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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금풍에 드러난 진실, 무상

'만추'는 그 국민배우의 대표작이다. 참 잘생겨 일세를 풍미한 그도 2018년 11월 4일, 81세에 한 줌 재로 남았다. 만추(晩秋)에 그 '신성일'도 떠났다.

이즈음이면, 버릇대로 병집이 도져 바랑 메고 떠났다. 대륙의 등뼈인 시에라네바다산맥의 해안과 내륙을 넘나들며, 일로 북상하다 눈에 밟힌 풍경이다.

꽃은 피고지고 성성했던 나뭇잎은 속절없이 낙엽 되어 골골마다 수북하다. 만추(늦가을)의 한가로운 햇살이, 쌓인 낙엽 위로 맥없이 떨어져 바스러진다.

골짝과 자드락을 따라 군락을 이룬 낙엽 진 활엽수의 앙상한 가지 사이로, 갈바람이 스치자 몇 잎 남지 않은 잎사귀마저 몸을 떨다 흩날린다.



을씨년스러운 조락은 허무를 짙게 하는데, 가라앉은 가뭇한 하늘을 배경으로 할 일을 다 해 마친 탈속한 성자처럼, 늘어선 나목의 자태는 차라리 고절하다.

어느 날 제자가 스승인 운문선사께 여쭈었다. "나뭇잎이 시들어 떨어질 때는 어떠합니까?" 선사께서 답하셨다. "체로금풍!(體露金風)"(벽암록 제27칙)

'체로'는 몸체가 드러난 것을, 오행에서 금(金)은 '가을'을 뜻하므로 '금풍'은 가을바람을 일컫는다.

체로금풍의 자구풀이가 다양하지만, '갈바람에 온전히 드러났느니라'는 풀이를 두루 쓰고 있다.

뜻풀이로는 주로 '번뇌를 암시하는 나뭇잎이 갈바람에 모두 떨어져 진면목이 드러난 것'으로 이해한다.

과연, 나뭇잎이 시들어 갈바람에 흩어지는 때, 온전히 드러난 진실은 무엇인가.

잎이 지는 그 '자체로' 진실이며, 드러난 진실은 '무상(無常)'이다. '변한다'는 불교의 핵심 교의이다.

형성된 모든 것의 중단 없는 변화, 그래서 우주의 본질을 역동적인 '동사(움직씨)의 물결'이라 한다.

무상(변화)의 향방은 생과 멸이다. 꽃 피고 싹이 돋는 생성도, 꽃 지고 낙엽 지는 소멸도 무상이다.

무상 속에서 생성도 끝내 소멸에 이르지만, 소멸에 들 때만이 덧없음과 허무를 느끼게 된다. 사라져 버리는 것은 어쨌거나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허무는 존재의 속성인 무상에 대한 무지로, 영원성을 갈망하거나 그를 믿고 집착하던 것들이 도리 없이 변하고 말면, 삶이 무의미하고 허전함을 느끼는 감정이다. 자칫 절망과 '죽음에 이르는 병'이 된다.

무상인 변화는 에너지이다. 지속적이고 역동적인 생멸의 순환과정에서, 무엇으로 되게 하는 생명력으로 불타고 있어 새로운 삶의 동력이 된다. 무상하니 무엇이든 될 수가 있다.

무상은 가능태(可能態)로 미래지향적이다. 상실과 허무라는 냉혹한 부정 뒤에 오는 창조와 진화의 긍정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시구를 빌리건대, 무상을 '아름다운 소멸'로, '지면서 빛나는 허무'라고 표현해도 되겠다.

"밤이 다 새기 전부터 바다 밑의 해는 떠오르고/ 한 해가 다 가기 전부터 강에는 새봄이 스며든다."(중국 8세기. 왕만의 시)

musagusa@naver.com


박재욱 법사 / 나란다 불교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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