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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부부의 버킷리스트 1순위 '대륙횡단'

풀러턴 노찬용씨 부부의 대륙횡단기

대장정의 첫날, 집에서 차를 몰고 5번 프리웨이에 들어섰다. 순간 아주 오래전 내 기억의 한켠에 포개져 있던 그 장면이 바로 눈 앞에 펼쳐지는 듯해 흠칫 놀랐다. 신혼여행 때 들렀던 그랜드 캐년이 문득 생각이 났던 것이다. 그때 받은 충격이란. 그때 처음으로 신의 존재를 믿게 됐다. 하나님이 없다면 어찌 이런 걸작품이 나올 수 있을까. 캐년 정상에서 아내에게 새끼 손가락을 걸며 약속을 했다. "우리 내년에 꼭 대륙횡단을 해봅시다." 셈을 해 보니 꼭 35년 전이다. 이제야 약속을 지켜 미안할 따름이다.

사람은 자신의 삶이 얼마나 남았나를 알게 될 때 그 시간을 가장 소중하게 사용한다고 한다. 4년 전 암에 걸렸을 때 버킷리스트를 만들며 대륙횡단을 1순위로 올려놨다. 늦었지만 아내와의 약속도 지킬 겸. 아내는 마치 소풍가기 전의 초등학교 학생마냥 두어 달을 들떠 지냈다. 인터넷을 뒤지고 공부하고, 보고 싶은 것들을 깨알같이 메모하며.

교통수단과 침실이 되어 준
5500달러 중고 미니밴 타고


당초 미니밴을 빌리려 했는데 예상외로 비쌌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10만 마일이 넘는 혼다 오디세이 중고 미니밴을 5500달러를 주고 샀다. 차체가 깨끗해 갔다와서 되팔면 본전은 충분히 뽑을만했다. 안전운행을 위해 타이어와 타이밍 벨트를 새로 교체했다. 뒷좌석을 모두 떼어내고 매트리스를 깔고 보니 훌륭한 침실이 됐다. 호텔비를 아껴보려는 심산으로 미니밴을 샀는데 결과적으로 '대박'을 쳤다.



운전도 편할 뿐더러 잠자리도 그렇게 쾌적할 수 없었다. 캠프그라운드(주로 KOA 이용)마다 샤워와 세탁시설은 물론 전기도 마음대로 쓸 수 있게 돼있어 매트리스 위에 전기담요를 깔면 5성급 호텔이 부럽지 않다. 여행 중 에어비앤비(Airbnb)도 가끔 이용했지만 좀 불편했다. 지나고 보니 차라리 캠프그라운드가 훨씬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콜로라도, 캐나다, 뉴욕 등
43일간 1만650마일의 여정


캘리포니아를 떠나 애리조나, 콜로라도를 거쳐 캐나다를 통과, 동북부로 차를 몰았다. 대서양 해안선을 따라 보스턴과 뉴욕, 필라델피아, 버지니아, 켄터키 등 중부를 거쳐 뉴멕시코 등 남부를 돌아 집으로 왔다. 9월 15일부터 10월 27일(43일)까지의 결코 짧지 않은 여정이었다. 주행거리는 꼭 1만650마일.

들른 곳은 국립공원 14곳을 포함해 모두 23곳이다. 그 중 어디가 제일 좋았냐고 묻는 이들이 많았는데 대답은 한결같았다. "다 좋았습니다."

사우스 다코타의 배드랜드(Bad Land), 콜로라도의 '샌드듄(Sand Dune), 메인주의 '아케이디아(Acadia), 버지니아주의 '루레이(Luray)' 종유석 동굴, 뉴멕시코주의 '칼스배드(Calsbad)' 동굴 등 감탄사를 내지 않은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왜 중국인들은 미국을 '美國'이라고 표기했는지, 일본은 또 '米國'이라고 불렀는지 이해가 될만도 했다. 돌아다니다 보니 이 나라가 그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다. 휴가철 세계 곳곳에 다녀봤지만 미국만한 자연경관을 가진 나라는 없다. 사실 '美國'은 뜻과는 상관없이 소리만 나타낸 음차 표현이지만 중국인들이 이름 하나는 제대로 지은 듯하다.

먹거리가 부족했던 일본인들은 광활한 대륙에서 나오는 농산물이 그렇게 부러웠나보다. 쌀이 많이 나는 나라. 그 말도 맞는 것 같다. 한나절을 달려도 옥수수, 밀 밭이다. 최첨단산업국이라기 보단 세계 최대의 농업국이라고 불러도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닐지 싶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
70대 모터사이클 여행자도 만나


70대의 로망이라는 크로스 컨트리. 솔직히 여행을 떠나기 전 불안감도 없지 않았다. 내 나이 일흔 둘인데 체력이 받쳐줄까. 한 번은 뉴멕시코주의 화이트샌드 국립유적지(White Sand National Monument)에서 '커플룩' 차림의 부부를 만났다. 나이가 80대 중반쯤 되어 보였다. 정말이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걸 이번 여행에서 새삼 깨달았다.

모터사이클을 타고 여행하는 70대도 적지 않았다. 얼마나 멋있게 보였든지.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사람들도 종종 봤다. 산소통을 메고 트레일 코스까지 따라다니는 걸 보곤 감동 또 감동했다. 그 나이에, 그 몸에 여행을 하다니. 믿기지 않겠지만 현실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코리안 파워'를 실감할 수 있어 좀 뿌듯하기는 했다. 여행지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언어는 영어와 중국어, 그리고 한국어였다. 국립공원마다 한글안내책자가 따로 있을 정도였다. 심지어 한국말로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도 꽤 됐다. 뉴욕 자유의 여신상을 보러 배를 탔는데 관광객이 절반은 중국인, 나머지 절반도 한인(한국인)들이었다. 안내방송에도 영어와 중국어, 한국어가 흘러나온다.

보스턴의 하버드대학 캠퍼스에서는 색다른 경험을 했다. 장서와 재산 기부자로 알려진 존 하버드(1607~1638)의 동상에서다. 의자에 앉아있는 하버드의 왼쪽 구두 코끝이 반들반들 윤이 났다. 사람들이 하도 만져댄 탓이다. 구두를 만지면 행운을 가져다준다나. 관광객들이 넘쳐났는데 알고 보니 대부분 한국인이었다. 구두를 만지고 또 만지며 자녀들의 하버드 입학을 빌었을 터. 약간 부끄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한국인들의 교육열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참 대단한 민족 아닌가.

대륙횡단 최적기는 9월
비수기에 춥지도 않아


나름 조심운전을 했는데도 딱 한 번 걸렸다. 러시모어의 큰바위 얼굴을 보러가던 중이었다. '죄명'은 속도 위반. 시속 45마일 존에서 75마일로 달렸으니 걸릴만도 했다. '내 죄를 내가 알렸다'며 위반사실을 순순히 시인하자 '감동'을 받았던 모양이다. 딱지를 뗄까 말까 하다가 "조심해 운전하라"며 면허증을 되돌려주는 게 아닌가. 휴우~.

캘리포니아가 왜 살기 좋은지도 이번 여행길에 새삼 느꼈다. 시카고 등 대도시는 앞과 뒤, 옆에서 빵빵 경적을 울려 대는 통에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였다. 뭐가 그리 불만이고 급한지.

주차요금은 가히 살인적이었다. 어떤 곳은 고작 두 시간 주차에 무려 29달러를 받았다. 세상에~. '톨피(Toll fee)'는 또 어떻고. 어느 톨게이트는 돈 받는 사람이 없어 그냥 지나갔더니 지금도 고지서가 집으로 날아온다. 그나마 개스값이 캘리포니아 보다 갤런당 1달러가량 쌌기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좀 과장해 미쳤을 것 같다. 그래서 뉴욕이나 시카고 등 대도시에선 차라리 여행사에 돈을 주고 1일 관광을 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란 생각이 든다.

이제 대륙횡단 자동차 여행을 계획하는 이들에게 꿀팁 몇 가지를 제공하자면 우선 차량은 미니밴을 강추한다. 또 가능하면 옷가지 등 짐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 우린 완전 초보여서 너무 많이 챙겨갔다. 시기는 여름의 끝자락인 9월이 최적기다. 비수기인데다 춥지가 않아서다.

음식은 즉석밥을 비롯해 마른 반찬 몇 가지만 준비해 가면 좋다. 요즘은 웬만한 도시마다 한국마켓(또는 아시안 마켓)이 있어 현지조달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꿈 꾸는 자에게 기회가 온다고 했다. 내년 또 한차례 대륙횡단을 계획하고 있다. 아내와 함께 씽씽! 세 번째 허니문에 벌써 가슴이 벅차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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