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 온갖 모함 불구 "내게 적은 없다"
파차파 한인촌과 도산의 삶…도산 공화국(17)
이승만이 미 정보기관에
안창호, 박용만, 김규식을
공산주의로 모함한 정황
도산을 볼셰비스트, 즉 공산주의자로 모함한 투서가 동지회 소행이라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다. 그러나 간접적 또는 정황적 증거는 여러 곳에서 나온다.
김산은 도산 안창호가 1924년에 LA집에 공산주의 서적이 있다는 혐의로 체포된 적이 있다고 했다. 또한 곽림대는 1924년 뉴욕의 조그만 가게에서 우연히 서재필을 만났는데 그때 나눈 대화를 기억하고 있었다.
"서재필이 '워싱턴에 있는 한인 지도자가 도산을 공산주의자로 모함했다'고 하자 내가 '그가 누군가?'라고 물었고 서재필은 화를 내듯이 '정녕 그 사람이 누군지 모른단 말인가?'라고 대꾸했다. 나는 서재필이 이승만을 지칭한다고 생각했다."
고정휴도 이승만이 안창호를 공산주의자로 모함했다고 밝히고 있다.
"1920년대 후반 구미위원부의 위원으로 활동했던 김현규의 회고에 따르면, '이 박사는 자신이 객거국에 대한 충성심에서 안창호, 박용만, 김규식을 과격파 공산주의자라고 미군 정보기관과 정부 반간첩 기관에 통고했다고 자랑하곤 했다'고 한다."
이처럼 이승만 자신이 안창호, 박용만, 김규식 등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한인 지도자들을 공산주의자로 미 정보기관에 모함했다는 간접적인 자료들이 있다. 따라서 미국 이민국에 도산 안창호와 흥사단, 대한인국민회를 볼셰비스트로 모함한 투서도 이승만 추종 세력의 소행일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다.
당시 이승만과 안창호, 박용만과의 갈등은 한인 사회를 분열시켰다.
그 한 예를 살펴보자. 이승만은 1919년 1월 15일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여 국민회 임원들의 환영을 받았다. 국민회 임원들이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이승만을 환영했지만 이승만은 장문의 '비밀편지'를 하와이에 있는 측근들에게 보냈다.
"첫째, 안창호는 목전의 외교운동비 모집 건으로 근일 하와이에 갈 예정인데 이미 미주 본토에서 모집한 의연금 1만 달러로도 충분하다. 따라서 성공가능성이 없는 사업을 빙자하여 하와이에서 다시 모금하려는 것은 절대 반대이니 동포들과 은밀히 연락하여 될 수 있는 한 이 모금에 응하지 않도록 하라."
이승만은 미주 한인 사회에서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과 단체에 대한 공격을 서슴지 않았으며 그러한 사례는 많다.
김형찬은 또한 "1925년 6월 24일자 편지에서 도산은 '누가 나를 공산주의자로 모함하여 정부 관계자가 흥사단 본부로 나를 찾아 왔었다'고 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민국 자료에 의하면 도산 안창호는 1925년 6월 3일 시카고의 노동부 산하 이민국에서 대질 심문을 받았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도산 안창호 추방 사건의 핵심 부분이기 때문에 일부를 번역한다.
이 대질 심문은 브레케(J.B. Brekke) 이민국 검사관이 담당했으며 버나드 김이 통역을 맡았는데 1925년 6월 3일 시카고의 이민국에서 조사가 이루어졌다.
질문: 이름이 무엇인가?
답변: 안창호.
질문: 언제 미국에 도착했나?
답변: 샌프란시스코에 1924년 12월 16일에 도착했다.
질문: 이렇게 많은 지역을 방문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답변: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서인데 특히 학생들을 많이 만났다. 그들이 나를 초청해서 만난 것이다.
질문: 단순히 친구로 만난 것인가, 아니면 강연을 부탁한 것인가? 아니면 무엇인가?
답변: 개인적인 만남도 있었고 강연을 하기도 했다.
질문: 강연 주제는 무엇인가?
답변: 일반적으로 나는 대한민국의 독립과 자유를 준비하는 것에 대해 조언을 많이 했다. 학생들에게는 정직하게 일하고 기회가 있는 만큼 열심히 배우고 서로 도움을 주라고 했다.
질문: 당신은 소련 정부 또는 러시아에 관심이 있는가?
답변: 나는 직간접적으로 전혀 관심이 없다.
질문: 미국 정부에 대해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었는가?
답변: 아니다.
질문: 미국 정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미국 정부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답변: 나는 미국 정부에 관하여는 어떤 결점도 없다고 생각한다.
질문: 강연 내용 중에 미국 정부가 과격하게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나?
답변: 절대 아니다. 그럴 이유가 없다.
질문: '대한인국민회'라는 단체가 있는가?
답변: 그렇다.
질문: 어떤 목적으로 조직이 만들어졌나?
답변: 한국인들이 서로 협력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질문: 대한인국민회가 미국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노력을 했는가?
답변: 아니다.
질문: 미국에 적들이 있는가?
답변: 내가 아는 한 나에게 적은 없고 나의 행동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있을 수 있다.
질문: 미국에 입국한 진짜 목적이 무엇인가?
답변: 세 가지 목적이 있다. 첫째는 가족과 만나기 위해서이고, 둘째는 가난한 학생들이 일하면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방법을 강구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에서 교장도 역임했다. 셋째는 옛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서이다.
질문: 상해로 돌아가기 전 얼마 동안 미국에 체류할 예정인가?
답변: 원래 8개월 간 체류할 예정이었는데 비자를 연장해 준다면 내년 1월까지 더 체류하길 원한다.
이 대질 심문에서 안창호는 자신이 가족과 옛 친구들을 만나고 가난한 한국 유학생들이 학업을 마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기 위해 미국에 왔다고 밝히고 있다.
동시에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는 도산의 투철한 애국심과 의연함을 엿볼 수 있다. 심문이 끝난 후 미국 이민국은 도산 안창호가 미국에 6개월 더 체류하는 것을 허락함으로써 도산 안창호는 1926년 2월까지 체류할 수 있게 되었다.
<18회로 계속>
장태한 / UC 리버사이드 교수·김영옥 재미동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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