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이민역사를 쓴다] "AALDEF와 같은 한인 전문 비영리단체 설립이 꿈" 시민참여센터 법률대책위원장 박동규 변호사
"현재 반이민 분위기 9·11 직후의 10배·20배"
"인종혐오 범죄로 누구라도 피해 볼 수 있어"
뉴욕에서 약 30년간 무료 상담 등 봉사활동
재외동포유공자 외교통상부 장관상도 수상
지난해부터 시민참여센터 이민자 보호 법률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동규(56) 변호사는 앞으로의 꿈을 묻는 질문에 이처럼 대답했다.
지금 대책위에 참여하고 있는 변호사들이 중견급 이상 경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칭) 한인 법률교육재단(KALDEF)'을 만들 역량은 충분하다는 것.
박 변호사는 "펀딩 소스만 확보된다면 KALDEF를 죽기 전에 만들고 싶다"며 인적 자원은 갖춰져 있으나 재정적으로 준비가 되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다른 개인적인 꿈을 묻는 질문에 박 변호사는 "사회적 약자를 돕는 일에 보람을 느끼는 것 이상 재미있는 일은 아직 찾지 못했다"며 "지금 하고 있는 이민자보호교회(이하 이보교) 지원 활동과 시민참여센터 활동을 죽을 때까지 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현재 '시간이 돈'인 12명의 변호사로 구성된 대책위가 이보교에 법률적 지원을 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봉사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답게 "십일조하는 마음으로 봉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이보교 활동을 하고 있는 목사·변호사들은 모두 무료로 봉사하고 있다.
대책위는 지금까지 5건의 한인 케이스를 도왔는데, 주로 이민 구치소에 수감된 한인으로부터 연락이 온다고 박 변호사는 전했다. 최근엔 시민권자 배우자가 체포됐으나 대책위의 도움으로 석방되기도 했다고 전했다.
또 최근에는 시카고·LA·조지아주 등 전국에 있는 교회들이 참여해 이보교 전국준비위원회도 결성해 앞으로 전국 네트워크를 구축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이민자 보호 활동을 강화하게 된 계기에 대해 박 변호사는 "2017년 초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반이민 행정명령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며 "반신반의 하면서도 그래도 미리 준비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마음에서 이민 전문 변호사 중심으로 대책위를 구성하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 트럼프 행정부의 반이민정책 전개는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이 박 변호사의 평가다.
그는 "9.11 테러 이후 이민법이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현재 진행되는 반이민 분위기의 강도는 그 때의 10배·20배"라며 "트럼프 행정부는 1965년 평등한 이민법(INA) 제정 이전으로 돌아가려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1965년 이민법 제정 이전에는 이민자의 대부분이 백인이었으나 지금은 90% 이상이 유색인종인데, 백인 위주의 이민자만을 받아들였던 시대로 되돌아가자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박 변호사는 "트럼프 이민정책은 합법.불법을 막론하고 이민자 수를 줄이려는 것으로, 처음에는 무슬림과 서류미비자를 타겟으로 시작했지만 이후 유학생 등 비자 소지자로 확대됐고 궁극적으로는 이민자 수를 절반으로 줄이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지금의 이민정책은 인종차별적인 정책일 수 밖에 없다"면서 "현재 많은 한인 영주권자나 시민권자들이 이 문제를 불체자 문제로만 인식하면서 위기의식이 없다"고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인종혐오 범죄가 최근 급증하면서 누구라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며 "지난해 뉴저지주 버겐아카데미에서 발생한 사건이 대표적 사례"라고 말했다.
한인 이민자 권익옹호 활동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펀딩이 필수적이지만, 현재 시민참여센터는 전국적인 한인 풀뿌리 운동 역량 결집을 위해 워싱턴DC로 인적.물적 자원이 대거 옮겨 가면서 뉴욕·뉴저지 로컬 차원의 활동을 위한 재원은 크게 부족한 실정이다.
이와 관련 박 변호사는 "오는 10월 25일 연례만찬을 계기로 1인1달러 후원 캠페인을 하고 있다. 하루에 1달러, 한 달 30달러를 내는 후원자를 최대한 확보해 커뮤니티의 지지를 받는 기관으로 활동하고 싶다"고 소망을 밝혔다.
박 변호사는 한인사회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이민법 전문 변호사 중 한 사람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누구 못지 않은 굴곡진 이민사를 겪으면서도 꾸준하게 커뮤니티 봉사 활동을 이어 왔다.
별도의 종교이민 분야가 없던 1981년 가톨릭 계통 취업이민 형태로 이민을 온 부모님을 따라 오하이오주에 처음 정착한 박 변호사는 미국에 온 지 두 달 만에 부친이 사망하는 어려움을 겪게 됐다.
1982년 어머니와 4형제가 6개월만 머물 예정으로 뉴욕으로 이주했다가 지금까지 살게 됐다고 박 변호사는 전했다.
그는 "어머니께서 봉제공장 미싱사, 야채가게 계산원, 할렘 커피숍의 웨이트리스 등 온갖 힘든 일을 하시며 4형제를 공부시키셨다"고 말했다.
가정형편상 대학도 당시엔 학비가 들지 않았던 뉴욕시립대(CUNY)에 진학해 퀸즈칼리지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는데, 졸업하는 데 꼬박 10년이 걸렸다.
대학 졸업에 이처럼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은 당시 한국의 민주화·인권 상황과 관련해 뉴욕한인YMCA 부회장, 뉴욕한인대학생연합회 총무, 뉴욕기독청년연합회 회장 등 한국 민주화와 인권운동을 위한 한인 단체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했기 때문이다.
1990년부터는 천주교 뉴욕대교구 이민사무국에서 일하면서 본격적인 이민봉사 활동에 나섰다. 이민국이 공인한 최대 비영리단체인 천주교 이민사무국은 스태프 변호사만 55명이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크고 현재도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단체다. 이민자에 대한 법률서비스와 이민자 권익옹호 활동이 주 업무인 이곳에서 카운슬러로 10년간 일하면서 수많은 이민자들을 위한 무료이민상담을 했다.
박 변호사는 천주교 이민사무국에서 일하는 동안 브루클린 법대에 진학해 1998년 졸업하고 2000년부터 현재까지 맨해튼에서 개인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개인 사무실을 연 이후에도 첫 2년간은 천주교 이민사무국에서 봉사활동을 계속했으며 이후 무지개의 집, 퀸즈한인천주교회 생활상담소 등에서 1000명 이상의 한인들을 위해 무료 상담활동을 펼쳤다.
이 같은 봉사활동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001년에는 한국 정부로부터 재외동포유공자 외교통상부장관상을 받기도 했다.
처음 뉴욕으로 이주하면서 브롱스로 왔던 박 변호사는 이후 퀸즈 플러싱·베이사이드를 거쳐 뉴저지 올드태판에 머물다 현재는 팰리세이즈파크에 거주하고 있다. 주요 한인 밀집지역을 모두 거치면서 한인사회를 더 잘 이해하게 된 셈이다.
박 변호사는 현재 한인 입양인 관련 비영리단체인 세종문화교육재단의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부인 줄리아 박씨와의 사이에 법대에 재학 중인 승민씨와 대학생인 상훈·종원씨 등 세 아들을 두고 있다.
박기수 기자 park.kisoo@koreadailyn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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