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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오디세이] 뮤지컬 배우 임규진…뚝심의 악바리, 기적을 만들다

부상으로 발레리나 꿈 접고
고교 졸업 후 미국 유학

'판타스틱' 주연 발탁 주목
'뮬란' '미스 사이공'서 열연
영어발음 한계 극복하고
'왕과 나'로 브로드웨이 데뷔
현재 텁팀역 맡아 전국 투어
11일까지 코스타메사서 공연




참 매력적이다. 그녀. 조막만한 얼굴 큰 눈망울의 이국적인 마스크도 그러했지만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그녀만의 털털하고 진솔한 출구 없는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어떻게 그 짧은 시간동안에 브로드웨이를 사로잡았는지 알 것만 같았다. 2016년 가을부터 전국투어 중인 브로드웨이 뮤지컬 '왕과 나'에서 버마공주 텁팀 역을 맡아 열연하고 있는 배우 임규진(29)씨다. 최근 브로드웨이에 한인 2세들의 돌풍이 거세다곤 하지만 한인 1세가 주조연급 배역을 맡아 무대에 서는 것은 흔치 않은 일. 휴가차 LA를 방문한 이 어메이징한 여배우와의 대화 혹은 수다는 시간 가는 줄 모를 만큼 유쾌하고 즐거웠다. 한 편의 뮤지컬처럼.

#발레리나에서 뮤지컬 배우로

서울출생인 그녀는 세 살 때부터 발레를 시작했다 중2 때 아킬레스건을 다쳐 발레리나의 꿈을 접어야만 했다. 그러다 대학입시를 두 달여 앞두고 뮤지컬 배우가 되겠다고 결심했단다.

"당시 뮤지컬 한 편을 봤는데 그 느낌이 너무 강렬했어요. 워낙 어려서부터 무대에서 스포트라이트 받는 걸 좋아해서인지 뮤지컬 배우의 매력에 푹 빠졌죠."

그래서 2008년 1월 언니가 유학 중인 롱아일랜드 소재 파이브타운칼리지(FTC) 뮤지컬학과에 입학했다.

"입학해선 엄청 고생했죠. 수업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요. 게다가 영어가 완벽해도 힘든 연기 수업은 정말 악몽이었죠. 덕분에 매일 울며 지냈어요."

이후 언니와도 영어만 하고 계절학기까지 들으며 독하게 영어공부에 매달린 그녀는 2009년 실질적인 뮤지컬 공부를 위해 명문 뮤지컬학교인 AMDA(American Musical and Dramatic Academy)에 편입한다.

#꿈은 이뤄진다

편입 후 그녀의 악바리 기질은 더 심해졌다.

"춤은 어려서부터 췄지만 노래는 영 소질도 자신도 없었거든요. 그래도 어려서부터 연습벌레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노력하는 건 자신 있어서 헛구역질이 나올 때까지 노래 연습에 매달렸죠."

노래 연습만큼이나 그녀가 독하게 파고든 것은 영어 발음 교정.

"뮤지컬 배우가 되려면 정확한 발음과 대사전달은 기본이에요. 그래서 저처럼 스무 살에 미국에 와 영어발음이 서툰 배우가 주조연급을 맡는다는 건 브로드웨이에선 거의 불가능하죠. 그래서 전문가를 찾아 교정 레슨을 받고 혼자서도 열심히 연습했죠."

순간 의아했다. '이 바닥' 현실을 이토록 잘 아는 그녀가 무슨 배짱으로 주조연급을 목표로 큰돈 들여 노래며 영어레슨을 받고 잠 못 자 가며 노래와 발음연습에 매달린 걸까.

"저도 모르겠어요.(웃음) 제가 미국 가서 뮤지컬 배우가 되겠다했을 때 격려해주신 부모님 말고는 다들 미쳤다고 했죠. 그래서 오기가 생긴 것도 있고…(웃음) 그런데 그보다는 당시 노래가 너무 좋았고 이왕 시작한 거 영어 공부를 제대로 해보자 싶어 하루하루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했을 뿐이에요. 그러다 보니 오늘에 이르렀네요."

그렇게 독하게 '열공'한 끝 그녀는 동기들보다 한 학기 빠른 2011년 2월 졸업했고 그 해 뮤지컬 배우 지망생들에겐 최고의 무대인 뉴욕 타운홀에서 개최되는 뮤지컬 콘서트 '브로드웨이 라이징 스타'에 선발되는 영예를 안았다. 이후에도 그녀의 눈부신 활약은 계속된다. 2011년 그녀는 미주리에서 공연된 뮤지컬 '판타스틱스' 오디션에 응시해 당당히 여주인공 루이자역을 따냈다.

"루이자는 그동안 백인배우들이 해왔던 역할이고 무엇보다 영어가 완벽해야 할 수 있는 배역이어서 붙을 거라곤 정말 기대 안했어요. 그저 AMDA 재학 시절 제일 해보고 싶었던 역할이어서 떨어질 각오를 하고 본 오디션이었죠. 덕분에 그동안 시달렸던 영어 콤플렉스에선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죠."

이후 그녀는 디즈니크루즈 무대에서 뮬란, 자스민 공주, 포카 혼타스 역을 맡아 선상에서 10개월여를 보냈다, 또 '미스 사이공'에선 앙상블, '디스인챈티드!(Disenchanted!)'에선 뮬란 역을 맡아 플로리다와 뉴저지 등에서 공연하며 뮤지컬 배우로서 입지를 다져갔다.

#브로드웨이에 데뷔하다

그리고 2014년 여름, 그녀는 운명적인 작품과 조우한다. 브로드웨이에서 20년 만에 다시 공연된다는 것만으로 화제를 몰고 온 대작 '왕과 나'다. 그 유명세에 걸맞게 오디션엔 수천 명의 지원자들이 몰려들었고 석 달간 총 8번의 오디션 끝 그녀는 앙상블 겸 텁팀 언더스터디(유사시 배역을 연기할 수 있게 준비된 배우)에 발탁됐다. 텁팀은 시암 국왕에게 조공으로 바쳐진 버마 공주로 국왕과 여주인공 안나 다음으로 비중 있는 역할. 연습기간을 거쳐 2015년 5월 그녀는 그토록 꿈에 그리던 링컨센터 무대에 올라 브로드웨이에 입성한다. 그리고 그해 9월 텁팀 역으로 무대에 오른 이래 공연 기간 동안 수 십 차례 텁팀 역을 연기하며 주목받았다. 1년 6개월 뒤 공연은 성황리에 막을 내렸고 뒤이어 브로드웨이 제작팀이 론칭한 전국 투어팀에서도 그녀는 앙상블과 텁팀 언더스터디로 선발됐다. 그리고 투어 1년만인 지난해 10월 텁팀 역을 맡은 배우의 건강이상으로 그녀가 그 역을 맡게 됐고 지금까지 텁팀으로 열연 중이다. 현재 투어팀은 지난달 27일부터 코스타메사 시걸스트롬 극장에서 공연 중인데 이번 공연은 11일까지 계속된다. 이처럼 1년이 넘는 장기투어 덕분에 2014년 결혼한 뮤지컬 배우이며 성우인 남편과는 떨어져 지내고 있다. 그러나 오는 8월이면 캐나다 공연을 끝으로 그녀는 다시 뉴욕으로 돌아가 신혼의 단꿈을 꿀 수 있지 싶다. 게다가 브로드웨이에서 그 실력을 인정받은 만큼 앞으론 탄탄대로만 펼쳐지지 않겠는가.

"어휴 아니에요. 다음 작품을 하려면 또 오디션을 봐 수백 대 일의 경쟁을 뚫어야 해요. 그때까진 낮엔 연습하고 오디션 보러 다니고 밤엔 또 아르바이트를 하지 싶어요.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불투명한 미래가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도 지금 이 무대를 즐기려고요. 수년전 제가, 그리고 지금 누군가가 그토록 서고 싶어 하는 소중한 무대니까요."

이제 막 입신(立身)에 접어든 이 전도유망한 여배우에게 어떤 응원의 말을 건네야 할까. 그저 미래를 불안해하느라 현재의 행복을 놓치진 말길. 1년 뒤 혹은 10년 뒤 어느 하루가 오늘 하루보다 더 가치 있다 말할 수 없으니. 행복은 언젠가 이뤄야 할 목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존재하는 것이니까.


이주현 객원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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