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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지혜와 자비로 향기롭게

'그대 안에 계시는 부처님 안녕하신가?'

그분이 묻고 내가 대답해야 한다. 그러나 그분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여태, 남루하기 짝이 없는 내 속내를 '나는 나에게 들켜버렸다'.

애당초, 이 사바세계에 부처님(석가모니)이 오신 뜻은 '네가 부처'임을 알리기 위해서이다.

탄생설화는 부처님이 태어나시자마자,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 각자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임을 천명하신 것으로 전한다.

열반경에서는 보다 구체적으로, 누구나 진리를 통해 깨달을 수 있는 가능태로서 불성을 지니고 있어, 누구나 다 부처가 될 수 있다고 설하신다. 모든 중생이 차별 없이 평등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가히 인간선언이며 인류사의 대혁명이라 하겠다.

불기 2562년 5월 22일은 '부처님 오신 날'이다.

매년 맞이하는 날이지만, 자신이 부처임을 확신하고 부처처럼 사는, 지혜와 자비의 마음을 다지는 날이다.

올해 종단에서 공표한 '부처님 오신 날' 봉축 법어는 "지혜와 자비로 세상을 향기롭게"이다.

불교수행은 오염된 마음을 닦고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일이나, 종국엔 용심(用心) 즉 마음 쓰는 공부이다. 마음을 잘 쓰려면 지혜가 있어야 한다.

지혜(반야)란 간추리면 모든 분별과 집착을 떠나, 대상을 있는 그대로 직관하고 차별을 명료하게 아는 마음작용을 말한다. 부처 되는 길이다.

분별이 사라진 세계, 그것은 존재론적으로 차별이 사라진 세계, 만물은 각자 다른 채 평등한 세계를 일컫는다. 그 인식의 지평 위에 펼쳐지는 것은 투명한 순수긍정이다. 날것 그대로 작은 것은 작은 것대로, 큰 것은 큰 것대로 추한 것은 추한 대로 긍정하는 것이다. 달리, 지혜를 '차이를 인정한 분별'이라 하는 이유다.

실상, 중생이 온전히 분별과 차별 없는 삶을 살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차별 속에서 평등을 잃지 않고, 평등 속에서 차별을 쓸 줄 아는 삶을 사는 것이, 지혜로운 삶을 사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지혜는 '작용'이 없으면 죽어 있는 언어이며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불가에서는 '남의 소나 세는 목동이 되지 말라' '허공에 못질하지 마라'며, '팔만대장경을 외워도 실천이 없다면 오아시스 없는 사막이자 향기 없는 꽃과 같다'고 하는 것이다.

지혜가 작용하면 자비는 필연적으로 발현되기 마련이다. 지혜의 최대가치이다. 지혜작용이 자비로써 삶의 의미가 될 때 지혜는 비로소 완성된다.

무릇, 불교란 "그것을 알고 그것을 사는 것"이라 하겠다. 지혜를 깨달아 자비로 살라는 지상명령이다.

불가에서는 자비 없는 지혜는 날카로운 칼이 되어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 있고, 지혜 없는 자비는 위선과 자기만족에 그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지혜와 자비의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밀도 있게 살아갈 때, 세상은 맑은 향기로 충만해질 것이다.

그 맑고 향기로운 바람으로 모든 중생이 고통에서 해방되기를!

"옴 마니 반 메훔."

musagusa@naver.com


박재욱 법사/ 나란다 불교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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