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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 이민역사를 쓴다] 웨스트월드 속 AI 탈출 돕는 온정의 공학자…배우 레오나르도 남

무작정 뉴욕에 와서 연기 수업 끝에
영화·TV 드라마 등 40여 편 이상 출연

작년 코레아시안미디어 ‘베스트 액터’
“한국에 가서도 활동하고 싶다” 희망

다니엘 대 김, 스티븐 윤 등 한인 배우들이 할리우드에서 인정받고 있는 가운데 최근 한인 배우 존 조가 주연을 맡은 서칭(Searching)도 개봉 첫 주에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인기를 끌었다.

이들 유명 한인 배우들의 대열에 인기 드라마 HBO의 ‘웨스트월드(West World)’에서 감초 역할로 주목 받는 레오나르도 남씨도 함께하고 있다.

팬들에게는 인기가 많아 다음 시즌에도 꼭 보고 싶다는 요청이 많지만 정작 한인사회에서는 그가 한인 배우라는 사실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

남씨는 1979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냈다. 6살때 가족과 호주로 이민 갔다가 배우가 되고자 홀로 뉴욕행을 결심한 남씨는 자신을 “글로벌 시민”이라고 말한다.

호주에서 초등학교 재학 중 수업시간에 ‘리어왕’의 독백을 연기하면서 배우의 길로 접어들었다. 부모님의 권유로 호주 뉴사우스웨일즈 대학에서 건축학 공부를 시작했지만 19세의 나이에 배우의 길을 택해 300달러만 들고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뉴욕으로 올 때 그는 걱정하는 부모님께 그저 괜찮을 거라고 말씀 드리며 왔지만 정작 도착하고 나서는 막막했다고 한다. “가진 돈은 적고 아는 사람은 없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도 막막했다”는 그는 뉴욕에 도착한 밤, 센트럴파크의 벤치에서 잠을 청했다.

뉴욕에 도착 후 “제대로 된 연기 수업을 받고 싶었다”는 남씨는 우피 골드버그, 매튜 맥커너히 등 유명 배우들을 길러낸 HB스튜디오에서 연기 수업을 받은 후 퍼블릭시어터 등 뉴욕 유명 극단들과 함께하며 내공을 쌓았다.

하지만 꿈에 부풀어 도착한 뉴욕이 마냥 좋지는 않았다. 당시의 뉴욕에는 함께 공감하고 위로가 될 한인·아시안 배우 지망생이 흔치 않아 외롭고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그러던 중 ‘스타트렉(Star Trek)’을 통해 접하게 된 조지 타케이는 그에게 희망이자 롤모델이었다.

아시안 배우는 중국음식 배달원이나 사무라이, 엉성한 학생 같은 역 밖에 주어지지 않는 것처럼 느껴져 답답했을 때 이미 오래 전 인기 공상과학 드라마에서 우주선 파일럿의 캐릭터로 대중의 사랑을 받은 그의 모습에 용기를 얻은 것이다.

남씨의 할리우드 데뷔작은 2004년 개봉한 ‘퍼펙트스코어(The Perfect Score)’로 스칼렛 요한슨, 크리스 에반스, 에리카 크리스틴슨과 함께 출연했다. 그 후 영화 ‘패스트&퓨리어스: 도쿄 드리프트’와 인기 수사 드라마 CSI 등 40편이 넘는 영화∙TV 드라마 등에 출연해 온 그는 웨스트월드에서의 활약으로 인지도를 단번에 높였다. 아시안 연예매체 ‘코레아시안미디어(Kore Asian Media)’는 지난해 아시안 영화인 시상식인 제10회 ‘언포게터블 갈라(Unforgettable Gala)’에서 남씨에게 ‘베스트 액터’상을 수여했다.

웨스트월드는 인간의 모습을 한 인공지능(AI) 로봇들이 ‘호스트’로서 방문객들이 도덕관에 얽매이지 않고 마음껏 유흥과 살인을 일삼을 수 있도록 오락을 제공하는 테마파크가 배경이다. 남씨는 호스트들을 수리하는 엔지니어 펠릭스 럿츠 역을 맡고 있다. 럿츠는 첫 시즌의 겁도 많고 항상 상사에게 꾸중 받는 캐릭터를 탈피해 지난 시즌에는 ‘자각’이 생긴 AI 호스트 메브(탠디 뉴튼)의 탈출을 돕는 주요 캐릭터로 성장했다.

웨스트월드를 포함해 그의 최근 작품 중에는 공상과학이나 장르를 비트는 작품이 많다. 그는 “웨스트월드가 상상 속의 장소이기 때문에 관객을 다소 불편하게 할 수도 있는 질문들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파격적인 아이디어를 너무 현실적으로만 그려내면 반감이 먼저 들지만 공상과학적인 면모를 덧대거나 장르를 비틀면 관객과 작품 사이에 안전거리가 확보된다는 말이다.

웨스트 월드는 인간 투어리스트들이 AI 호스트를 상대로 어떤 일이든지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초반에는 인간이 얼마나 잔인하고 비정할 수 있는지를 보여줬고 지난 시즌에서는 ‘자각’이 생긴 AI 호스트들의 반란으로 진정한 ‘각성’과 ‘자유의 퀄리티’란 무엇인지 질문해 관객의 심리를 건드린다.

그는 인간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는 연기를 하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항상 이전 작품과 크게 다른 역할을 맡고 새로운 캐릭터를 만나면 최대한 다각도로 분석한다.

배우라는 직업이 “불특정 다수인 관객에게 직접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일이어서 보람차다”는 남씨는 캐릭터를 볼 때 스토리텔링을 하는 역할을 맡으려 노력한다. 최근 합류한 아마존의 범죄 드라마 스니키피트(Sneaky Pete)와 주연을 맡게 된 독립영화 허밍버드(Hummingbird) 또한 캐릭터들이 깊이 있게 다뤄져 촬영이 즐겁다고 한다.

올해 들어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Crazy Rich Asians)’과 ‘서치(Searching)’등 아시안 배우들을 전방 배치한 영화들의 성공이 할리우드에 끼친 영향에 대해 남씨는 “머지 않아 워너브라더스 등 대형 스튜디오와 유명 제작사들이 아시안 배우들을 내세우는 작품을 지원하는 것이 보편적인 현상이 될 것”이라 점쳤다.

남씨는 최근 서치 시사회에서 존 조가 “이제는 우리도 이야기를 직접 전하고 주연을 맡을 수 있다”고 한 말에 깊이 공감하고 있다.

LA로 거처를 옮겨 연기에 몰두한지 어언 14년. 어머니와 형은 그에게 “코리아 타운이 큰 LA에 가더니 한국 사람 다 됐다”며 놀린다. 하루 일과가 고단했던 날이면 친구들과 순두부 찌개를 먹으면서 회포를 풀고 마음이 헛헛하면 한국식 고깃집에 간다는 그는 “어릴 때 먹고 자란 음식이 소울 푸드”라며 24시간 순두부 집에 자주 들락거린다고 밝혔다.

그가 후배 배우 지망생들에게 하는 조언은 “절대 자신을 믿을 것”과 “항상 자신을 챙길 것”이다. 그는 뉴욕에 도착한 날, 센트럴파크 벤치에서 노숙했던 일을 언급하며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뭔지 확신이 없었으면 그러지 못했을 것”이라고 무명시절을 회상했다. 또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도전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챙겨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내 마음 상태가 어떤지, 어떤 일을 할 때 행복한지, 의식적으로 자주 자가점검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남씨는 한국에도 수 차례 방문했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으로 “한국의 프로듀서들은 무척 실험적이고 용감하다.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서도 활동하고 한인 감독들과 일하고 싶다”고 희망했다.


김아영 기자 kim.ahyoung@koreadailyn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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