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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행동으로…예수 이름에 기대선 안 된다" 의사 은퇴 후 '안경 사역' 김수재 선교사

크림 반도에서 페루까지 전 세계 누벼
"나는 예수가 보여준 하나님을 믿는다"
다원주의 시대에 타 종교 배척 안 돼

의사로 살던 삶에서 2005년 66세의 나이로 은퇴한 후 우크라이나 크림 반도를 시작으로 선교에 여생을 바치기로 다짐한 김수재 선교사(81). 지금까지 캄보디아, 파나마, 페루 등지에서 5000여 명의 검안을 실시하고 1200여 명의 안경을 제작했다.

한때 우크라이나에서 배추 농사를 지으며 어렵게 살고 있는 고려족을 위한 선교 사업을 위해 현지에 김치공장 건설을 추진했던 그는 안경 사역으로 방향을 전환한 계기를 두고 "작은 우연"이었다고 회상한다.

본격적인 선교 활동을 위해 한국 온누리교회에 속한 '세계선교사훈련소 두란노'에서 훈련을 받은 후 캄보디아에서 활동하던 김 선교사는 캘리포니아주의 한 한인교회가 "책임자가 있다면 안경 사역을 위한 장비를 기증하겠다는 사람이 있다"며 "명의를 빌려 달라"는 요청에 선뜻 동의했다가 이후 '직접 관장하지 않고 어떻게 이름만 걸어두나'하는 생각에 본격적으로 안경 사역에 뛰어들었다고 밝혔다.

그의 아내 이숙녀 사모는 김 선교사의 팔순 기념 책자에서 그가 "토속신앙을 믿는 원주민 대상 선교의 어려움에 봉착해 어린이 대상으로 선교해야겠다며 방향을 전환했다"고 썼지만 인터뷰를 통해 그를 알아 갈수록 단순히 선교를 위한 전략이라기보다는 진심 어린 방향 전환으로 다가왔다.



그는 선교 활동 초반 캄보디아에서 처음으로 안경을 써 본 아이의 일화를 소개하며 "아이에게 엄마가 보이냐, 이게 몇 개냐며 아이 눈 앞에 손가락을 흔들어 보이던 어머니의 감격 어린 표정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멀쩡한 눈을 가지고 태어났어도 6살까지 시중추가 제대로 발달하지 않으면 약시가 온다. 어린아이들이 눈이 안 보이면 공부는 어떻게 하나"라고 반문하는 그의 표정에 진심 어린 안타까움이 그대로 내비쳤다.

하지만 마음만으로 사역이 원활하게 진행되는 것은 아니었다.

"파나마에도 안경 선교 사업을 할 기반을 다져 달라"는 교회의 요청에 중미로 향한 그는 캄보디아에서는 겪어 보지 못한 수많은 제약을 극복해야 했다.

처음에는 안경 선교를 위한 기반만 다질 생각으로 선뜻 파나마로 갔지만 현지에서 사역을 맡기로 한 사람이 중도 하차하는 바람에 프로젝트 전체를 책임지게 됐던 것.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파나마는 캄보디아와 달리 현지 법인의 초청을 받은 이들만 사역 활동을 할 수 있고 미국의 의사 자격증도 인정하지 않는 등 예기치 못한 제약이 많았다. 그런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김 선교사는 파나마 영주권을 취득하고 76세의 나이로 안경사 시험에 응시해 자격증을 따는 등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현지 정부가 만든 법률적인 장애물보다 사람의 마음이 그를 더 힘들게 했다. '지금껏 그래왔듯 조용히 활동하면 문제 없을 것'이라고 말하는 다른 주요 인사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합법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데 좋은 일 하면서 굳이 음지에서 활동할 필요를 못 느꼈다"는 그는 파나마 한인교회와 파트너십을 맺고 현지 의료 사역단체와 함께 안경 사역을 계속할 수 있도록 2013년 '쏘딥비젼파운데이션(So Deep Vision Foundation·SDVF)'을 설립했다.

이후 매년 6~8개월 정도 파나마에 거주하며 파나마와 페루 등지에서 오지 방문과 교회를 통한 안경 사역에 몰두해 온 김 선교사는 고령으로 직접 사역에 나서기 어려울 때를 대비한 준비에도 힘쓰고 있다. 5년 계획으로 후배 양성에 나선 그는 현지 교회 신도인 남매와 싱글맘 3명을 대상으로 장학 사업을 진행 중이다. 매 주말마다 선교 사업에 참여해 안경사로서 활동할 수 있도록 손수 가르치며 안경대학 진학 시 장학금을 주기로 한 것. "두 남매 중 오빠는 이미 안경대학에 진학해 4년 후에 검안사가 될 것"이라고 전하는 그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빈부 격차가 심한 파나마에서 소외된 원주민들은 정부의 기본적인 혜택도 받지 못해 안경 사역이 장기적으로 지속되어야 한다는 그의 고민을 없애줄 해결책이 생겼기 때문.

김 선교사는 "필요한 사람 누구에게나 안경을 주고 싶다"며 종파적 갈등을 경계한다. 종교다원주의 시대에 선교를 이유로 배척에 가세하면 안 된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오늘날의 선교 활동은 행동과 삶의 선교다. 예수라는 이름이 되려 걸림돌이 되면 안 된다"고 강조하는 그는 실제로 그는 파나마 한인교회 인근에서 사역 중인 이슬람교 선교사의 요청으로 무슬림들의 안경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고. 이제는 그들과 종교에 대한 진지한 대화도 나누는 등 친분을 쌓았다는 김 선교사는 "그들이 말하는 것 역시 휴머니즘이고 그들도 '하나님은 사랑'임을 인정한다"며 일부 극단적인 단체들이 종교를 정치적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마귀의 자식과는 상종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변인의 말에 상처도 많이 받았다. 그가 행하고자 하는 선교는 '가장 낮고 버림 받은 이들을 보살피는 것'이다.

"나는 예수가 보여준 하나님을 믿는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아이들이니 서로 아끼고 사랑하면 된다. 나머지는 믿음으로 이뤄짐을 내가 직접 경험했다." 인터뷰를 끝내며 던진 그의 한마디는 그 무엇보다 강해 보였다.


김아영 기자 kim.ahyoung@koreadailyn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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