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 세리머니 생각하다 듀스 허용" 유쾌한 정현씨
정현 '메이저 4강 신화'까지
근시 때문에 시작, 테니스는 내 운명
한국 테니스 사상 최초로 메이저 대회 4강에 오른 정현(22.한국체대)의 어머니 김영미(49)씨 얘기다. 정현은 테니스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아버지 정석진(52) 감독은 삼일공고에서 테니스를 가르쳤고, 형 정홍(25.현대해상)도 실업 테니스 선수다.
테니스 DNA를 지닌 정현은 빠르게 기본기를 익혔다. 12세 때 세계적 권위의 국제 주니어 대회인 오렌지볼과 에디 허 인터내셔널에서 우승하면서 12세 이하 세계 1위에 올랐다. 마리야 샤라포바(러시아), 앤드리 애거시(미국) 등 세계적 스타를 키운 볼레티어리 IMG 테니스 아카데미에서 배울 기회도 얻었다. 그는 형과 함께 미국으로 테니스 유학을 떠났다. 그런데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주니어 선수들이 다 모여 있다 보니 꼼꼼한 지도를 받지 못했다. 주원홍 전 대한테니스협회장은 "정현은 기본기가 탄탄한 선수였다. 그런데 미국에 다녀온 다음 폼이 망가져 힘을 제대로 못 썼다"고 했다.
정현은 2012년 이형택이 몸담았던 삼성증권 테니스팀에 들어갔다. 그때부터 '정현, 톱10 만들기'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김일순 감독과 윤용일 코치에게 지도를 받으며 정현은 예전 실력을 되찾기 시작했다. 구체적인 성과가 이어졌다. 2013년 윔블던 주니어 대회에서 준우승했다. 한국 선수가 윔블던 주니어 대회에서 준우승한 건 1994년 여자부 전미라 이후 19년 만이었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선 남자복식 금메달을 땄다. 2015년 챌린저 대회에서 4회 우승하면서 173위이던 세계랭킹을 50위권까지 끌어올렸다. 아시아 선수는 체구가 작아 파워가 떨어진다. 그래서 지구전 승부를 펼친다. 하지만 정현은 서양 선수에게 밀리지 않고 파워 스트로크로 상대를 제압한다.
2년 전 슬럼프, 투어 중단하며 폼 수술
정현은 '테니스 지능'이 높다. 테니스 관련 지식이라면 뭐든지 습득하려고 노력한다. 어렸을 때 경기에서 안 풀렸던 부분을 일기에 쓰면서 복기하고 또 복기했다. 우상인 노박 조코비치(세르비아) 경기 영상도 수시로 돌려 봤다. 코치들이 우스갯소리로 "(정)현이가 질문을 너무 많이 해서 힘들다"고 할 정도였다. 고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면 온종일 같은 동작을 수백 번 하는 지독한 연습벌레다.
2016년, 세계랭킹 100위 이내 선수들이 뛰는 투어 대회에 본격적으로 나가면서 좌절을 맛봤다. 서브와 포핸드 샷에서 약점을 보이면서 그해 51위(1월)까지 올랐던 랭킹이 100위 밖(6월)으로 밀려났다. 프랑스오픈에서는 세계 154위였던 캉탱 알리스(21.프랑스)에게 0-3으로 완패했다. 한국 테니스의 '희망'이던 정현은 그즈음 '실력에 비해 거품이 낀 선수'로 취급당했다. 정현 스스로도 "항상 이기기만 하다가 지는 걸 자주 겪으니 힘들었다. 경기를 뛰면서도 내가 나를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고 했다. 정현은 '투어 중단'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이제 막 메이저 대회 본선에 나가게 된 선수가 그 기회를 접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정현은 2016년 6월부터 4개월간 진천선수촌에서 집중훈련을 했다. 그립부터 서브, 스트로크 등 문제점 전반을 손봤다. 몸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웨이트 트레이닝도 열심히 했다. 그는 "전에는 서브를 넣거나 공격할 때 리듬이 없었다. 생각이 많아서 그랬다"며 "공을 띄우고 치는 걸 아무런 생각 없이 반복했다. 그러자 나만의 경쾌한 공격 리듬이 생겼다"고 했다. 혹독한 슬럼프에서 빠져나온 정현은 날아올랐다. 지난해 4월 바르셀로나 오픈 단식 8강전에서 세계 1위 라파엘 나달(32.스페인)에게 0-2로 졌지만 1세트는 타이브레이크 접전이었다.
세계 1위 나달 "정현 백핸드 원더풀"
당시 나달은 "정현은 톱클래스 수준의 백핸드를 가지고 있다"고 칭찬했다. 정현의 백핸드는 각이 크고 정교하다. 베이스라인 근처 깊숙한 곳에 꽂힌다. 정현은 지난해 11월 넥스트 제너레이션 파이널스에서 첫 투어 대회 우승을 맛봤다.
기세를 이어 간 정현은 호주오픈에서 세계 14위 조코비치, 4위 알렉산더 즈베레프(독일) 등을 격파하며 5연승으로 준결승에 올랐다. 8강전 승리 후 기자회견장에는 40여 명의 외신기자가 몰려들었다. 축하 메시지를 하루에 300여 개씩 받고 있다. 실시간 검색어는 정현 관련어로 도배됐다. 그래도 정현은 당황하는 모습이 없다. 8강전 직후 인터뷰에서 "경기가 끝난 뒤 세리머니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막판에 듀스를 허용했다"고 말했던 것처럼, 그 모든 것을 미리 생각하고 하나씩 보여준다. 그의 시선은 더 높은 곳을 향하고 있다. 정현이 "아직 안 끝났습니다. 금요일에 만나요"라고 했던 이유다. 정현은 26일 준결승전에서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37.스위스.세계 2위)를 만난다.
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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