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진맥 세상] 의사의 책임, 환자의 권리

막상 의료계에 들어와 보니 현실이 더욱 실감난다. 분야를 막론하고 점점 영리추구로 치닫는 병원, 갑의 입장에서 환자를 을로 대하는 일그러진 프로페셔널리즘, 의료에 대한 환자들의 무지와 맹신 등이 한데 어우러져 '인술'이 있어야 할 자리에 '상술'만 만연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

며칠 전 한 여성 환자로부터 하소연을 들어야 했다. 이 여성은 나름대로 건강 지식을 동원하며 이야기를 꺼냈다. 요지인 즉, 자신의 판단은 혈압약을 먹을 필요도 없고 먹고 싶지도 않은데 주치의가 "먹지 않으려면 오지말라"고 했다며 주치의를 바꿔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자신의 수축기 혈압은 130~150을 오가는데 의사는 규정에 따라 혈압약을 처방하지만 이 여성은 '정상 혈압'이란 기준치에 의문이 있고, 혈압보다 오히려 약의 부작용이 더 끔찍해서 먹을 생각이 없는데도 의사는 자신의 판단을 무시한다는 것이었다.

응급 상황이 아닌 경우 의사는 처방에 앞서 환자에게 '설명 후 동의(informed consent)'를 받도록 되어 있다. 약이나 수술 처방을 내릴 경우 장단점을 충분히 설명하고, 환자가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의료 현장에서 환자들이 납득할 만한 '설명 후 동의'가 이뤄지는 경우는 드물다. 충분하게 설명해 줄 시간도 없을 뿐더러 의사들은 대개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환자로 하여금 처방을 따라오도록 유도하지 '잘 선택해서 판단하라'는 입장과 거리가 멀다. 그렇다 보니 갑질적 언사가 나오는 것도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의사들에게만 문제를 돌릴 일도 아니다. 의사들로 하여금 '갑'의 자리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어준 데는 환자들의 맹신과 무지도 한몫을 하고 있다. 현대 의료의 약물 오남용 문제는 이미 다 알고 있다. 환자들도 약 없이 건강하게 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비슷할 것이다. 그런데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약 달라고 하는 데선 의사들도 어쩔 도리가 없다. 의사가 "지금 복용하고 있는 약으로도 충분하다"며 주의를 줘도 "그 의사는 약도 주지 않는다"며 불평을 쏟아내고 다니는 환자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약의 장단점을 이해하고 절제하는 모습보다는 약이 자신을 구해줄 것이라고 믿는 '맹신' 앞에서는 의사들도 딴 도리가 없는 것이다.

얼마 전 건강강연회에서 이런 말을 했었다. "여러분들, 물건들 많이 사시죠. 상인이 이거 좋다고 권하면 무조건 삽니까. 요모조모 따져 신중하게 구입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왜 의사들이 약 먹으라면(사라면) 무조건 먹습니까(삽니까).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약을 적극적으로 권하는 의사, 부작용에 대한 생각도 없이 많은 약을 먹는 환자, 그 배경에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의료보험이 있다. 환자는 당장 주머니에서 돈 나가는 것 아니니 약 처방을 거리낌없이 받고, 병원 입장에서도 약과 검사를 많이 처방할수록 수입이 좋아지니 서로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그 와중에 과잉진료의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들에게 떨어지고 있다.

자연치유를 지향하는 미요시 모토하루는 저서 '의사와 약에 속지 않는 법'에서 이렇게 말한다. "의사가 약이나 수술을 받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협박'하지 않으면 병원 경영이 불가능하다. 충분한 상담은 보험도 안 된다. 그러니 병원 입장에서는 불필요한 검사나 투약, 수술을 하고 상담은 하지 않는 편이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환자 중심의 의료가 되기 위해선 의사는 공무원 같은 직업이 되어야 한다."

백번 공감되는 말이다. 그러나 갈 길은 요원하다. 환자와 의사 모두 부조리한 현실을 각성하고 '인술'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공감대를 만들어 내는 길 외에는 없다.


이원영 / 한의학 박사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