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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오디세이] 방송인 박혜란…여우(女優), 라디오 스타가 되다

고2때 잡지 모델로 데뷔
삼성전자 1대 전속모델
드라마·쇼 MC로 인기절정
95년 1.5세와 결혼 LA행
뉴스앵커·방송 리포터 활약
11년째 라디오 진행자로 인기
"화려한 연예계 생활보다
지금의 행복에 더 만족"


속절없는 세월 속 얼굴엔 주름이 하나 둘 자리 잡고 앉았지만 마음은 그 세월을 덧입어 더 평화롭고 고요해진 듯 했다. 배우 박혜란(52)씨다. 라디오 진행자로 어느새 10년 넘게 잔뼈 굵은 그녀지만 그녀를 기억하는 80·90년대 팬들은 연기자로서의 그녀가 더 익숙한 게 사실. '20대 스타 여배우, 결혼과 함께 도미'라는 어찌 보면 꽤나 진부해 보이는 이 문장 이후 그녀의 삶은 전혀 진부하지 않았다. 그녀의 재능을 아끼는 러브콜로 여전히 LA한인사회 대표 방송인이라는 화려한 수식어를 달고 살지만 그 수식어 너머 그녀의 삶은 더 현명해지고 달큰해졌다. 함께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유쾌한 에너지를 주는 여우(女優), 박혜란씨를 만나봤다.

#미녀 고교생 스타의 탄생

서울출생인 그녀는 고교 1학년 때인 1982년 당대 유명 여배우들의 등용문이었던 잡지 '여학생' 표지모델로 데뷔했다. 이후 광고모델 제안이 쏟아져 들어왔고 1년 뒤 그녀는 당시 한국 모델계를 이끌던 '모델센터'가 주최한 모델선발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며 본격적으로 모델 일을 시작했다. 유명 디자이너의 런웨이는 물론 유명제과, 패션, 교복 모델로도 종횡무진 했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스타덤에 오르게 것은 1984년 삼성전자 전속모델로 발탁되면서부터.

"고 2때 시작해 3년 정도 했어요. 제가 1대였고 뒤를 이어 허윤정씨, 고 최진실씨가 했죠. 개런티요? 1000만원 정도였던 걸로 기억해요. 그런데 개런티보다 더 기억에 남는 건 서울역 앞 대기업 옥상 빌보드에 제 얼굴이 걸렸던 거예요.(웃음)"

고교졸업 후인 1985년 서울예전 영화과에 진학, 연출을 전공한 그녀는 대학 졸업 후 본격적인 연예계 활동을 시작했다. 1988년 MBC 특채 탤런트로 선발돼 드라마 '푸른 계절' 주연을 비롯해 '겨울새' '3일의 약속' 등 10여 편의 드라마에 출연했다. 그러나 드라마 주인공보다 더 그녀가 빛을 발한 곳은 MC. KBS '신인무대'를 통해 MC로 데뷔한 그녀는 당대 최고 스타 고 이주일과 함께 '쇼 스타 탄생'을, 황인용과 함께 '0시의 초대석' 등을 진행하며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고 1993년엔 영화감독 이장호와 함께 CBS 라디오에서 '이장호·박혜란의 정보시대'를 진행하며 라디오 진행자로 청취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운명적 사랑 쫓아 LA로

1989년 그녀는 운명적인 사랑과 조우한다. 현재 할리우드에서 엔터테인먼트 업체를 운영 중인 동갑내기 남편 케네스 김(52)씨다. LA 출신의 1.5세인 김 대표는 당시 UCLA를 휴학하고 한국에 와 작곡가겸 음반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었다. 당시 고민 많던 연예계 생활에 큰 의지가 돼줬던 '교포 청년'과 사랑에 빠진 그녀는 7년여 연애 끝 1995년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직전 한 지역 민영방송사에서 전속 MC직을 제안하며 연봉 1억원과 주택제공까지 제시했지만 이를 거절하고 LA에 왔다. 인기절정이던 20대 후반이었다. 거절하기엔 너무 아까운 기회처럼 보였다.

"그땐 사랑이 먼저였어요.(웃음) 그때로 다시 돌아가면요? 그래도 같은 선택을 하지 싶어요.(웃음) 제가 어려서부터 친정엄마처럼 반듯한 가정을 꾸리는 게 꿈이었거든요. 꿈을 이룬 셈이죠."

1996년 LA로 온 그녀는 한인 외주제작사가 제작하는 MBC와 KBS 여행프로그램 리포터로 활약했고 1998년엔 미주한국방송(KTE) 8시뉴스 앵커로 5년간 뉴스를 이끌며 LA한인사회 간판 앵커로 자리 잡았다.

"보람도 있고 재미도 있었어요. 첫아이 출산 후 시작했는데 제가 유부녀인줄 모르고 중매 서주겠다는 분들부터 데이트 신청하는 이들까지 재밌는 에피소드가 많았죠. (웃음)"

둘째 출산 2주전까지 뉴스를 진행했던 그녀는 출산과 함께 사직했고 2005년 연기학원 및 매니지먼트 업체인 'CG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해 신인 연기자 발굴 및 양성에 힘썼다. 그러나 2010년 경기악화로 문을 닫아야만 했다.

#라디오와 함께한 11년

현재 그녀는 2008년 중앙방송(JBC) '상쾌한 이 아침에'로 마이크를 잡은 이래 현재 우리방송 '박혜란의 정보플러스'에 이르기까지 햇수로 11년째 라디오를 진행해오며 청취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정보플러스'는 요일별로 부동산, 건강, 커뮤니티, 교육 등 다양한 주제로 진행되는데 게스트 섭외부터 대본, 곡 선정까지 모두 그녀가 직접 한다.

"얼마 전 여든이 넘은 청취자께서 삼계탕을 들고 찾아와 방송 잘 듣고 있다며 격려해 주시더라고요. 이런 청취자들의 응원 덕분에 힘든 줄 모르고 지금껏 진행해 올 수 있었죠."

또 최근엔 도요타 한인커뮤니티 라디오 모델로도 발탁돼 2년간의 캠리 시승기를 라디오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할 예정이다. 이처럼 라디오 진행자로, 한인사회 대표 광고모델로 잘 나가는 그녀지만 그렇다고 지난 시간 늘 평탄하기만 했던 건 아니다. 10년 전 남편인 김 대표가 투자사기를 당해 적잖은 돈을 날리며 힘든 시기를 겪기도 했다.

"힘들었죠. 그런데 어차피 아무 것도 남지 않으니 마음을 비우게 되더라고요. 처음엔 남편 탓도 했지만 그 남자 맘은 얼마나 더 힘들까 싶으니까 마음이 짠하더라고요. 그때가 성탄 무렵이었는데 그래서 카드를 썼죠. 자기도 많이 힘들었겠다. 그래도 예쁜 아들 둘 있으니까 우리 힘내자. 당신을 응원한다고."

이후 김 대표가 한국에서 비즈니스를 시작하면서 부부는 3년여 간을 떨어져 지내야 했지만 남편은 금세 재기에 성공했다. 이젠 안정적인 삶에, 자녀들도 다 키웠겠다 더 늦기 전 한국에서 방송활동 재기를 생각해볼 법도 싶었다.

"그러려면 살부터 빼고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웃음) 그런데 한국 방송활동은 큰 욕심 없어요. 젊은 시절 이미 스타로 살아봤잖아요. 지금처럼 사랑하는 가족들과 일상의 평온한 행복을 누리는 걸로 만족해요."

아뿔싸. 행복이 거창한 그 무엇이 아니란 것을 또 잊었던가. 이 비루한 기억력이라니. 시인 김용택은 말한다. '이 세상의 수많은 별들이 저렇게 반짝이며 살아가듯이 인생도 그러하다. 누구의 삶이 더 빛나고 누구의 삶이 더 희미한 것은 아니다. 삶은 다 반짝인다. 밤하늘의 별빛처럼 말이다. 별이 반짝이듯이 지상의 모든 사람들도 반짝인다'

<김용택 '마음을 따르면 된다' 中에서>


이주현 객원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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