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겨 신동 유영 "평창 못 가지만 베이징서 높이 뛸래요"
올림픽 꿈 미룬 14세 피겨 신동
언니들 제쳤지만 나이 제한 걸려
김연아 밴쿠버 금메달 보고 시작
최연소 태극마크 등 무섭게 성장
새벽까지 점프 훈련하는 '악바리'
링크 밖선 아이돌팬인 10대 소녀
."언니들보다 점수가 잘 나올 줄 몰랐어요."
지난 7일 서울 목동 아이스링크에서 끝난 제72회 피겨 종합선수권대회는 뜨거운 열기와 관심 속에 치러졌다. 2018 평창 겨울올림픽출전 선수 최종선발전을 겸했기 때문이다. 여자 싱글에선 준우승한 최다빈(18·수리고)과 4위를 차지한 김하늘(16·평촌중)이 평창 행 티켓을 차지했다. 왜 우승자가 평창 행 티켓을 손에 넣지 못한 걸까.
여자 싱글 우승은 유영(14·과천중)이 차지했다. 쇼트 프로그램과 프리 스케이팅을 합쳐 204.68점. '피겨 퀸' 김연아(28) 이후 여자 싱글에서 총점 200점을 돌파한 건, 이날 유영이 처음이다. 유영은 지난달 랭킹배와 종합선수권에서 연속 우승했다. 하지만 올림픽 무대엔 설 수 없다. 올림픽 피겨에는 출전 선수 나이 제한(올림픽 직전 7월 기준 만 15세)이 있기 때문이다.
유영을 11일 서울 태릉 국제스케이트장에서 만났다. 표정이 밝았다. 대회 전까지 강행군하다 모처럼 휴식을 취한 덕분이다. 유영은 "오랜만에 잠을 푹 잤다"며 "(200점을 넘어서) 너무 좋았다. 지난달 (회장배 랭킹전에서) 197.56점을 받아, '조금만 더 하면 되겠다'고 욕심을 내긴 했는데, 200점을 넘어 놀랐다. 지금도 만족스럽지만, 앞으로 더 잘하고 싶다"고 말했다.
종합선수권 시상식에서 유영은 시상자로 나선 김연아를 끌어안았다. 유영은 김연아 때문에 피겨를 시작한 '팬'이자 '연아 키드'다. 싱가포르에 살았던 유영은 2010년 김연아가 밴쿠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걸 보고 피겨스케이팅을 시작했다. 지금도 유영이 가장 좋아하는 레퍼토리는 김연아가 2009~10시즌 연기했던 '007 메들리'(쇼트)와 조지 거슈윈의 '피아노 협주곡 F장조'(프리)다.
열대성 기후인 싱가포르의 훈련 환경이 좋지 않았다. 일반인 틈에서 스케이트를 타야 했다. 전문 지도자도 없어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의 영상을 보며 점프 등 기술을 익혔다. 결국 2013년 어머니(이숙희·48) 씨와 귀국해 원룸 생활을 시작했다. 어머니 이 씨는 2년만 해보고 안 되면 그만둘 생각이었다. 유영과 어머니는 한국에, 개인사업을 하는 아버지는 인도네시아에, 큰오빠는 군대에, 작은 오빠는 싱가포르에 흩어져 사는 이산가족이 됐다.
처음 훈련을 시작한 곳은 과천 빙상장이다. 김연아가 어린 시절 연습했던 바로 그 빙상장이다. 한국말이 서툴러서 힘들었지만, 피겨에 대한 열정 만큼은 강력했다. 새벽과 밤에도 이를 악물고 훈련했다. 불과 1년 만인 2014년 트리플(3회전) 점프를 마스터했고, 2015년엔 전 종목을 통틀어 최연소(만 10세7개월) 태극마크의 주인공이 됐다. 그리고 2016년 종합선수권에서 언니들을 제치고 정상에 올랐다. 김연아의 최연소 우승 기록(12년 6개월)을 10개월 앞당겼다.
지난해부터는 캐나다로 건너가 훈련하고 있다. 훈련장도 김연아가 밴쿠버 올림픽을 준비했던 '토론토 크리켓 스케이팅 & 컬링 클럽'이다. 유영은 "(김)연아 언니가 거기서 훈련했기 때문"이라고 선택 배경을 설명했다. 어머니 이씨는 "캐나다에서 점프 전문가인 지슬란 브라이언드(캐나다) 코치를 만나 점프를 교정했다. 그 전엔 점프에 자신감이 없었는데 많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빙판에선 시합도, 훈련도 '악바리'지만, 링크 밖으로 나서면 영락없는 10대 소녀다. 유영은 "캐나다에선 친구가 없어 외로웠다. 메신저나 국제전화로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기분 전환을 했다"고 말했다. 취미는 셀카 찍기와 아이돌(방탄소년단·트와이스) 공연 또는 뷰티 유튜버(메이크업·패션 소재의 개인 인터넷 방송) 동영상 보기다. 경기 전 화장도 직접 한다.
어린 나이 탓에 평창 무대에 서지 못하는 유영은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나갈 수 없어 아주 아쉽다. 출전은 못 해도 경기라도 직접 보고는 싶은데"라며 아쉬워했다. 오는 3월 세계주니어피겨선수권대회 준비 때문에 평창을 다녀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국내 두 번째 성화봉송 주자인 방송인 유재석이 1일 오후 인천시 중구 인천대교에서 첫 번째 주자 유영 선수에게 성화봉송을 전달받고 있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국내 두 번째 성화봉송 주자인 방송인 유재석이 1일 오후 인천시 중구 인천대교에서 첫 번째 주자 유영 선수에게 성화봉송을 전달받고 있다.
올림픽 무대에는 서지 못하지만, 뜻깊은 추억 하나는 남겼다. 성화 봉송 주자, 그것도 첫 주자로 뽑혀 봉송행사에 참여했다. 아테네에서 성화를 채화해온 김연아로부터 성화를 이어받았다. 유영은 맡은 구간을 힘껏 달린 뒤 방송인 유재석 씨에게 성화를 넘겼다.
유영의 올림픽은 4년 뒤인 2022년 베이징 겨울올림픽이다. 중국어 인터뷰를 목표로 중국어 공부도 열심이다. 유영은 "베이징올림픽까지 열심히 해서 (김)연아 언니처럼 점프도 잘 뛰고, 스핀도 잘하고 싶다. '클린' 연기로 좋은 점수를 받는 게 목표지만, 메달보다는 후회 없는 경기를 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며 "그때까지 많이 응원해달라"고 당부했다.
김효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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