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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권서 주목받는 북한 '관찰자' 백지은 "김정은 변신 판단, 아직은 신중히"

[안유회 논설위원 밀착 인터뷰]
북한 사회 변화 가속도…엘리트·군대 협조 있어야 '완성'

최근 미국과 영국의 주요 언론이 북한 관련을 보도할 때 자주 취재하는 한인이 있다. 남가주 출신 백지은 씨다. 하버드대학에서 행정학 학사와 공공정책 석사를 마치고 현재 옥스퍼드대 공공정책 박사 과정에 있는 백씨는 CNN과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공영방송 NPR, 영국의 BBC 등이 북한 보도를 할 때 의견을 묻는 주요 취재원으로 자주 등장한다.

백씨가 북한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대학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다. "1학년 가을 학기에 친구들과 함께 강철환 씨의 수용소 경험 증언을 듣고 엄청난 충격을 받은 뒤 북한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13년이 지난 지금도 북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얼마 뒤 그는 행동에 나섰다. 2007년 학부생 모임인 '하버드대 북한 인권 학생 모임'(H-RiNK)을 공동 창립했다. 북한 인권에 대한 인식을 높이자는 취지로 탈북자를 초청해 연설을 듣고 다큐멘터리를 상영했다. 11년이 지난 지금도 이 단체는 탈북자와 북한 전문가를 하버드대에 초청하고 있다.

2009년부터는 다큐멘터리 '이산가족(Divided Famaly)' 프로젝트팀에 합류해 공동제작을 맡았다. 이 다큐멘터리는 학생과 교회, 비정부기구(NGO)에 이산가족 상봉의 시급성을 알렸다. "한국전으로 인한 이산가족의 비극은 멀리 남북한에 한정되지 않는, 미국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점을 알리는 데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졸업 뒤 구글 본사 싱크탱크인 구글 아이디어에서 일하면서도 북한을 놓지 않았다. 젊은 탈북자들이 디지털 활용 능력(Digital Literacy)를 키울 수 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서울에서도 구글 관계자와 탈북자가 멘토 관계로 짝을 지어 대학 지원 등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2012년에는 웨스트레이크에서 열린 구글 국제 콘퍼런스에 유형별로 탈북자 10명을 초청했고 이런 열정은 에릭 슈밋 구글 회장의 방북에도 영향을 미쳤다.

하버드대 벨퍼 센터에서는 석학과 현장 경험이 풍부한 북한 전문가의 지도 아래 연구를 계속했다. 핵무기와 테러리즘에 정통하고 국가 안보와 국방 정책 분석으로 유명한 석학 그레이엄 앨리슨 박사가 지도교수였고 북한 정책 특별대표인 스티븐 보즈워스 전 주한 미 대사의 지도도 받았다. 벨퍼 센터는 수백 명이 전문가가 연구결과를 내놓으며 5년 연속 전 세계 대학 부설 싱크탱크 1위를 차지한 곳이다.

백씨는 북한 관련 저술과 기고를 통해 소장파 학자로 주목을 받고 있다. 뉴욕타임스에 '불법 유입된 TV쇼가 북한을 바꿀까"라는 기고문을 싣는 등 언론을 통해 북한에 대한 대중적 관심과 이해를 높였다. 정부와 대학이 주최한 국제 학술회의에는 메인 스피커와 패널로 참가했다. 2017년엔 외교 전문잡지 '포린 어페어스'에 '북한인의 마음의 개방'을 게재해 그해 '최고 기사 20편'에 꼽혔다.

'북한의 은밀한 혁명(North Korea's Hidden Revolution)'은 이런 활동을 본 에이전트의 제의로 시작됐다. 여러 출판사가 오퍼를 했고 예일대 출판부를 선택했다. 북한의 역사와 권력 구조 속에서 외부에서 유입된 지하 정보가 폐쇄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 100여 명의 탈북자 인터뷰를 바탕으로 이론화했다. 출판부에서 인터뷰한 탈북자에게 그 내용을 일일이 확인하는 꼼꼼한 검증 과정을 거쳐 출판된 책은 북한 전문가의 호평을 받으며 대학에서 부교재로 사용되고 있다. 앨리슨 박사와 로버트 칼루치 전 북핵 특사, 보즈워스 전 대사, 북한 전문가인 안드레이 랜코프 국민대학교 교수 등의 서평이 잇따라 언론에 실리며 책의 가치를 높였다.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이해하려는 영문 학술서는 여러 권 있다. 하지만 외국에서 유입된 정보와 그 정보의 소비에 초점을 맞춰 변화를 이해하려는 영문 학술서는 이 책이 유일하다.

그동안의 활동과 연구 성과에도 백씨는 "나는 북한 전문가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전문가들의 서평은 아주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책을 쓰는 과정에서 나는 아주 겸손해졌다. 생각을 종이에 쓰는 과정에서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에 의문이 들었다. 오히려 북한과 억압적인 국가에 대해 더 배워야 한다고 확신했다. 북한에 대해 연구할수록 아는 것이 적다는 것을 깨달았다." 백씨가 옥스퍼드 대학에 공공정책 박사과정을 지원한 이유이고 자신을 북한 전문가가 아니라 "북한 관찰자"로 부르는 이유다. "다만 내 인생을 북한 연구에 바치고 북한과 북한 사람들, 모든 한국인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려 노력하는 데는 아주 열정적이다."

그가 관찰한 북한은 어떨까. 사회가, 사람들이 변하고 있는 징후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젊은이들은 한국의 유행과 패션을 모방한다. 1990년대 이후 태어난 이들은 시장에 의존한다. 필요한 것의 모든 것은 현금으로 산다. 이 밀레니엄 세대는 시장과 현금, 전례 없는 수준의, 외부에서 유입된 정보와 함께 자랐다. 북한에는 수백 개의 시장(장마당)이 있다. 암시장이 아니다. 최근엔 이런 시장 중 많은 곳에 세금이 부과된다. 규제도 받는다. 탈북자들은 이런 농담을 한다. '북한 시장에서는 고양이 뿔을 빼고 뭐든지 살 수 있다.' '김일성이 살아있다면 북한을 알아보지 못할 것'이라는 농담도 했다."

이런 변화는 북한의 문화도 바꾸고 있다. "북한은 가부장적인 나라다. 대체로 남자는 집 안팎에서 권력을 갖고 있다. 아버지와 남편은 가장이며 남편과 아내는 균등한 권력을 갖고 있지 않다. 가정폭력도 매우 많다. 하지만 시장이 커지면서 대다수 부인들이 장사를 하고 집으로 현금을 가져온다. 이것이 가정 내 권력 구도를 조금씩 바꾸고 있다."

피상적인 수준이지만 김정은 북한을 근대화하려고 노력하는 징후도 발견된다. 북한 앵커들의 목소리 톤이 전보다 부드러워졌고 영화나 쇼의 제작이 좀 더 근대화됐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북한이 아래로부터의 주요한 변화를 받아들일 만큼 압박을 받는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북한 정권은 매우 영리하며 외부에서 유입된 정보 유통을 단속하려 한다. 가택과 전자제품을 불시에 수색한다. 훨씬 은밀한 방식은 맬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유포시켜 이런 정보를 감시해 소유자와 소비자를 찾아내는 방식이다."

오랫동안 북한을 연구하고 이해하려 했던 관찰자로서 그는 최근 한반도 상황에 대한 '건강한 회의론'을 견지해야 한다고 믿는다. 인류애에 대한 믿음으로는 한반도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지만 지금까지 관찰한 것을 바탕으로는 그렇다. 북한에서 지속 가능한 변화가 오려면 엘리트나 군부, 돈주로 불리는 중산층, 평범한 일반인이 협력해야 한다. 그는 "남북 정상회담으로 긴장이 일시적으로 완화된 것은 기쁘다"면서도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이 보여준 이미지는 하나의 데이터로만 받아들여야 한다"고 신중론을 펼쳤다.

'아래로부터의 변화는 매우 중요하지만 엘리트와 군대에서도 변화와 양보가 있어야 한다.' 그의 이런 시각은 북한에 한정되지 않는다. "북한을 이해하고 연구하려는 열정을 바탕으로 나는 다른 전체주의적이고 억압적인 정권을 비교하는 앵글에서 공부하려 애썼다. 현재 연구하고 있는 것은 전체주의 국가에서 정치적 반대세력(political dissent)의 초기 행동가다. 전체주의 국가가 어떻게 자유주의적 시스템으로 바뀌는지 연구하고 있다. 이런 지식과 이해가 앞으로 북한이 개방되고 북한 사람들에게 더 많은 자유가 허용되는 미래에 효율적으로 적용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는 현재 박사학위 논문으로 미얀마(버마)를 연구하고 있다. 전체주의 국가에서 항의나 파업, 보이콧(쟁의) 같은 저항 행위의 최초 단계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처음으로 이에 관여하고 조직하는 이들(first mover)은 누구이며 그 동기는 무엇인지가 주제다.

그는 자신을 관찰자라고 부르지만 관찰자만은 아니다. 북한을 관찰하면서 동시에 탈북자에 개입한다. 그는 이 개입 행위를 '지원한다'고 표현한다. 영국에서 미얀마 관련 박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미얀마로 가 정치범 출신이 세운 학교에서 공공정책을 가르치고 있다. 학생들은 대부분 정치범 출신과 그들의 자녀, 반체제 인사들이다.

왜 지원할까. "나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아무 잘못도 없이 억압적인 정권에서 태어난 이들이 너무 많다. 운이 덜 좋았던 이들에게 봉사하는 것은 나, 그리고 모든 이들의 도덕적 의무다. 그게 연구든 비즈니스든 교육 혹은 자원봉사, 기술이든. 우리는 전 세계가 하나로 연결된 세계에서 살고 있다. 사람들이 지금처럼 연결하고 봉사하기 쉬웠던 적은 없다. 옆집에 살든, 다른 나라에 살든 모두가 이웃이다. 누구나 봉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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