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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창] '예맨 난민' 시험지 받아든 한국

현대 국가는 대부분 다민족 국가다.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캐나다, 중국, 인도 등 큰 나라들이 모두 그렇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서구 선진국들도 다양한 출신의 이민자나 난민을 받아들인다. 문제도 있지만 사회적 활력의 원천이라는 긍정적 요소가 더 많기 때문이다.

한국이나 일본, 이스라엘 같은 단일 민족국가는 예외적이다. 유달리 혈통에 대한 집착이 강한 우리도 역사를 조금만 더듬어보면 민족 순혈주의가 얼마나 자가당착인지 알 수 있다. 삼국시대까지만 해도 지금 같은 민족 개념은 없었다. 신라는 당나라와 더 가까웠고 백제는 왜(倭)와 더 친밀했다. 고려 때도 다양한 이민족이 함께 어울려 살았다. 대표적인 경우가 발해 유민 포용이다.

발해는 698년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 등을 규합해 세운 나라다. 한 때 '해동성국'이라 불리며 통일신라와 함께 10세기 중반까지 우리 역사 남북국 시대를 이루었다. 조선 초기 편찬된 '고려사'에는 926년 거란에 의해 발해가 멸망한 후 얼추 12만 명의 유민이 고려로 넘어왔다고 기록돼 있다. 고려 전기 인구 200만 명의 6%에 해당하는 많은 숫자다. 발해 주민은 지배층 10~20%만 고구려 계통이고 나머지 80%는 말갈족이었다. 말갈족은 훗날 여진족, 만주족으로 불리게 되는 북방민족이다. 이들이 대거 고려인이 되었다는 말이다.

고려가 몽골의 간섭을 받은 기간은 100년 가까이 된다. 그 동안에도 이리 저리 피가 섞였다. 조선시대에도 난리 통에 귀순해 온 여진족이나 일본인들이 적지 않았다. 지금은 더 하다. 한국이 잘 살게 되면서 2017년 현재 한국에 둥지를 튼 외국인은 200만 명이 넘는다. 전체 남한 인구의 4%다. 그들은 결혼이나 취업 등 여러 경로로 한국 사람이 되었거나 되고 있다. 그 자녀들은 한국군에까지 입대한다. 언제까지 한국이 단일 민족만 내세울 처지는 아니라는 말이다.

흥미로운 것은 과거 역사적으로 크게 융성했던 나라들은 거의가 이민족에 대해 관용을 베풀었다는 점이다. 로마, 페르시아, 몽골제국이 다 그랬다. 중국 역사상 가장 번성했던 당나라도 다른 어떤 시대보다 개방적이고 인종적, 종교적으로 관대했다. 반대로 아무리 강성했던 제국도 자민족 중심주의에 빠지게 되면 예외 없이 쇠락의 길을 걸었다. 중동의 오스만투르크, 중국 명나라, 인도의 무굴제국 등이 그 예다.

에이미 추아 예일대 법대교수는 '제국의 미래(원제:Day of Empire)'라는 책에서 로마제국의 융성은 "여왕이 아니라 어머니의 마음으로 피정복민을 받아 안은 데서 나왔다"고 했다. 미국도 그랬다. 서부 개척부터 산업의 급성장, 2차 세계대전 승리, 초일류국가 위상 확립으로 이어지는 번영의 원동력은 이민자들의 우수한 노동력과 재능이었다. 하지만 9·11 이후 이민자 문제, 환경 문제 등에서 다른 국가와 담을 쌓고 강력한 불관용 정책을 펼치면서 미국도 몰락한 과거 제국들의 전철을 밟아가고 있다는 게 추아 교수의 진단이다. 지금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 역시 결과적으로 미국의 쇠락을 재촉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세계는 지금 거대한 역사의 전환기다. 이념과 사상의 대립 갈등을 넘어 다양한 인종과 종교, 문화, 사상의 공존이 21세기 시대정신이 되었다. 거기에 더 이상 자민족 중심주의는 설 자리가 없다. 순혈 민족주의에의 집착이 얼마나 세계 평화와 인류 공영의 적이 되고 있는지는 히틀러 독일이나 지금의 이스라엘을 통해서도 충분히 확인되었다.

미국이 세계사의 주역으로 계속 남을 수 있을 지의 여부는 강력한 군사력, 경제력이 아니라 자유, 민주, 평화, 인권, 관용 같은 인류 보편적 가치의 실현에 얼마나 앞장서는가가 결정할 것이다. 그런 점에선 작은 나라 한국도 희망이 있다. 분단과 냉전의 상처로 깊이 아파 본 만큼 인류 보편가치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기 때문이다.

제주도에 온 예멘인 549명이 난민 신청을 했다고 한다. 그들을 받을 것인가 말 것인가로 한국이 들끓고 있다. 한국 정부가, 아니 한국 사람들이 어떤 답안을 써 낼지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한국은 지금 남북회담에 이어 또 하나의 중요한 시험지를 받아 들었다.


이종호 논설실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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