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향계] 캘리포니아 출신 대통령 가능할까
지리멸렬한 지지율에 허덕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 가도는 미세먼지 뒤덮인 대기처럼 불투명하다. 하노이 북미회담 성과로 재선 입지를 다지려던 시도도 '노딜'로 끝나는 바람에 전략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야당인 민주당은 더 바빠졌다. 내년 대선에 도전장을 내민 사람만 벌써 14명이다. 부동산 재벌 출신 대통령 탄생에 고무된 듯 이번엔 하워드 슐츠(66) 전 스타벅스 CEO도 사실상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현재 가장 주목받는 후보는 버몬트주 버니 샌더스(77) 연방상원의원이다. 지난 주말 고향 뉴욕 브루클린의 성대한 출정식에 이어 시카고 집회에도 1만 3천명이나 모였다. 2016년 대선 때의 '버니 열풍'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과시다. "1% 특권층만이 아닌 모든 이를 위한 미국"을 내세우고 있는 '민주적 사회주의자' 샌더스는 현재 예비 후보 중 지지율 선두다.
아직 출마 선언은 안 했지만 조 바이든(76) 전 부통령도 트럼프에겐 위협적인 상대가 될 가능성이 크다. 지명도가 높고 정치적 중량감도 큰 데다 오바마 시절의 향수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민주당에서 처음 대선 출마를 선언했던 매사추세츠주 엘리자베스 워런(69) 연방상원의원도 유력한 잠룡이다. 하버드 로스쿨 출신의 진보적 법학자였던 그는 백인 외모를 가졌지만 아메리칸 원주민 혈통을 주장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LA 한인들 입장에선 캘리포니아주 카말라 해리스(54) 연방상원의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북가주 오클랜드가 고향인 해리스는 자메이카 출신의 흑인 아버지와 인도계 어머니를 둔 이민자의 딸이다. 8년간 캘리포니아 검찰총장을 역임했고 2016년 바버러 박서 의원의 뒤를 이어 역대 세 번째 가주 출신 여성 연방상원의원이 되었다. 그것도 연방하원 20년 경력의 정치 거물 로레타 산체스 의원을 물리친 것이어서 더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지난 일요판 LA타임스는 내년 캘리포니아 예비선거(Primary)를 정확히 1년 앞두고 마련한 특집에서 '변화되고 있는 미국 정치판을 대표하는 인물'로 이민자 출신의 비백인 50대 여성인 해리스 의원을 지목했다. 신문은 해리스 의원이 2020년 3월 3일 열릴 가주 예비선거에서 가장 많은 표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며, 그럴 경우 40년 전 캘리포니아 주지사 출신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이후 가주 정치인이 다시 백악관에 입성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근거는 유권자들의 정치 성향과 인구 구성 변화다. 우선 캘리포니아를 비롯해 미 전역에 비백인 유권자가 갈수록 늘고 있다. 변화를 갈구하는 여성, 소수계, 젊은 세대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는 것도 전국적인 현상이다. 지난 1994년 이후 캘리포니아에서 공화당이 대선, 연방의원 선거, 주지사 선거에서 잇따라 패배한 것도 이런 흐름의 결과였다.
내년 대선까지는 1년 8개월이나 남았다. 많은 변수가 있을 것이고 결과를 지금 예측한다는 것은 섣부른 감이 있다. 그럼에도 대선 과정을 주시해야 할 이유는 많다. 그 중 하나가 미국 정치판의 큰 흐름 읽기다. 그것은 곧 종교적 복음주의, 근본주의에 근거한 백인 전통주의와 새로운 미국으로 이끌려는 진보 개혁세력과의 대결이다. 그 연장선에서 이민, 헬스케어, 부자 증세, 교육기회 확대 등 우리 생활과 직결된 정책 현안들의 향방을 가늠해 보는 것도 의미가 크다. 어느 당 어떤 인물이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소수계 이민자로서 한인들의 권익과 입지도 크게 영향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는 게임이다. 샌더스 열풍은 어디까지 갈까. 과연 캘리포니아 출신 대통령은 다시 탄생할 수 있을까. 이것만으로도 흥미롭지 않은가. 미국은 벌써 대선 레이스다.
이종호 논설실장 lee.jongho@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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