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이 아침에] 막무가내로 세상 살아가기

딸이 나를 위해 미용실에 예약을 했다. 딸 덕에 비싼 미용실이라니. 기대 만땅이었다. 예약에 맞춰 정확한 시간에 도착한 우리는 미용실 직원의 설명을 듣고 내실로 들어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10분쯤 지났을까. 한 여자가 헐레벌떡 들어섰다. 예약 시간보다 40분이나 늦게 도착했던 그녀는 그녀의 사나운 눈썹만큼 우리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늦게 도착을 했어도 자신의 순서가 먼저라는 논리를 펴기 시작했다. 결국 우리가 양보를 하기로 했다. 한 사람의 고객이라도 잡아야 하는 미용사 측의 딱한 심정을 이해했기에 나는 모처럼 식당에서 딸과 식사를 같이 하려고 했던 계획을 포기했다. 또 다른 약속이 있어서 먼저 미용실을 떠나야 했던 나는 하는 수 없이 김밥을 사 왔다. 미용실 의자에서 간단하게 요기를 했던 나와 딸, 그저 웃고 말았다.

진상 고객은 자신의 뜻이 관철됐으니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을지도 모른다. 모르긴 몰라도 그 진상 고객은 늘 그렇게 살아왔고 아마도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억지를 부려도 한 사람이라도 놓칠 수 없는 업주는 자신의 요구사항을 들어줄 것이고 떼를 쓰면 누군가는 양보할 것이라는 방법을 터득했을 테니.

사실 살아남기 위해 억척은 기본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먹고 사는 것부터 해결해야 했던 그때는 누구나 그러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던 시절, 쓰러진 집 더미를 헤집고 빈곤의 터널을 맨발로 걸어야 했기에 눈치는 300단쯤 되어야 했다. 돈 몇 푼 집어주면 눈감아주는 불법이 횡행하던 시절이었으니 순서를 지키라는 고함이 먹힐 리 만무다. 짐짝처럼 실려 버스를 타야했던 무지막지한 등굣길이 용납이 되고 큰 목소리가 법 앞에 우선이던 시절에 배려는 교과서에서만 존재하는 관념에 불과했었다.

특히 노인의 막무가내는 꽤 효과가 크다. 지금도 지하철 문이 열리면 사람들이 빠져나오기도 전에 그 틈을 헤치고 들어가는 여든 넘은 노모의 뒷모습은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몇 번을 그러지 말라고 말려도 내 말은 듣는 둥 마는 둥이다. 노모는 이미 경험으로 터득했다. 막무가내로 억지를 부리면 통하는 세상이라는 것을. 억지를 부려도 대개는 나이 든 사람의 편의를 봐준다는 것까지. 새치기를 하는 노인과 입씨름을 해봐야 부모 없는 후레자식이라는 비난받을 게 빤해서 침묵하는 젊은이들의 경멸은 알 턱이 없겠지만.

빈한한 시절을 보고 배우고 자란 나도 어쩔 수 없다. 줄을 설 때 앞사람과 일정한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어야 된다는 걸 머리로는 아는데 어느새 바짝 앞사람 뒤에 붙어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발을 내미는 나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노모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고 있었다.

예의는 보고 배우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과거의 억척이 오늘날의 성공을 만들었다면 이쯤에서 멈춰야 하지 않을까. 이제 먹고살 만하니 조금 손해를 봐도 너그러운 마음을 지녀도 될 것 같았다. 대기실에서 김밥을 먹는 나는 흐드러지게 꽃이 핀 나무 아래 도시락을 먹는 상상을 했다. 화를 내기엔 너무도 화창한 봄날이지 않은가.


권소희 / 소설가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