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오디세이] 자생한방병원 미주분원 이우경 대표원장…만능 스포츠맨을 꿈꾸는 한의사
서울 국제진료센터 거쳐6년 전 LA 분원장 부임
서핑, 마라톤, 격투기에
극단 연극배우로도 활동
영어권 석·박사 과정
강의 통해 후학 양성
한국서부터 의료봉사
5년째 캄튼서 무료 진료
이토록 종잡을 수 없는 캐릭터라니. 딱딱한 한의사인가 했는데 한때 연극에 빠져 연극배우를 꿈꿨고 여전히 그 꿈 아쉬워 무대에 오르는 아마추어 배우라고. 그렇다면 꽤나 감수성 풍부한 예술가이겠거니 했는데 웬걸, 서핑에 이종격투기까지 못하는 운동이 없는 만능 스포츠맨이란다. 바로 자생한방병원 미주분원(jasengusa.com) 이우경(41) 대표원장이다. 그러나 거듭되는 이 반전과 균열이 그리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던 건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그가 삼라만상 곳곳에 관심 많은 르네상스맨임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이민 6년차 직장인이기도 한 그와의 대화는 이민 초년병들이 겪는 고민부터 어떻게 살 것인가를 넘나드는 '알아두면 쓸모 있는 신비한 잡학사전'처럼 신나고 유쾌했다.
#연극배우 꿈 접고 한의사로
서울 출생인 그는 어려서부터 공부 잘하는 모범생이었다. 고교시절 연극배우를 꿈꿨지만 고교 교사인 부친의 권유에 따라 1995년 세명대 한의대에 진학했다. 대학 진학 후 연극반에 들어가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했고 학교 행사 때마다 사회자로 불려 다니는 등 그동안 꽁꽁 감춰뒀던 끼를 발산했다. 그러면서 그는 다시 대학입시를 봐 연극과에 진학하겠다며 휴학계를 내고 대학로 극단에 입단하기도 하는 등 나름 파란만장한 청춘의 한때를 보냈다. 이후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 한 그는 그의 표현대로 죽어라 공부만 해 2005년 한의사 면허를 취득하고 졸업했다. 졸업 후 그는 '사부'를 찾아 말 그대로 괴나리봇짐 달랑 둘러메고 전국을 다니기 시작했다. 무협지에나 나올법한 이야기 같다 했더니 그가 웃는다.
"당시로선 새로운 한의학 기술인 봉침, 추나, 약침, 비만치료·관리 등을 배우고 싶어 이 분야의 대가들을 찾아 다녔죠. 학교에서 배운 것만으론 한계가 있어 현장에서 제대로 배우고 싶었거든요."
그렇게 서울은 물론 부산, 마산, 평택 등지를 돌며 수련을 마친 그는 2005년 인천에 한의원을 개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병원은 입소문을 타고 하루 평균 30~40명의 환자가 다녀갈 만큼 북적이며 승승장구했다. 그리고 2006년엔 경희대 동서의학대학원에 진학해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기도 했다.
#미국에 한국 한의학을 알리다
그렇게 잘 나가던 그가 2009년 돌연 한의원 문을 닫고 자생한방병원에 입사한다.
"한의사가 되겠다고 결심하면서 해외에 한국 한의학을 제대로 알리고 싶었어요. 한국엔 한의원이 포화상태라 블루오션을 개척해 보고 싶기도 했고요. 그래서 당시 미국을 오가며 가주 한의사 면허도 취득해 놨죠. 그런데 마침 막 미주 분원을 개원한 자생한방병원에서 한의사를 뽑길래 지원해 국제진료센터에서 근무하게 됐습니다."
이후 2012년 자생한방병원 LA분원 원장으로 발령이 나 미국에 온 그는 샌호세 분원을 거쳐 2013년부터 미주분원 대표원장을 맡고 있다. 그의 부임 후 병원을 찾는 타인종 환자들은 꾸준히 늘어 현재 전체 환자의 30%에 이를 만큼 그의 오랜 포부도 차곡차곡 실현되고 있다. 또 그의 환자들 중엔 유명 스포츠 스타들도 있어 눈길을 끈다. 바로 LA다저스 류현진과 텍사스 레인저스 추신수, PGA 프로골퍼 최경주 등이다. 특히 추신수 선수와는 텍사스 자택에 왕진도 가고 LA 원정경기가 있으면 어김없이 만나 식사를 할 만큼 막역한 사이가 됐다고. 이처럼 환자 진료 외에도 그가 큰 관심을 갖고 있는 건 후학 양성. 그동안 그는 동국대학교 LA캠퍼스와 라스베이거스 원구한의대에 재학 중인 영어권 석·박사 과정 학생들을 대상으로 임상특강을 진행하며 학생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가르치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소질도 있는 것 같아요.(웃음) 그래서 앞으론 보다 더 활발히 미국 한의대 강단에 서 한국 한의학이 지금껏 이뤄낸 과학적 성과들을 가르치고 싶어요. 그러다보면 제가 가르친 학생들을 통해 한국 한의학이 미국에 더 빨리 전파되리라 믿습니다."
#만능 스포츠맨의 나눔 실천
아무리 미국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지만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클 법도 싶었다.
"처음엔 돌아갈 계획이었죠. 수입과 사회적 지위만 놓고 보면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더 나으니까요. 그런데 지난해 결혼해 가정을 꾸리기도 했고 시간이 갈수록 한국에서의 지나치게 경쟁적인 삶보다는 지금의 저녁이 있는 삶이 좋아 정착할 계획입니다."
돈과 명예를 이기는 '저녁이 있는 삶'이란 게 언뜻 이해가 안됐지만 그의 꽤나 방대한 취미생활을 듣다보면 무슨 말인지 금세 수긍이 간다. 일견 책상물림처럼 보이는 그는 반전 있게도 자타공인 만능 스포츠맨이다. 대학 시절 입문했다 한동안 작파했던 마라톤을 미국에 와 다시 시작한 이래 그는 LA, 헌팅턴비치, 롱비치, 샌프란시스코 등 크고 작은 마라톤 대회에 꾸준히 참가할 만큼 마라톤에 푹 빠져 있다. 뿐만 아니다. 주말이면 서핑에 스키, 스노보드, 이종격투기까지 다양한 스포츠를 즐긴다. 매일 아침 3~5마일씩 조깅을 하고 주말이면 여름엔 바닷가를, 겨울이면 어김없이 스키장을 찾는 것이다.
"매일 진료실에 앉아 환자들을 보다 보면 지치게 마련인데 이처럼 운동을 하면 활동적이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생겨 스트레스 해소와 정신건강에 좋죠, 그리고 결국엔 이 좋은 에너지가 환자에게 전달돼 진료에도 도움이 되고요."
그리고 젊은 시절 매료됐던 연극도 다시 시작해 재작년부터 '굿모닝겨자씨' 극단에 가입해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이처럼 동분서주하면서도 그는 의료봉사에도 열심이다. 미국에 오기 전까지 인천 소재 지적장애인 재활원에 5년간 정기 의료봉사를 다녔고 LA에 온 뒤론 캄튼 소재 한 무료 클리닉에서 5년째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뭐 대단한 건 아니고… 그저 지금껏 운 좋게 제가 받은 걸 나누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의사라는 직업이 시간이 갈수록 타성에 젖고 교만해지기 쉬운데 봉사활동을 하다보면 왜 의사가 되고 싶었는지 초심을 돌아보게 돼 오히려 제가 얻는 게 더 많아요."
쑥스러운 듯 웃는 그를 보고 있노라니 한국사회 올해의 키워드라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저녁이 있는 일상에 행복을 느끼고 베푸는 삶이 결국은 받는 삶이라는 일견 소소해 보이지만 확실한 행복을 이미 그는 손에 넣은 것이다. 그러나 소소하다기엔 그 행복 멀리서도 알아볼 만큼 크고 반짝거렸다.
이주현 객원기자 joohyunyi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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