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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맥 세상] 한반도 '세균' 정치학

#알고 보면 우리 몸은 세균(박테리아) 덩어리다. 인간의 세포 숫자가 70조 개라고 하는데 세균은 그보다 많은 100조 마리가 살고 있다. 그 대부분은 장(소장·대장)에 분포한다. 이를 '장내세균'이라 부른다. 장내세균에는 좋은 역할을 하는 유익균(비피도박테리움·락토바실러스 등)과 못된 역할을 하는 유해균(대장균 등)이 견제와 균형을 통해 공생한다.

장내세균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음식을 체내로 흡수하는 첨병역할을 하기 때문에 장에 면역세포의 70%가 몰려 있다. 그래서 장은 건강의 첨병이라 부른다. 유익균은 영양소를 흡수하고, 면역계를 강화하며, 각종 대사물질을 만들어 생명을 유지하는 일등공신이다. 반면 유해균은 음식을 부패시켜 독소를 만들어내고, 이를 장내로 침투시켜 각종 성인병과 노화의 주범으로 꼽힌다.

유익균은 식이섬유가 많은 채소나 현미, 김치·된장 같은 발효 음식을 좋아한다. 반면 유해균은 가공식품,밀가루 음식, 고기와 지방류가 주식이다. 식생활에 따라 장내세균의 판세가 달라지고 건강과 질병이 갈린다.

그러나 유해균을 잡겠다고 항생제를 투입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다. 유익균까지 대량 살상시키기 때문이다. 오히려 유해균의 내성을 더 길러 수퍼박테리아를 탄생시킨다. 결국 유해균을 절멸시키는 방법은 없다. 아마 있다면 생명도 끝나게 될 것이다.

#몸에 깃들어 사는 유익균과 유해균의 관계는 어쩌면 한반도에 숙주 삼은 남한과 북한의 운명과 비슷하지 않나 생각해본다. 남과 북은 서로 체제(생명)를 유지하는 방식부터 다르다. 남한은 자유와 민주를 지향하는 자본주의를, 북한은 평등과 계획경제 중심의 사회주의를 먹고 산다. 서로가 우월성을 내세우며 적대시하고 있지만 상대방을 멸절시키려다간 공멸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도 공유하고 있다. 만약에 장내세균이 '공존'을 포기하고 편을 갈라 죽기살기로 전쟁을 벌인다면 몸(한반도)은 어떻게 될까.

#그래서 하나로 만들려는 통일보다는 평화 공존이 우선이다. 전쟁을 부를 수도 있는 첨예한 갈등을 씻어내고 화해·협력·교류가 먼저다. 지긋지긋한 남북 대립·마찰·긴장의 기다란 터널을 뚫고 한반도에 햇살이 비치기 시작했다. 평창동계올림픽이 계기다. 여자하키 남북단일팀 구성, 북한예술단 공연, 당국자 회담 등 막혔던 동맥에 피가 흐르듯 한반도 병세가 회복되고 있다.

물론 경계심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일부 보수 정치인들은 남북단일팀, 한반도기 사용을 반대하고 있다. 극우 인사들은 한국의 공연시설을 점검하러 온 북한 대표단을 맞아 환영은커녕 인공기와 김정은 초상화를 불지르는 격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북한의 핵무기로 대북 증오심이 한층 높아진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평화 없는 세상에서 항시 전쟁 위기감을 안고 살 수는 없는 일이다. 북한이 유해균처럼 나쁘다 해도 항생제를 들이부어 소멸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동안 수없는 제재·압박이라는 항생제는 결국 핵무기라는 수퍼박테리아를 만들어내는 결과를 초래한 것은 아닐까.

중국과 대만이 '통일'을 내세울 땐 전쟁 위기를 벗어날 수 없었지만 통일이라는 말을 접고 교류·협력만 하자고 하여 지금은 양국을 오가는 비행기가 일주일에 800여 편에 달한다. 남과 북이 중국·대만 관계처럼 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러기 위해선 예민한 문제보다 교류·협력이 먼저다. 그 결실이 북미대화로 이어지고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담보하는 초석이 놓여지는 역사적 분기점이 지금이었으면 한다. 남북은 한걸음씩 양보하며 어렵게 맞이한 대화 국면을 그르치지 않길 바란다. 건강은 세균의 '박멸'이 아니라 '공존'에서 온다.


이원영 /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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