려 패 죽여도, 50대 회사원이 6살 이웃집 유치원생 여아를 성폭행해도, 휴가 나온 군인을 뇌사상태에 빠트려도, 길에 드러눕거나 고성방가를 해도, 술 때문이라고 하면 감형이라고 하니 말이다. 사람을 죽이고도,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쳐 놓고도 '술을 먹어서 기억이 나질 않는다'라고 하면 감형을 받을 수 있는 사유가 된다니 무슨 법이란 말인가? 미국은 술에 취해 범죄를 저지르면 가중처벌이다. 한국은 술에 취하면 상태를 심신 미약 상태로 인정을 하여 감형이 된다. 이건 또 무슨 몹쓸 법이란 말인가?

한국 드라마를 보다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 술 먹는 장면을 보면 더욱 그렇다. 실연을 당한 청년은 사경을 헤매도록 술을 마시고 사람 많은 신작로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가 거리에 드러누워 잔다. 사람들은 흘낏 한 번 훑어보고 각자 제 갈 길을 간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편의점 앞 탁자에 앉아 술 경연을 벌인다. 둘은 떡이 지게 술을 마시고 여자는 남자의 등에 업혀 집으로 돌아간다.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회식 술자리에는 빈 소주병과 맥주병이 탁자 위 수북이 쌓여 있다. 오락 프로에서도 마찬가지다. 술과 관계된 에피소드는 단골손님이다. 누구는 소주 24병이 주량이고 컨디션이 좋으면 32병도 마신다고, 누구는 한 번 마시면 3박 4일 집에서 술만 마신다고, 누구는 폭탄주 30잔에 양주를 스트레이트로 30잔을 마실 수 있는 자만 가입할 수 있는 클럽 멤버라고 자랑을 한다. 술 얘기만 나오면 분위기가 한껏 고조된다. 사람들은 주당이 센 사람을 부러운 듯 바라보고. 죽기 직전까지 술을 먹는 사람을 기가 센 사람이라 인식한다.

한국에서는 상사들이 주는 술잔을 거절하면 예의가 아니다. 사람에 따라 소주 10병이 치사량일 수도 있고 소주 한 잔이 치사량이 될 수도 있는데 아랫사람은 선택이 없다. 소맥이든 폭탄주든 상사가 주는 대로 마셔야 한다. 술에 취해도 먼저 자리를 비워서는 안 된다. '술 먹는 것도 정신력이다. 술 잘 먹는 사람이 일도 잘한다'라는 의식이 팽배하다. 그런 사회에서 어찌 술에 대하여 단호해질 수 있을까?



한국은 폭음으로 인한 범죄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주폭 감형금지 안'이 필요하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쇄도하고 있다. 주취 범죄 감형폐지법만이 해결책은 아닐 것이다. 술에 대한 의식과 문화를 새롭게 정립하는 일이 우선이다. 주당이 센 것은 멋진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술로 갈 데까지 가는 것도 자랑이 되어서는 안 된다. 주당은 올림픽 기록이 아니다. 2차, 3차 가봐야 죽음만 가까워질 뿐이다. 술을 자랑하는 자는 의식을 단속시켜야 한다. 술을 용서하는 자도 단속 감이다.

남녀노소가 술 취하는 사회, 가임기인 30대 여성들의 알코올 의존도가 남성을 뛰어넘는 나라가 우리들의 고국이다. 폭음문화가 얼마나 심각한지 폭음 세계 1위라고 한다. 대학생의 43.7가 술을 먹고 기억이 끊긴 경험이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술을 함께 먹어야만 친해진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식이 모여 폭탄주를 만든 것이다. 그런 문화가 얽혀 원샷을 외치게 한 것이다. 젊은이들은 취하니까 청춘이라고 말한다. 의식의 취객들이다.

법을 고치는 것이 다가 아니다. 법을 지배하는 것은 문화다. 법을 완성하는 것은 사회 인식이다. 법을 고쳐 제도적으로 차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중요한 것은 인식과 문화다. 아름다운 인식과 문화만이 아름다운 사회를 만든다.


김은자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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