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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칼럼] "제일 좋은 총으로 사세요"

총을 사도 되겠냐고 묻는 지인이 있다. 수정헌법 2조를 잠깐 떠올렸지만 입에서 나온 말은 의외로 단순했다.

"그 총에 네가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혹시 안해봤냐?"

기자가 가진 총에 관련된 '살인의 간접 추억' 몇 장면을 떠올려봤다.





장면 1

커크 더글라스와 버트 랭카스터 주연 'OK목장의 결투'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명절이면 단골 '주말의 영화' 였던 이 작품에서 결투는 또다른 결투를 항상 불렀다. TV 앞 어린 눈에 비친 총잡이들은 선과 악으로 구분된다. 결국 선이 악을 이기고 정의가 길을 찾는데 리볼버와 샷건은 마치 심판정의 나무망치처럼 두터운 소리를 내며 적을 넘어트린다. 그런데 선과 악이 아니라 단순한 힘의 대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렸다.

장면 2

90년대 초반. 여전히 '휴전'중인 DMZ. 오히려 철책 건너편 군인들 보다는 내무반 머리맡에 놓인 10여 개의 M16 소총이 더 무서웠다. 전방부대여서 간헐적인 사격훈련이 있었지만 여름 긴 오후 하사관들이 모조리 총알을 소비하고 오는 길이면 탄피 숫자가 걱정되는 시간이다. 월북 또는 월남한 군인들이 몇몇 있었는데 총을 들고가야 더 큰 대접을 받는다는 확인 안된 소문도 있었다. 나와 국가를 지키지만 총은 두려운 존재가 됐다.

장면3

동네 이름 자체가 뼈저린 상처의 상징이 됐다. 99년 4월 20일 평화로운 콜로라도 콜럼바인에서 고교생인 에릭 해리스와 딜런 클리볼드가 학교에서 무려 900여 발을 발사했다. 역겨운 세상이 싫다고 일기장에 적었던 이들은 복수 도구로 총을 선택했고 13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들에게 한때 세상의 통로였을 도서관에서 그들은 스스로에게 총구를 겨눴다. 친구들의 존재, 자신들의 존재를 없앤 그들은 이제 행복해졌을까.

장면 4

2007년 4월 16일. 이번엔 버지니아텍 캠퍼스. 32명이 사망했다. 조승희는 쾌락과 물질만능에 빠진 세상에 경고하고 싶어 총을 들었다고 했다. 기자는 편집국에서 그가 설마 한인은 아니길 바라면서 하루를 보냈다. 모두에게 조그만 분노는 있을 수 있지만 한인 청년이 그토록 엄청난 총격의 주범이 되는 것은 한인사회에도 긴 악몽이었다. 그는 합법적으로 300여 달러를 주고 구입한 9밀리미터 '글록 19'과 22구경 '발터 P22'를 세상에 대한 마지막 저항 무기로 삼았다.

장면 5

이번엔 2012년 12월. 코네티컷 샌디훅 '초등학교'다. 애덤 랜자는 수업을 하고 있던 자신의 어머니까지 모두 28명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일부 언론은 '처형식' 총격이었다는 보도도 했다. 설마 초등학교에서 이런 일이 가능한지 미국인들은 서로 되물었다. 촛불도 켜고, 기도도 하고, 대통령도 메시지를 보내며 묵념을 했다. 하지만 미국인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지난 주에는 한 종교집단이 자동 소총을 들고 단체 결혼식을 올렸다. 연분홍 한복을 입은 신랑과 신부가 소총을 끼고 혼인서약을 했단다. 이들은 "악마를 막기 위해선 수정헌법 2조를 사수해야 한다"고 했다. 폭력에 광분한 미치광이가 아니고서야 이럴 수 있을까.

세상이 총 없이 꾸려질 수 있다고 바라는 '무작정 평화주의'도 문제다. 하지만 총이 나와 재산을 지킬 수 있다는 뜻은 그 다른 누구도 총으로 자신을 지키려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누군가 피를 흘리고 죽는 것은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세상 그 어느 신앙교본에 타인의 피를 제물삼더라도 나를 지키라 했는지 소총을 든 신랑 신부들에게 되묻고 싶다.

마크 루비오 상원의원에게 NRA의 로비 자금을 받지 말라며 목소리를 높였던 플로리다 고교생의 목소리를 기억하며 총이 필요하다는 지인에게 진지하게 대답했다.

"수정 헌법 2조에 따라 남의 피와 생명을 희생시켜서라도 나를 지키는 것이 '최선'이라고 확신한다면, 최대한 빨리 발사되고 한발을 맞아도 즉사할 수 있는 훌륭한 총으로 사라."


최인성 / 경제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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