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신인문학상 수상작: 단편소설 부문-당선작] 밤의 소리
이윤경
116가 횡단보도에서 그가 손을 들며 내게 인사를 건넸다. 빠른 걸음으로 그가 길을 건너자 그의 아이가 잰걸음으로 따라왔다. 그들은 나와 같은 아파트 건물에 살고 있었다.
공용세탁실에서 쓰레기 수거장에서 동네 놀이터에서 수퍼마켓에서 나는 그와 마주쳤고 인사를 주고 받았다. 예외없이 우리는 각자의 아이를 데리고 있었다.
그의 아이 케인은 그동안 내 얼굴을 익혔는지 생글생글 눈웃음을 띄며 하고 싶은 말을 잔뜩 머금고 있었다.
사교적인 아이 특유의 말투로 엄마는 지금 회사에 가 있고 몇 개월 후면 동생이 태어날 거라고 묻지도 않은 말들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그는 아들의 발랄함이 거리낌없이 펼쳐지는 상황에 익숙해질 법도 한데 여전히 난감하다며 웃었다. 반면 케인이 말하는 동안 나의 아이 폴은 내 손을 꼭 쥐고 등 뒤에 제 몸을 숨기고 있었다.
나는 이 아이의 경계심이 날카롭게 타인을 향해 있는 상황에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단순한 수줍음이라 치부하기엔 폴의 긴장 상태에는 집요하고도 날선 데가 있어 상대를 곧잘 당황하게 만들었다.
세상에 나올 둘째 아이는 케인과 폴의 성격을 반씩 닮으면 좋을 것이라 그가 농담을 했고 나는 진심으로 그러길 바란다며 미소 지었다.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연대감 같은 것이 있다. 서로 부담없이 대화를 시작할 수 있었고 부모들이 더 빨리 친해지곤 했다. 게다가 그는 아이 하나를 돌보며 집안살림을 전담하는 가정주부였다.
주부라는 직업을 가진 남성은 젊은 여성주부들에게서 특히나 환영받는 존재였다. 그 스스로도 그 점을 인식하고 있었고 즐길 줄 알았다. 나 역시 그의 아내를 부러워하는 주부 중 하나였다.
한참을 횡단보도 앞에 서서 그와 소소한 걱정거리에 대해 얘길 나누었다.
광둥어 억양과 한국어 억양의 영어가 한데 뒤섞였다. 낯선 언어가 사방에서 들리고 제각각의 말투로 영어를 구사하는 뉴욕의 길거리에서 그와 나의 대화는 전혀 이상할 것 없었다.
행인들이 우리에게 익스큐즈 미 길을 비켜달라고 했다. 폴은 몸을 움직이는 활동량이 적었다. 다른 아이들이 내키는대로 걷고 뛸 때 폴은 내 옆에 가만히 앉아 있거나 서 있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면 같이 일어났고 조금 걸으면 따라 걸었다. 작은 그림자처럼 움직였다.
유일하게 폴이 가장 큰 동작을 보일 때는 낯선 사람이 우리에게 말을 걸기 위해 가까이 오는 경우였는데 다가오던 이가 미안해할 만큼 멈칫 놀라며 내 등 뒤로 숨었다.
폴은 한적한 공원의 나무 아래 쪼그려 앉아 개미를 관찰하는 것을 좋아했다. 나는 단풍이 들기도 전에 떨어져버린 낙엽이나 곧 넘어질 것처럼 비틀대며 뛰어가는 아이를 따라가는 다른 엄마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눈으로만 내내 개미를 쫓던 폴이 고개를 들며 코를 훌쩍였다.
날이 추워진 까닭이었다.
10월부터 이른 겨울을 맞았다. 강에서 불어오는 한기와 오래된 건물 사이에서 이는 칼바람이 체감온도를 더욱 낮췄다. 폴은 모든 감각을 예민하게 곤두세웠다.
거센 바람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잦은 산책에도 바람에 익숙해질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추위가 계속되자 폴은 집밖에 나가는 것을 거부했다.
바깥에 나갈 채비가 시작되면 그는 외투를 모자를 양말을 온 힘을 다해 멀리 집어던졌다. 그토록 확고한 의지를 꺾을만한 요령이 내겐 없었다.
나 역시 반드시 밖으로 나가야만 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다. 우유나 계란 따위는 온라인으로 주문하면 한동안 외출을 하지 않고도 견딜 수 있었다.
어차피 폴은 그외의 것은 입에 대지 않았다. 하루를 버틸 수 있는 가장 최소한의 양을 먹었고 가장 최소한으로 움직였다. 거실에 가만히 앉아 창문을 바라보는 시간이 많았다.
고층건물들이 하늘을 메우는 도시 그 속에 촘촘하게 들어선 건물에는 창문이 빼곡했다. 내가 사는 집 창문 너머에는 전망이라고 할만한 것이 없었다. 도로와 건물이 있고 차와 사람이 오가는 흔한 광경이 보이지 않았다.
창문 바깥에는 오로지 갈색 벽돌을 이어붙인 벽이 버티고 있었다. 집안에서는 바깥에 부는 바람을 가늠할 길이 없었고 비나 눈이 얼마나 왔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아파트 복도에 있는 창문도 무용지물이었다. 기껏해야 낮인지 밤인지 짐작할 용도로 쓰였다. 내다볼 것이 없는 창문은 악명높은 물가의 도시에서 이 정도 불편은 감수해야 한다고 오만하게 말하고 있었다.
더 나은 환경으로 이사를 가던지 그렇지 않으면 참고 견디라고 보잘 것 없는 창문이 말했다. 하루에 한 번 오전에 단 한 번 햇빛이 잠시 창가를 비추고는 사라졌다.
제 할 일을 한 것이다. 키가 큰 창문이 기고만장하게 나를 내려다 보았다. 나는 매번 모든 싸움에서 이겨본 적이 없었다. 어린 아이와의 신경전에서도 창문과의 우격다짐에서도. 이기는 것보다 지는 게 더 쉬웠다.
보이지 않는 대신 온갖 소리가 들어왔다. 낡은 아파트 나무바닥으로 옆집 여자의 하이힐 소리를 들었고 윗층에 사는 청년의 부산한 움직임을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도심을 종횡하는 구급차와 소방차 사이렌은 건물 사이 솟아있는 빈 공간을 타고 종일 울려퍼졌다.
그중에서도 견디기 힘든 소리는 아주 가까운데서 크게 들려왔다. 주로 여자가 악에 받힌듯한 소리를 질렀고 그 소리는 울음으로 변했다가 다시 비명이 되었다.
반복되는 싸움 속에서 여자와 남자가 내지르는 말은 대부분 비슷했고 한정적이었다. 가끔은 저들이 영화의 한 장면을 되풀이하는 건 아닐까 의심하기도 했다.
어둑한 밤이 온전히 내려앉자 여자의 악다구니가 들렸다. 또 시작이군 나는 커튼으로 창문을 덮었다.
불운한 소리일수록 거침없이 들어왔다. 창문과 커튼이 막지못한 소리는 기어코 침실을 비집고 들어갔다. 소리를 손으로 잡을 수 있다면 손아귀에 움켜쥐고 놓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 온몸을 비틀어대는 것은 폴이었다. 선잠에 잔뜩 화가 난 폴은 두 손으로 머리를 세게 두들겼고 멈출줄 몰랐다. 결국 아이를 일으켜 안고 거실로 나왔다. 폴은 조명 불빛에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순간 모든 소리가 눈앞에서 사라졌다. 갓난아기의 비명도 그들의 싸움도 멈췄다. 반복되는 패턴에 따르면 지금은 조용해질 순서가 아니었다.
모든 동작을 멈추고 혹여나 들려올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타닥타닥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현관 외시경으로 복도를 내다보았다. 모자를 눌러쓴 남자가 백팩에 옷을 찔러 담으며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다행이다.
더 이상 불쾌한 소리들을 듣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다.
밤의 시간은 정적과 잘 어울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양수가 터져 급하게 병원에 가야하는데 오늘밤 케인을 봐줄 수 있나요?
잠시 후 그는 잠이 든 케인을 안고 거듭 미안해했다. 아내의 상태가 호전되면 가능한 빨리 돌아오겠다고 했다. 출산예정일이 아직 두 달이 남아 있었다며 예상치 못한 상황에 초조해했다. 케인을 내게 맡기고 그는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케인은 몸집이 큰 편이었다. 익숙치 않은 무게가 버거웠다. 내던지듯 침대 위에 눕혔지만 케인은 뒤척이지 않았다. 나는 케인에게 침대를 내어주고 거실로 나와 소파에서 눈을 감았다.
그의 다급한 뒷모습이 떠올라 밤새 뒤척였다.
나도 모르게 잠이 잠깐 들었던 것 같다. 창밖에서 묵직한 무언가가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는데 확실치 않았다. 어둠이 눅눅하게 내려 가시지 않은 새벽이었다.
주변의 정물들이 하나씩 잠에서 깨어나 웅성거렸다. 동살을 잡아끄는 것은 주로 사이렌 무전기 자동차 엔진 고함 비명 탄식이었다.
창밖 벽돌 틈새가 보일만큼 환해지자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조차 불편해보이는 거대한 몸집의 경찰이 힘겹게 숨을 고르고 있었다.
아파트 오층에 사는 여성이 새벽에 투신했다고 정황조사에 협조를 구했다. 평소 오층 부부와 알고 지냈는지 지난 밤 그들이 싸우는 소리를 당신도 들었는지 이전에도 싸우는 걸 들은 적 있는지 얼마나 자주 싸웠는지 가능한 한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을 말해달라고 했다.
나는 어젯밤 오층 남자가 계단으로 내려가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 코 앞에 있는 좀도둑도 놓칠 것 같은 경찰은 그때가 몇 시였는지 그의 옷차림과 행동 등에 관해 묻고 대답을 적었다.
질문이 거의 끝났는지 경찰은 표정을 바꾸고 여유를 보였다. 그는 나를 안심시켜주고자 했다. 그의 알리바이를 확인해줄 몇 명의 증인이 더 있으니 조사과정에서 크게 번거로운 일이 생기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타살의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아 자살사건으로 잠정결론을 내린 상태이므로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고도 했다.
어느 새 두 아이들은 모두 깨어 옆에 와 서 있었다. 경찰은 아이들을 보자 입가에 웃음을 띄웠다. 형제가 있군요 서로 닮은 데라곤 없는 아이들을 보며 그가 말했다.
아니에요 의아해하는 경찰을 등지고 나는 케인과 눈을 맞추었다.
엄마는 어젯밤 동생을 낳으러 병원에 갔으니 그동안만 우리와 함께 있는 거야 기다릴 수 있지? 평소 눈웃음을 잘 치던 케인의 얼굴이 굳어지는 것을 처음 보았다.
아이 헤잇 더 베이비 I hate the baby.
내가 난처해하자 놀랍게도 케인은 다시 순한 아이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얼른 소맷자락으로 눈물을 닦아냈다. 자신이 감당해야 할 상황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경찰은 이 작은 소동을 파악한 후 펜을 호주머니에 끼우고 수첩을 덮었다. 동생이 있다는 건 행운이라며 케인을 향해 커다란 손을 내밀어 축하의 인사를 청했다.
나는 그제서야 오층에 아기가 있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경찰은 문을 나서며 아기가 잠든 사이 사고가 발생했고 지금은 보호센터에 맡겨져 있다고 알려주었다.
케인이 배가 고프다고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간단한 아침식사를 내어주었다. 현관문을 여는 열쇠소리가 들렸다. 연구실에서 밤을 지새고 눈에 띄게 수척해진 남편이 들어왔다.
반쯤 내리감긴 그의 눈은 이른 아침에 무슨 일로 케인이 와 있는지 말없이 묻고 있었다. 양수가 터졌대. 그래서 힘들었겠네 미안. 나 눈 좀 붙일게. 한 시까지 다시 나가 봐야해…
맺지도 못한 말이 끊겼다. 대략 상황 이해가 끝났다는 뜻이다. 그는 마른 기침을 하며 잠을 청하러 방으로 들어갔다. 미처 내뱉지 못한 말을 침처럼 삼켰다. 나는 먼저 시비를 걸지 않는 관성이 생긴지 오래다. 화가 나면 덮었다. 화는 사라지지 않고 의지와는 상관 없이 몸집을 키워 불쑥 다시 나타났다.
시선을 회피하거나 그것이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외면하거나 책임을 다른 누군가에게 넘겨버렸다. 남편이 했던 말을 곱씹었다.
힘들었겠네 미안. 힘든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없었고 누가 누구한테 미안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케인인지 그의 엄마인지 아빠인지.
오층의 그녀인지 그인지 아기인지. 경찰인지 아니면 나인지. 남편은 지난밤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 알지 못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아니 그는 힘들었겠네 미안이라는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자고 일어나면 기억조차 하지 못할 말이다. 그는 알고 싶어하지 않았다. 알고 싶어하지 않는 것은 잘못이었다. 그에게는 당장 잠을 자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었다. 분명히 그것은 그의 잘못이었다.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가자 그가 깊이 잠들어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나는 뒤섞여 엉켜버린 화를 감당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치밀어 오르는 그것이 분노인지 슬픔인지 부끄러움인지 죄책감인지 구분하지도 못했다. 다만 화를 낼 상대를 찾고 있었다.
나 역시 알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들의 싸움은 성가신 소리에 불과했다.
시끄러우니 저들을 말려달라고 신고라도 했다면 달라졌을까. 계단을 내려가던 남자를 막았다면. 잠이 든 아기를 덩그러니 남겨두고 창문으로 향하던 그녀는. 퍽.
둔탁한 소리였다. 폴은 책장 앞에 나동그라져 있었고 그 앞에 케인은 장난감 자동차 하나를 손에 움켜쥐고 있었다. 숨마저 멎을듯이 놀란 폴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제서야 울음을 터뜨렸다.
케인은 지난 밤 화를 억누르며 계단을 내려가던 남자처럼 숨을 몰아쉬었다. 나는 자지러지게 우는 폴을 안아들고 입고 있던 옷으로 급히 지혈을 했다. 폴의 머리에서 흘러나온 피를 보자 케인은 겁에 질려 의기소침해졌고 파자마 위로 굵은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벨이 울렸다. 그의 전화였다. 케인은 아빠로부터 걸려온 전화임을 직감하고 달려왔다. 그가 말을 하지 않았다. 헬로 통화 끊긴거 아니죠? 아기 낳았어요? 산모는 어때요? 미미한 잡음이 들려오는 것으로 보아 그는 분명히 전화를 끊지 않고 있었다.
그는 떨고 있었다.
아내가 아내가 갑자기 갑자기 새벽에 과다출혈로 죽었어요.
엄마 아빠를 곧 만날 수 있을 거란 기대에 케인은 나를 보고 활짝 웃었다.
며칠간 나는 고열에 시달렸고 먹은 것을 모두 게워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몇 년 동안 단 한 번도 아파본 적이 없었다. 아픔이 허용되지 않는 이상 흔한 감기도 비켜 지나갔다.
이번에는 피할 재간이 없었다. 계속된 구역질에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잠을 자고 잠시 눈을 떴다가 다시 잠이 들기를 반복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지 못했다. 눈을 떠보니 어둡지 않았다. 적어도 밤은 아니었다.
순간 실내의 갑갑한 공기가 목을 죄어와 밖으로 나가고 싶어졌다. 옷장 깊숙이 들어가 있는 외투를 꺼내 입었다. 바깥 날씨가 유난히 추우니 조금만 더 참으라는 남편의 만류를 뿌리쳤다. 바깥으로 나와 숨을 들이마셨다.
한겨울의 알싸한 공기가 나쁘지 않았다. 춥다한들 어디로든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걸어야 했다. 걷지 않으면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건물 밖 한 켠에 시선이 머물렀다. 그리고 나는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그 곳에는 꽃과 카드 서너 개가 놓여있었다. 그녀와 교류가 없던 이웃들이 마련한 위로의 공간이었다.
그 소박한 조문소에 누워있는 꽃들은 추위에 버썩 얼어 있었다.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카드 위에 고아둔 돌마저 하얗게 굳어 있었다. 뒤로 출입을 통제하는 폴리스라인이 보였다. 그 너머를 바라볼 엄두는 나지 않았다.
걷고자 하는 나의 시도는 시작하기도 전에 실패로 끝이 났다.
고개를 돌리자 맞은 편에서 낯선 두 사람과 케인이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케인 엄마의 눈매와 닮은 얼굴의 두 여자였다. 대면해야 할 상황이 버거웠지만 피할 수 없었다.
그들이 이미 너무 가까이 와 있었다. 케인이 나를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홍콩에서 외할머니와 이모가 왔다며 웃어 보였다. 두 사람은 지친 모습이 역력했고 케인은 멀리서 온 가족의 방문에 신이 나 있었다.
대조적인 그들의 모습에 나는 뭐라 대응을 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두 사람이 영어를 할 줄 아는지도 알지 못했다. 더 머뭇거릴 순 없었다.
아임 쏘 쏘리. I'm so sorry.
조금 더 크게 말하려 했지만 들릴듯 말듯한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케인이 이모라고 소개한 젊은 여자는 무표정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일주일 후에 차이나타운에서 장례식이 있어요. 그녀는 영어를 할 줄 알았다. 그녀는 무언가를 더 말하려다 케인을 의식하고 그만 두었다. 케인의 할머니가 내게 광둥어로 몇마디 말을 전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해 케인 이모의 얼굴을 올려다봤지만 그녀는 굳이 통역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자신이 한 말을 내가 이해했을 거라 믿는 듯 더 가까이 다가와 말을 덧붙였다.
이번에도 역시 케인의 이모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나는 두 여자의 얼굴을 번갈아 보다가 그들의 사이에 서 있는 케인을 내려다보았다.
아빠는 아기를 만나러 병원에 갔다고 케인이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아빠는 이제 자기보다 아기를 더 좋아한다며 심통을 내고 있었다. 그만 집에 들어 가자고 케인의 이모가 재촉했다. 걸음을 옮기는 일행을 따라가며 케인은 이따가 아빠와 숨바꼭질을 하러 공원에 갈 거라고 조금 더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럼 엄마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내게 다시 손을 흔들었다.
바람이 불자 바스라진 꽃잎이 흩어졌다.__
=========================================================
[중앙신인문학상 수상작: 단편소설 부문-수상소감]
글쓰기 망설이지 않을 것, 모든 분들께 감사
이윤경 / 1980년생, 현재 뉴욕 거주
어떤 글이라도 좋으니 글을 쓰며 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매일같이 출근하고 퇴근하고 밥먹고 씻듯이 글도 그렇게 쓰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글 쓰는 일은 학업과 직장과 육아의 흐름 속에서 일상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지 못하고 매번 뒤로 밀려났습니다.
하루 하루를 보내는데 급급한 나머지 글을 읽는 일도 쓰는 일도 자꾸만 미뤄두기만 했습니다. '지금'이 아니라 '언젠가' 쓰리라는 결심은 항상 마음 언저리에 무겁게 남아 있었습니다.
단편 <밤의 소리> 는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어 휴대폰 메모장에 써 내려간 글이었습니다.
떠오르는 문장을 쓰고 그 다음날엔 그 문장을 고쳤습니다. 쓰고 고치는 일을 반복하다보니 짧은 소설 하나를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써야 할 아직 쓰지 못한 글들이 까마득합니다. 해야 할 일들이 있기에 용기내어 한걸음 더 내디뎌 봅니다.
이번 기회에 많은 격려와 응원을 받았습니다. 글쓰는 일 앞에서 망설이지 않기를 저 스스로에게 바랍니다.
끝으로 제가 무슨 일을 하든 믿고 지지해주는 가족들에게 이 자리를 빌어 감사 인사드립니다.
------------------------------------------
심사평
1. 밤의 소리 (이윤경)
고층아파트 속에 사는 사람들의 애환이다.
남편이 야근하던 날 옆집남자가 문을 두드린다. 아내의 양수가 터져 병원에 가야하니 아이를 맡아 달란다. 그녀의 아이 또래의 개구쟁이 이웃집아이는 장난이 심해 그녀 아들의 머리를 터트린다. 그 와중에 부부싸움을 하던 이웃 여인이 창문 아래로 투신했다고 경찰이 증인조서를 받으러 왔다. 병원에 실려 간 산모는 난산으로 사망을 했단다. 작가는 고요한 밤의 가슴 아픈 인간 드라마를 잔잔한 필체로 불협화음의 꽃을 피고지게 한다. 문장이 편하고 절제가 돋보이는 우수작이다.
심사위원=이언호.명계웅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