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이 전염병처럼 돌고 있다
2년째 최악 산불…불타는 가주
캠프 산불선 63명 사망 피해 규모 갈수록 커져
고사목 1억 그루 넘으며 산불 나면 땔감 역할
주택 산림지역 파고들며 마을 사라지는 재앙
15일 현재 북가주의 캠프 산불로 인한 사망자는 63명으로 늘었다. 100여 명으로 집계됐던 실종자는 631명으로 급증했다. 이 수치만으로도 가주 역사상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낳은 최악의 산불이다. 캠프 산불은 2만7000명이 거주하는 패러다이스 마을 전체를 삼키며 15일 현재 집계로도 집 8650채와 사업체 260채 이상을 태웠다. 지난 8일부터 남가주의 말리부와 벤투라 카운티 북가주의 뷰트 카운티 8곳에서 발생한 산불은 역대 최악의 피해를 남겼지만 아직 완전히 진화되지 않았다.
기억을 되살리면 지난 7월에는 북가주에서 멘도시아 산불이 발생해 46만 에이커를 태우며 단일 산불로는 가주 최대 규모 기록을 갈아치웠다. 그로부터 불과 4개월 뒤 인명과 재산 피해가 가장 큰 산불이 난 것이다. 지난해에는 나파와 소노마 등 와인 컨트리에서 발생한 터브스 산불로 44명이 사망했다. 가장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한 산불이 불과 1년 만에 바뀌었다.
전문가들이 '산불 전염병'이라고 부르는 현상이 무서운 것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발생하면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기후변화에 따른 강우량 감소와 가뭄 이로 인한 고사목 증가 인간 거주지 확대 같은 요인은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닌 만큼 단기간에 해결할 수 없다. 또 어느 하나를 해결한다고 다른 요인이 자연스럽게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 때문에 가주 산불은 더욱 악화할 가능성이 높다.
여름은 더욱 건조하고 겨울비는 더욱 줄어드는 상황이 계속되면서 가주는 계속 건조하다.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은 기후변화인데 이건 전 세계적 현상으로 개선되기는커녕 이제 시작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번 산불을 포함해 지난 2년 동안의 산불을 볼 때 기후변화로 인한 새로운 패턴이 시작됐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그 징후로 전문가들은 지난해 10월 나파와 소노마를 휩쓴 터브스 산불을 든다. 당시 터브스 산불은 우기가 전례 없이 늦어지면서 나무와 덤불은 마를 대로 마른 상태에서 강풍이 부는 상황에서 발생했다. 올해도 같은 패턴이 반복됐다. 산불이 거주 지역을 덮친 패턴도 캠프.힐.울시 산불에서 반복됐다. 산불이 나도 주택이나 인명 피해가 거의 없던 오랜 패턴이 2년 연속 깨졌다.
올해 여름 가주는 역대급으로 더웠다. 식물도 흙도 바짝 말랐는데 가을비는 평균보다 적었다. 바짝 마른 여름을 지났는데 가을비는 오지 않고 건조하고 더운 바람이 불었던 것이다.
마른 풀과 덤불 나무는 산불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꼽힌다. 여기에 벼락이 치거나 낡은 전기선에서 불꽃이 튀기면 쉽게 산불이 붙는다.
지난해 12월 연방 농무부 산하 산림청은 통계 수치를 발표했다. 2017년 12월 현재 가주에는 890만 에이커에 걸쳐 가뭄과 병충해로 고사한 나무가 모두 1억2900만 그루에 달한다는 내용이었다. 가주 역사상 최고치로 2016년 11월 이후에만 2700만 그루가 고사했다. 연방정부와 주정부는 산불의 땔감인 고사목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가주 정부는 고사목 대책팀까지 꾸려 죽은 나무 100만 그루를 연방산림청은 48만 그루를 제거했지만 역부족이다. 고사목이 많은 시에라 네바다 지역의 중부와 남부 지역을 담당하는 산림청의 랜디 무어 지역책임자도 고사목에 대한 우려를 숨기지 않는다.
"이 지역은 고사했거나 고사하는 나무가 증가하면서 산불 위험이 높아 지역사회와 소방관에 위협이 되고 있다."
산불 진화 정책도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미국은 20세기 들어 산불을 최대한 빨리 끄는 정책을 폈다. 이에 따라 전국적으로 덤불과 작은 나무가 많아졌고 가뭄이 들면서 마른 덤불은 산불을 빠른 속도로 번지게 하는 연료가 됐다.
캠프 산불의 경우 1분에 풋볼 구장 80개를 태우는 속도로 번졌다. 죽은 나무가 많았기 때문이다. 기존의 산불 진화 방식이 대처하지 못할 정도로 생태계가 바뀐 것이다. 산불이 마을 하나를 삼키며 대규모 인명 피해를 낳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엔 산불 진화 정책이 산림의 이런 구성을 바로잡는 방향으로 바뀌었지만 산림 구성이 근본적으로 바뀌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산불 빈도가 줄어들 가능성은 높지 않다. 스탠퍼드 대학 노아 디펀바우 지구생태과학 교수는 앞으로 상황이 악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지난 몇 년 간의 상황을 보면 기온 상승과 심화되는 건조한 상태 높아지는 산불 위험성이라는 경향은 강하게 지속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도시화가 산림지역으로 파고드는 것도 쉽게 가라앉지 않을 현상이다. 인간이 살지 않는 미개발 지역과 인간이 사는 개발지 사이에 있는 전환 지역을 뜻하는 '자연과 도시의 접촉면'(WUI)은 산림지역의 도시화를 가늠하는 개념이다.
UC리버사이드가 지난해 10월에 발표한 조사 연구에 따르면 1990년 이후 전국의 신축 주택 가운데 WUI 지역에 세워진 것은 세 채 중 한 채다. WUI 지역도 점점 넓어져 전 국토의 10%에 해당한다. 1990년에서 2010년까지의 변화를 보면 WUI 지역의 신축 주택은 3080만 채에서 4340만 채로 41%의 성장세를 보였다. WUI 지역은 33%가 증가했으며 WUI 지역의 97%는 주택 건설에 사용됐다.
WUI 지역이 넓어지고 주택이 늘수록 산불 위험도 커진다. 집이 세워지면 전기가 들어가고 통행이 는다. 산불 가능성도 커진다. 이번 산불에도 원인 중 하나로 전송선 고장이 꼽힌다.
마을 전체가 불길에 휩싸인 파라다이스는 WUI가 산불에 얼마나 취약한지 잘 보여준다. 파라다이스는 산꼭대기에 있다. 사방이 계곡이다. 마을로 가는 길은 4개의 꼬불꼬불한 산길뿐이다. 2008년 산불 때 당국은 전면 소개 명령을 내렸다가 사람들이 일시에 몰려나와 산길이 막히는 아찔한 상황을 경험했다. 이를 교훈 삼아 당국은 이번에 전면 소개 명령을 내리지 않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불길이 너무 빨리 번지면서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다.
산불로 보면 2018년은 가주 역사상 최악의 한 해였다. 연방 산림청에 따르면 11월 11일 기준 가주 산불 발생 건수는 7579건이다. 2016년보다 2000건 이상 늘었다. 더 이상 산불이 일어나지 않는다 해도 올해 하루 평균 20건의 산불이 발생한 셈이다. 불에 탄 면적은 166만 에이커. 2년 전보다 3배가 늘었다. LA 면적이 30만 에이커인 점을 감안하면 피해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피해액은 산불 진화 비용 13억6600만 달러를 포함해 29억7500만 달러에 이른다.
최근 빈발하는 대규모 산불은 예고된 것이었다. 전문가들은 이미 동시다발적인 거대한 산불이 새로운 미래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불길한 전망을 내놓았다. 피해자들이 "하늘에서 불이 쏟아졌다"고 말한 공포가 어쩌다 생기는 괴이한 불운이 아니라 새로운 일상이 될 수 있다는 경고가 현실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이번 산불로 더 커졌다. 가주 산림소방청의 북가주 지구대장 조나단 콕스의 말처럼 "더 위험하고 더 파괴적이며 더 빈번한 산불은 불행하게도 가주민에게 새로운 기준(new normal)이 되고 있다."
안유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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