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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셔 잔디광장은 한인-멕시칸 '화합의 장'

월드컵 응원 이모저모
붉은색 사이 드문드문 녹색
승패 떠나 즐겁게 축제 관람

잘 싸워줘서 더 아쉬웠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서 한국이 조별 두 번째 경기인 멕시코전에서 2대 1로 패했다. 하지만 23일 윌셔 잔디 광장에 함께 모인 한인들과 멕시코계 주민들은 자국의 팀 선수들을 힘껏 응원하며 세계인의 스포츠 축제 '월드컵'을 함께 즐겼다.

오전 7시30분, 경기 시작 30분 전, 이미 윌셔가 잔디광장은 붉은 티셔츠를 입은 한인들로 붉게 물들어 있다. 그런데 1차 전 때와는 다르다. 붉은색 사이로 녹색이 드문드문 섞여있다. 멕시코계 주민들도 자국팀 선수를 응원하기 위해 잔디광장을 찾은 것. 이날 광장에 모인 응원단의 10%는 멕시칸이었다.

특히 멕시칸 친구, 커플, 직장동료와 함께 와 응원하며 즐기는 모습이 많이 눈에 띄었다. 한인 유이삭(37)씨는 직장동료인 루이스 바스크스(23)와 함께 각각 자국의 붉은색과 녹색 티셔츠를 입고 광장을 찾았다. 유씨는 "이번 경기는 멕시칸과 한인들 화합의 장이다. 서로 응원도 해주고 경쟁도 하면서 즐겁게 관람하고 있다. 누가 이기든 의미 있는 경기"라고 말했다.

멕시코계 남편과 함께 커플티까지 맞춰 입고 응원전에 나온 정다혜씨는 "경기도 경기지만 응원자체가 너무 재밌었다. '대한민국' 티셔츠를 입은 남편이 한국팀을 응원할 줄 알았는데 멕시코 팀을 열심히 응원하는 걸 보고 속은 것 같다"며 웃어보였다.

오전 8시, 경기를 시작하는 휘슬과 함께 응원전도 시작됐다.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 4년 만에 들어보는 외침이다.

전반 26분 카를로스 벨라에게 페널티킥 골을 허용했지만 한인들은 1차전 때보다 팽팽한 경기를 치르며 잘 싸워주고 있는 선수들을 향해 더욱 응원의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후반 21분 치차리토의 두 번째 골을 허용하자 아쉬움의 탄성이 흘러나왔다. 게다가 석연치 않은 판정에 황당해 하며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다.

이후 한인들의 얼굴이 경직되기 시작했다. 응원도 맥이 빠지는 듯했다. 그렇게 모두가 끝났구나 생각하며 망연자실 앉아있던 후반 48분, 손흥민 선수의 극적인 골이 터졌다. 한인들은 잠시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더니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얼싸안고 기쁨의 함성의 질렀다.

이후 한인들은 경기 종료를 3분여 남겨 둔 상황이지만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는 듯, 있는 힘껏 목청을 높여 한국팀을 응원했다. 이날 비록 경기는 졌지만 한인과 멕시코계 주민 그리고 한인타운 인근에 살고 있는 타인종들까지 함께 응원하며 세계인의 축제 월드컵을 즐기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경기였다.

경기 후에는 한인들은 함께 온 멕시칸 친구에게 축하를 전했고 멕시칸들은 승리를 기뻐하면서도 한국팀도 잘 싸웠다며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멕시코계 주민 프랜시스코 조지(60)는 "한인타운에서 오랫동안 살고 있다. 한인들과 함께 즐기며 응원하기 위해 잔디광장을 찾았다"며 "한국 vs 멕시코전을 볼 수 있는 기회가 평생 살면서 몇 번이나 있겠나. 또한 승패를 떠나 오늘 경기는 정말 좋은 경기였다"고 전했다.

주말이어서인지 어린 자녀와 함께 가족단위로 응원을 나온 한인들도 적지 않았다. 오렌지카운티에서 아내와 어린자녀들과 함께 온 케니 지(32)는 "나도 어릴 적 이 잔디광장에서 응원했던 기억이 있다. 그 좋은 추억을 아이들에게도 남겨주고 싶어 함께 와서 응원을 하게 됐다"며 "선수들도 열심히 싸워준 것 같다"고 격려의 메시지를 빼놓지 않았다.

아직 16강을 향한 한국팀의 경기는 끝나지 않았다.


오수연 기자· 장수아 인턴기자 oh.sooyeon@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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