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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 후 더 존경받는 카터 대통령의 고향

조지아주 플레인

강추위가 풀릴 때쯤 플로리다 템파에서 조지아를 거쳐 서부로 이동했다. 서부로 향하는 길에 조지아주 플레인을 방문했다. 플레인은 1840년경 형성된 인구 750여 명의 농촌이다. 미국 39대 대통령이자 노벨평화상 수상자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태어나고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으로 유명하다.

그는 대학과 군생활, 조지아 주지사 시절과 대통령 시절을 제외하곤 줄곧 여기서 살았다. 카터 농장과 학교, 대선 당시 선거사무실로 사용했던 기차역 등은 국립사적지로 지정되어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1976년 11월 대선에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지미 카터는 도덕성 회복과 인권 외교, 주한미군 철수를 대선 공약으로 제시했다. 1975년 베트남전쟁 패배와 국가재정 악화, 워터게이트 사건이 이슈가 됐다.

카터는 닉슨의 사임으로 대통령이 되었던 제럴드 포드를 근소한 차이로 누르고 당선됐다. 당선 후 곧바로 주한 미국 철수를 지시했다. 미군의 한국주둔은 북한을 자극하기 때문에 한반도 평화에 해가 되고 미국의 전쟁 개입 위험이 커진다고 역설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유신독재와 인권침해를 비난하며 주한미군 철수를 놓고 충돌했다. 북한 군사력이 남한보다 앞선다는 사실에 민주당 내에서도 주한미군 철군 반대론이 거세지자 1979년 카터는 철군을 보류했다.

카터는 1981년 대통령에서 물러난 뒤 전직 대통령 자격으로 많은 활동을 했다. 사랑의 집짓기 운동을 하며 봉사활동에 앞장섰다. 동남아시아 쓰나미 사태나 카트리나 사태, 아이티 지진 등 굵직한 사건 때마다 봉사단을 조직해 직접 참여하고 있다.

93년 1차 북핵 위기 때 평양을 방문하여 김일성 주석을 만나 북핵문제 해결과 북미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했다. 인권 운동과 국제분쟁 중재를 인정받아 2002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2011년 4월에는 마르티 아티사리 전 핀란드 대통령, 그로 부룬드란트 전 노르웨이 총리, 메리 로빈슨 전 아일랜드 공화국 대통령을 비롯한 세계의 여러 전직 지도자들과 같이 방북했다.

북한의 핵개발 책임은 전적으로 미국과 남한에 있다는 북한 당국의 입장만을 앵무새처럼 한국 측에 전달해 '한반도 문제의 중재자'로서 자격이 없다는 비판을 들었다.

카터는 현직에 있을 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지만 전직 대통령으로 37년 넘게 여러 활동을 한 덕에 칭송받고 있다. 북한문제에 관심 많은 카터 전대통령은 2018년 6월 12일에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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