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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일의 세상 보기] 양아치만도 못한… 국방장관과 대령이 치고 받는 나라

국가 전체가 콩가루 집안 될 지경
지휘체계 무너진 軍, 제구실 의문

깡패마저 질색하는 양아치 행각들
최소한의 체면·염치·의리도 모르는




양아치-.

국어사전은 '거지' 혹은 '언행이 천박하고 못된 사람'이라고 풀이합니다. 밥 빌어먹는 거지가 거의 사라진 요즘은 후자를 지칭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한국이 먹고 살기 힘들었던 1960년대까지는 버려진 종이 등 폐품을 주어 생활하는 넝마주의를 가리키기도 했습니다. 사회상을 그대로 반영하는 언어인 만큼 같은 단어라도 뜻이 달라지게 마련이지요. 여담으로, 한국 중.고 여학생들이 걸핏하면 입에 담는 '졸라 힘들어' '욜라 어려워'가 있습니다. '매우' '엄청'이라는 뜻으로 사용하는데 어원을 알면 본인들도 끔찍할 겁니다. 군대 등 사내들 집단에서 생긴 'x빠지게'가 'x나게'로, 다시 'x나'가 됐는데 이것이 진화(?)한 졸라.욜라를 여학생들이 스스럼없이 쓰니까요. 주지하시듯 x는 남성의 거시기입니다.

양아치 어원은 거지를 일컫는 동냥아치라고 합니다. 구한말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극빈자들이 구걸을 하다가 일부가 장터에 몰려들어 장사를 방해하는 수법으로 먹을 것을 뜯어낸 데서 비롯했다는 것이지요. '막무가내, 억지 부림'을 가리키는 떼거지란 말도 여기서 나왔고.

아무튼 깡패도 못 되는 주제에 깡패짓거리를 일삼는 부류가 양아치입니다. 남을 협박하거나 두들겨 패고 돈을 뺏는 등 불량배라는 점에선 둘이 진배없으나 양아치에는 '비열함' 추가돼있습니다. 뒷골목 의리(義理)라는 게 그렇고 그런 것이라 함부로 쓸 단어는 아니기는 한데, 어쨌거나 양아치에는 '의리를 모르는 쓰레기'라는 경멸이 담겨있습니다. 예컨대 연약한 여인이나 불쌍한 아이들 돈까지 탐하면 양아치로 매도됩니다. 때문에 깡패 본인도 양아치라고 부르면 질색합니다. 칼 들고 나섭니다. 영화 장면에도 종종 등장하듯이 건달은 못될망정 천박.야비한 양아치는 절대 아니라는 것이지요. 경찰에 붙잡혀 온 깡패가 고분고분 조사받다가도 "너 양아치새끼지"라는 형사의 호통만은 못 참고 달려든다는 게 우연이 아닙니다. '주먹' '어깨' 혹은 '가다(어깨의 일본말)'로 불리던 일제 강점기엔 협객 풍 사내들도 있었으나 해방 후엔 깡패라는 이름으로 '통일'됐는데 양아치는 깡패 축에도 못 끼는 깡패라고나 할까요. 깡패 어원과 관련해 자유당 시절 정치폭력배로 악명을 떨친 유지광은 "폭력단 갱(gang)에 무리를 뜻하는 패(牌)가 결합해 '갱패'가 됐고, 갱패→깽패→깡패로 변화했다", 어떤 언어학자는 강(强)하다는 강(된소리 '깡'으로)에 무리 패가 합해졌다고 주장하는 등 구구합니다만 여하튼 악질 깡패마저 기피하는 양아치니 오죽할까 싶습니다.

양아치를 영어로 'bully'나 'gangster'로 번역하지만 아무래도 의미가 와 닿지 않습니다. 다른 학생을 괴롭히는 불량 청소년(bully)이나 폭력을 휘두르는 깡패(gangster)와 동의어로 쓰이는 경우가 없진 않습니다만 아무래도 뉘앙스가 다르네요. 굳이 양아치를 표기해야 한다면 'gangster' 앞에 'nasty'나 'dirty' 'base'라는 수식어라도 동원해야 할 겁니다.

깡패들도 기피하는 이 양아치가 공석 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지난 7월 하순, 경찰청장 인사 청문회 결과를 논의하던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입니다. 민주당 강창일 의원의 발언 중 애국당 조원진 의원이 끼어들면서 논쟁이 벌어졌고 강 의원의 "완전히 양아치 수준"에 조 의원이 "(나도)욕해봐! 선배 자격이 없는 거야"로 받아 치면서 난장판이 됐습니다. 정식 소집된 국회 상임위에서, 4선의 여당 의원이 3선의 야당 의원을 향해서 행한 발언이니 '공식(公式) 등장'으로 불러도 되나요. 어차피 '양아치'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고, 더한 욕설도 심심찮았으니 뉴스 비중은 떨어집니다만 시절이 시절인지라 양아치가 회자되고 있습니다.

국회 양아치 시비는 3년 전에도 있었습니다. 당시의 장본인도 강 의원이었지요. 소속만 새정치연합으로 달랐습니다. 강 의원은 예결위 소위에서 상대가 말을 끊자 "저×× 깡패야~ 저런 양아치 같은…"하며 호통을 쳤습니다.

사실 욕설로 치자면 '개xx'가 으뜸일 겁니다. 'F'로 시작되는 영어 욕설과 같은 뜻의 'ㅆxx'도 있고요. 하지만 직접 옮기기조차 민망해 이처럼 x로 둘러대는 정도입니다. 그러니 점잖을 빼야 하는 정치인이 공석에서 차마 입에 올리기는 어려울 겁니다. 그래서 대타로 등장한 게 양아치인 모양입니다. 다른 욕설을 덧대지 않아도 상대의 속을 확 뒤집어 놓을 수 있고 대다수에게 의미가 전달되니까 말입니다. 저열한, 비겁한, 인간 쓰레기 등등 누구나 싫어하는 뜻을 함축하고 있으니 효과만점이지요. 모욕을 참지 못한 상대가 거칠게 대응하다 대중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 가능성도 농후하니 패착을 유도하는 도발수단으로서도 여간 용이한 게 아닐 수 없습니다.

'언어는 존재의 집' 이라던가요. 말하는 이의 됨됨이를 그대로 반영한다는 의미일 겁니다. 그러고 보면 비속어를 구사한 당사자가 양아치 소리를 들은 상대 이상의 고약한 평가를 받을 여지가 다분합니다. 사태의 발단이 무엇인지, 누가 분란을 촉발했는지 등에 따라 둘에 대한 비난 수준이 달라지겠습니다만 쌈질 자체만으로도 좋은 평가는 그른 겁니다. 여하튼 덕분에 국회 전체가 양아치 수준이라는 덤터기를 썼습니다. 양아치 수준임이 비단 어제 오늘의 것이 아닌데 새삼스럽게 들춘다는 힐난도 있으니 다음 얘기나 겉들이고 그만두렵니다. 실은 '양아치' 국회를 넘어서는 다른 볼썽 사나운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지요.

서울에선 계엄령 문건을 둘러싸고 국방장관과 기무사령부 간에 난투극이 벌어졌습니다. 온전한 나라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 터졌습니다. 기가 막힙니다. 아찔합니다. 국가 최후의 보루가 콩가루가 됐습니다. 기무사 일개 대령이 군 최고지휘관인 장관을 공개리에 치받으며 진실게임을 벌이는 창군 이래 초유의 추태가 연출되는 위기상황임에도 청와대는 '구경'이나 하는 모양새입니다. 해군출신 장관의 지휘권 손상, 하극상 어쩌느니 운운하는 게 한가하게 들리는 가공할 사태입니다. 다들 소식을 들었을 터이기도 하지만 너무나 끔찍하고 한심해서 재론을 않으렵니다. 앞서 욕설 예를 들며 '개xx'라고 에둘러 옮겼듯이 소름 돋치고 구역질이 나니까요.

한마디만 거든다면 이 문건이 왜 큰 문제가 되는지 아리송합니다. 수 십 만 다중이 운집한 시위가 격해져 경찰력만으로 치안유지가 불가능할 때 마지막에 기댈 곳은 군입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위수령이나 계엄령을 준비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나요. 그냥 손 놓고 있다면 직무 태만.유기를 넘어 반역죄 수준으로 처벌받아야 할 겁니다. 자발적 민주 시위를 훼방하려 했다는 이유를 들지만 만약 불순세력이 끼어들어 대규모 혼란 사태를 일으킬 소지가 충분한데 그래도 관망만 해야 할까요. 군이 바보 멍청이 입니까. (박근혜) 대통령이 출동명령 내린다고 총 들고 진압에 나설 리 없습니다. 김영삼 정부의 하나회 숙군 이후, 김대중 정부 시절 서해안 교전 처리 등을 겪으며 이빨 빠진 군대가 된 지 오래입니다. 차라리 그럴 패기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싶을 정도입니다. 탱크로 민(民)을 제압할 수 있다고 믿는 장교가 단 한 명이라도 있을지 궁금합니다.

말로는 진실 규명이라지만 저만 살겠다고 버둥대는 꼬락서니가 역력합니다. 명예나 체면.염치.의리는 아예 실종됐습니다. 나라 기둥을 이 지경으로 만든 정치권은 물론 장난감 병정으로 전락한 지휘관들도 크게 반성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최소한의 자존감과 의리는 지켜야지요. 실체를 은폐하라는 게 아니라 이름 값, 가슴에 단 알록달록 훈장 값은 하란 말입니다. 그런데 막가파만도 못한…

이런 아수라이기에 '양아치만큼의 의리도 없다'는 돌팔매가 날아듭니다. 양아치도 제 두목은 모시고 두목은 똘마니 챙긴다는데 위아래가 뒤엉켜 싸우는 목불인견 추태 때문이겠죠. 팔뚝에 문신 새기고 뒷골목 휘젓다가 센 상대 만나면 땅바닥에 머리 박고 기는 양아치만도 못하다니 말이 되나요. 제 허물 감추느라 다른 양아치 찔러 바치는 양아치 세계의 의리는 따질 것도 없는데 그만도 못 하다니…

백악관이 'Supreme Leader'로 명명한 북한의 '젊은 지도자' 웃음소리가 뉴욕까지 들립니다.


김현일 /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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