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개월 방문이 48년째가 됐어요”
전미 미용재료상협 김종덕 전 회장
[시카고 사람들 23]
그래도 영주권은 받았단다. 전미 미용재료상 협회 회장을 지냈고 사우스 55가에서 뷰티서플라이 업소를 운영 중인 김종덕(81•사진) 회장 이야기다. 그는 1975년 시카고로 이사를 했다. 지인 소개로 미국 직장 생활을 하다 1984년 뷰티서플라이 소매업에 뛰어들었다.
“장사 전혀 모르는 상태였어요. 700평방피트 가량의 조그만 가게였는데 매일 큰돈이 들어오니까 겁이 나는 거예요.” 그는 쇼핑몰 내에 매물로 나온 공터를 사서 당시 한인이 운영하는 가게로는 가장 규모가 큰 매장을 열었다.
“그때가 1988년 쯤인 걸로 기억합니다. 케미컬 섹션을 따로 두고 프로라인, 소프트신, 존슨 등 회사와 거래를 했죠. 다른 한인들이 매장 구경을 많이 왔어요.” 그는 한때 3개의 매장을 운영하다 지금은 하나로 줄였다. 30년간 해온 테니스는 지금도 한 주에 한 번 코트에 나가고 비교적 늦게 시작한 골프도 한 주에 한 번은 즐긴다.
그는 미용재료상 업계의 산 증인이다. 회원이 200명이 넘었던 시절 시카고 협회 초대 이사장을 지냈고 전미 협회이사장과 회장을 차례로 역임했다. 조용한 성품이면서 친화력이 강해 부르는 곳이 많았다.
그 덕에 사회활동도 많이 했다. 평통위원을 10여 년 지냈고 한인회장 선거관리위원장을 맡은 적도 있다. 태권도 청도관 출신이기도 한 그는 90년대 말엔 아칸소의 이행웅 관장과 인연이 닿아 태권도시범단 단장 자격으로, 2004년도엔 해외 무역인 자격으로 평양에 다녀왔다. 두번째 방북 때는 백두산 관광도 할 수 있었다.
아내 임영순씨는 별도로 13년간 여성의류점을 하다 얼마 전 정리한 뒤 지금은 자신의 비즈니스를 가끔 돕고 있다고 한다. 슬하에 아들 셋을 두었고 손주가 3명이다.
그의 고향은 경남 함양이다. 6.25와 1.4후퇴의 소용돌이를 겪고 난 1957년 그의 나이 21세 때 서울에 정착한 그는 건국대 야간을 다녔었다고 아련한 옛 얘기도 들려주었다.
“돈 많이 벌겠다는 욕심은 없어요. 건강이 최고입니다.” 미국서 반세기 가까이를 산 노신사의 마음이다.
도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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