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마당] 달을 깎는 남자
비누가루를 풀어내는 손이 뱃놀이 나온 듯물살을 휘 젖는 손가락 사이로 달빛이 튕긴다.
저수지의 가뭄은 길었다.
마른 저수지를 맴돌며 이름 없는 달 조각을 줍기도 하고
남의 저수지에 물을 대주며 달을 관찰 했다
물속의 달 표면이 얼마나 부풀어 오르는지
잘라내야 할 길이와 모양새를 다듬어내는 시간은
달이 지기 전에 끝내야 했다
종일 모형의 달을 자르고 다듬었다
달에도 나이가 있다
연한 분홍의 달은 어린 달이다
실핏줄이 볼록하고 각질의 결이 깊고 어두우면 누런 달
표면이 두껍고 부스러지기도 하는 이 달은
오랜 시간 어둠을 걸어와 낮 달로도 떠 있던 달이다
크기나 굵기는 제 각각이지만
초생 달이나 하현 달 조각으로 잘려 나온다.
일월에서 사월까지
건기를 견디지 못해 몇몇의 동료들이 떠났다
소나기 지나가 듯 손님을 맞기도 했지만
짧은 빗줄기는 생활 속 뿌리까지 스며들지 못했다
달을 깎아 집을 지으려 남자는 세월을 함께 깎는다
임의숙 / 시인·뉴저지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