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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창] 영화 '1987'이 주목받는 이유

#. 영화 '1987'이 화제다. 대통령도 보고 여야 정치인들도 앞다퉈 보고 있어서다.

좁게는 박종철, 이한열 두 젊은 대학생의 죽음이 소재다. 넓게 보면 1980년대 시대적 질곡 속에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용기 있게 행동했던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재미가 있다. 시종일관 긴장감을 유지하며 관객을 몰입하게 만든다.

물론 극적 완성도를 위해 과장되고 미화된 부분도 있다. 하지만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우리 세대의 집단 경험을 다른 어떤 객관적 서술보다 호소력 있게 전달한다는 미덕이 훼손될 정도는 아니다. 불과 30년 전 이야기지만 1987년은 이렇게 역사가 되고 장준환 감독은 또 하나의 역사 기록자가 되었다.

#.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을 예전엔 사관(史官)이라 불렀다. 조선시대 사관은 왕조실록을 비롯한 모든 국가 공식 기록물의 초고를 작성하던 1차 기록자였다. 벼슬 품계로 치면 정7품에서 정9품으로 그다지 높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임금의 모든 언행을 비롯해 나라 안팎 대소사와 인물의 시비득실까지 기록으로 남기는 요직이었기 때문에 선발 절차는 매우 엄격했다.

첫째 조건은 과거 시험의 문과 급제자로 재(材)·학(學)·식(識)의 삼장지재(三長之才)를 고루 갖춘 인재여야 했다. '재'란 문장력으로 역사 서술 능력, '학'은 해박한 역사 지식, '식'은 현실을 공정하게 판단하고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둘째는 출신과 가문에 흠이 없어야 했다. 첩의 자손인 서얼은 절대 사관이 될 수 없었다. 친가와 처가 그리고 조상 중에 부정축재자 같은 범죄자가 있어도 자격 미달이었다.

본인 스스로의 강직한 성품과 정직성도 중요했다. 사관으로 천거되었다가도 마음이 사특하다거나 정직하지 못해서, 혹은 공론에 저촉되는 언사를 일삼았다는 이유로 임용이 거부된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까다롭게 제수되는 자리였던 만큼 사관이 되면 가문의 영광일 뿐 아니라 스스로도 남다른 긍지와 사명감을 가졌다. 게다가 사관의 기록은 임금도 함부로 왈가왈부할 수 없을 정도였으니 그 자부심과 기개가 오죽했을까 싶다. 우리 조선왕조실록이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자랑스러운 유네스코 기록유산이 된 것은 그저 이루어진 일이 아니었다.

#. 무엇인가를 기록한다는 것은 후세에 오늘을 판단할 사료를 남기는 일이다. 그만큼 엄중해야 하고 책임감도 수반되어야 한다. 영화감독이나 작가, 기자 등 세상 모든 기록자들이 진실과 객관이라는 숫돌에 끊임없이 자기 양심을 갈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영화 '1987'은 우리를 30년 전으로 다시 데려간다. 동시에 작금의 상황도 돌아보게 만든다. 당시 대학생뿐 아니라 기자나 검사 등 영화 속 주인공들은 공의와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사회를 꿈꾸며 불의에 맞섰을 것이다. 하지만 30년이 흐른 지금 얼마나 그런 세상이 실현되었는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언론은 더 비겁해졌고, 정치인들은 더 야합에 능수능란해졌으며, 기득권 지키기는 훨씬 더 치밀해지고 견고해졌다는 생각마저 든다.

독일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유대인 대학살 같은 무자비한 악행을 자행한 사람들도 알고 보면 이상한 광신도나 반사회성 인격 장애자들이 아니라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었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를 '악의 평범성'이라 불렀다. 영화 '1987'은 그런 악의 평범성에 맞서는 사람들이 있어 세상은 또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이런 것이 영화감독의 존재감이고 현대판 사관으로 불리어도 무방한 이유다.

'1987'은 개봉 3주 만에 500만 명에 육박할 정도로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마침 LA와 OC에서도 절찬 상영 중이니 우리 독자들도 한 번씩 보면 좋겠다.


이종호 OC본부장 lee.jongho@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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