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SEM 칼럼] 할아버지의 효용가치
산업혁명 이후 산업사회가 진행되면서 농경사회에서 가장 존경을 받던 남성들이 점차 그 빛을 잃고 복잡한 기계문명 속에서 하나의 부품으로 사라지는 듯했다. 더 이상 완력, 즉 인간의 힘이 필요하지 않으며, 더군다나 인간의 힘보다 엄청난 기계의 힘이 그 자리를 대신했기 때문이다. 산업사회를 이어 후기 산업사회가 진행되면서도 남성에 대한 기회보다는 여성과의 차이를 못 느낄 정도로 성차별이 없어지는 듯이 모든 분야에서 양성이 평등한 능력을 인정받게 된다.특히 우리들의 삶의 가장 중심이 되는 가정에서의 남성 위치는 날로 눈에 띄게 위축되어 간다. 아마 얼마 후에는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존재가 가정 속에서 가장 먼저 없어지는 존재일지 모른다는 막연한 미래 전망들을 내놓고 있다. 더 이상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권위를 찾아볼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완력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는 사회이며 더 이상 정보를 독점하는 시대도 아니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남성이 누리던 위치는 점차 밀려서 뒷방으로 옮겨 가고 있다.
얼마 전 아주 특이한 모임에 초대 받아 간 적이 있었다. 대개 아기 돌잔치는 젊은 아빠 엄마가 동년배의 친구들 중심으로 모임을 하기 때문에, 양가 가족 어른들을 빼놓고는 모두가 젊은 아빠 엄마들이 어린애들을 데리고 와서 같이 즐기는 모습이다. 이제 돌잔치도 대가족 시대 때 흔히 할머니 중심으로 돌잔치를 준비하던 것이 핵가족으로 변모한 오늘날에는, 특히 미국 사회 속에서는 그나마 돌잡이 행사를 하는 바람에 돌잔치 도우미가 준비한 돌잡이 중심으로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날 초대 받아 간 돌잔치는 할아버지가 아주 귀하게 얻은 손자 돌잔치를 베풀어 준 경우라서, 초대된 하객들 대다수가 모두 할아버지 친구들로 채워졌다. 뉴욕에서 아주 특이한 돌잔치로 할아버지의 손주 돌잔치가 아주 성대하게 베풀어져 다들 옛날 모국 고향에서 보던 대갓집 잔칫날을 연상하게 되었다. 권세와 부귀를 가진 대갓집에서 인근의 덕망 있는 분들을 초빙해서 큰 잔치를 베풀며 이제 막 삶을 시작한 손주 녀석의 앞날에 큰 힘이 되어 달라는 열망이 담긴 할아버지의 베품의 자리 같은 느낌이었다.
이제 재력을 갖춘 할아버지 이외의 할아버지들은 대개가 집안에서 할 일이 없어지게 되어 가족들이 모인다고 해도 음식으로 자식들과 손자 손녀들을 입맛으로 사로잡고 있는 할머니 외에는 할아버지의 역할이 사실상 없어지게 되어 모두가 할아버지에게는 형식적인 첫 인사 정도 하는 사이가 되었다. 아마 갈수록 할아버지의 효용가치는 더 떨어지게 될 전망이다. 한때 그토록 강인함과 막강한 추진력은 어디에 두고 왔는지, 괜히 가족 속에서도 가지고 있던 그 옛날 중심의 자리를 멀리서 그리워하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이제는 더 이상 그 옛날의 왕성했던 그 자리로 복귀하기는 어려워진 현실에 하릴없이 취미 생활이나 겨우 챙기고 손주 자동차 운전 정도만 열심히 하는 자리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역사는 큰 수레바퀴가 돌아가듯이 큰 보폭으로 다시 반복을 하게 되어 있다. 지금은 SNS 시대로 수많은 정보와 지식이 홍수처럼 넘쳐나는 가운데 지혜와 경험의 가치는 점차 효용을 잃어가고 있는 시대다. 그 가운데 할아버지의 효용가치는 스스로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로 본다. 어떻게 하면 가족 속에서 가족의 관심을 지속적으로 받으며 가족 속에서 필요한 역할을 하면서 지낼 것인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나 역시 할 일을 자꾸 잃어가기에, 특히 손자 손녀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한 끝에 나름대로 개발한 것이 애들과 손자 손녀들의 발 마사지를 해 주는 일이다. 처음에는 간지럽다고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발 마사지의 효능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제는 서로 먼저 해 달라고 예약을 할 정도가 되었다. 시간도 더 오랫동안 해 달라고 하는 편이기에 내가 생각한 작전은 성공한 편이다.
사실 가족과 피부를 맞대고 만지는 기회가 생각보다 적은 현대 생활이다. 그러나 발을 마사지하게 되면 가족의 발을 통해서 건강 상태와 마음 상태 일부를 엿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발 마사지를 통해서 서로 감정의 교감까지 할 수 있다. 30분이나 한 시간 동안 가족의 발을 만지면서 느끼는 사랑의 교감은 생각하지도 않았던 사적인 대화의 공간이기도 하다. 점차 발을 많이 만질수록 얻어들은 발에 대한 상식의 효능까지 조금씩 알게 되었으며, 발과 연결된 신체의 장애까지 조금씩 깨닫게 되어서 이제는 가족 스스로 자기의 증상을 물어보는 정도가 되었다.
손으로 발을 만지게 됨으로써 할아버지의 기가 어린 자식과 손자 손녀들에게 자연스럽게 전달됨과 아울러 오랜 경험과 지혜가 자연스럽게 전수되는 기회가 된다. 이제는 가족 모임에서 할아버지의 효용가치가 어느 정도 생겨서 서로 먼저 오랫동안 발 마사지를 받겠다고 예약을 하게 되니 잊었던 옛날의 즐거움이 새록새록 되살아난다.
발 마사지를 하면서 배운 것이 내가 좋아하는 것을 무리하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 좋아하는 것을 해 줌으로 해서, 그 즐거움 속에서 서로 잊고 있었던 사랑의 교류가 이루어지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아주 작은 발 마사지가 이토록 가족간의 끈끈한 끈이 되어서 생각지도 않았던 마음의 문을 여는 기회가 되었다. 특히 어린 손자 손녀들을 찬찬이 보는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발 마사지를 통해서 생각지도 않았던 병세를 미리 알게 되어 조기에 교정할 수 있었던 것도 보람 중 하나다.
점차 더 복잡해지는 전자기기들로부터 잠시나마 해방되어 할아버지의 체온을 느끼면서 정신적인 안정과 함께 육체적인 피곤을 풀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 얼마나 큰 보람인지 모르겠다. 화상통화를 하면서 번쩍 발을 들어올리는 손녀가 언제까지 할아버지와 이런 따뜻한 우리만의 인사법이 통할까 싶어서 혼자 스스로 할아버지 효용가치를 높였다고 자부심을 가져본다.
jinhyoungseo@gmail.com
World OKTA 명예회장·현 Global GTC 대표
서진형 / KOSEM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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