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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오디세이] 크리스토퍼 리 감독…아버지의 역사를 찾아가다

초교 때 이민 온 1.5세
디즈니 테마파크 설계
비디오게임 개발로 성공
5년 전 다큐 제작 나서

6·25,위안부,탈북자 등
한국현대사 재조명 주목
동화책 집필로 수상도
현재 상업영화 준비 중


그의 스튜디오는 LA의 유서 깊은 스패니쉬풍 건물 2층에 자리하고 있었다. 아담한 중정(中庭)이 내려다보이는 그의 사무실에 들어서는 순간 은은한 조명 밑에 자리하고 있는 게임 CD들과 영화 포스터, 작업용 컴퓨터, 거기에 영화 촬영장비까지 뒤섞여 만들어 내는 이국적인 분위기는 어쩐지 파리 시내 오래된 서점을 연상시켰다. 이 아름다운 스튜디오 주인장은 최근 한국전쟁부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까지 한국 현대사의 굵직굵직한 이야기를 다큐로 담아내 미국과 한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크리스토퍼 리 감독. 다음 작품 제작으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를 만나봤다.

#건축가에서 게임 개발자로

초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1975년 LA로 가족이민 온 그는 글렌데일에서 초중고를 마쳤다. 학창시절 미술에 두각을 나타낸 그는 캘폴리 포모나에서 건축과 경영학을 전공했고 대학 졸업 후인 1987년 디즈니사에 입사해 디즈니 테마파크 및 리조트 설계업무를 담당했다. 이후 유명 건축사무소로 이직해 미국 내 유명 호텔 및 리조트 건축에 참여했다. 그러다 1992년 대전 엑스포 전시관 설계에 참여하게 된다.



"대학시절까진 흔히 말하는 바나나였죠.(웃음) 겉은 동양인이지만 속은 하얀… 한국말도 잘 못하고 문화도 잘 몰랐으니까요. 그러다 서울 올림픽이 열리는 해 휴가를 내고 한국에 갔죠. 1주일 간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는데 그러면서 제가 한국인임을 알게 됐고 이후 한국 문화도 공부하고 한인 친구들과도 적극적으로 교류하게 됐습니다. 그러다 대전 엑스포가 열린다기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게 됐죠."

당시 그는 전시관 설계 외에도 90년대 한국에서는 생소한 분야였던 5D 영상물 제작에 참여하면서 영상물 제작에 큰 관심을 갖게 된다. 그래서 LA로 돌아와 1993년 영상물 제작 프로덕션을 설립했고 이후 미국, 러시아, 한국 등에서 제작된 애니매이션 및 영화 포스트 프로덕션(후반 작업) 감독 겸 프로듀서로 참여하며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이 다재다능한 젊은 예술가의 호기심이 여기서 멈출 리 만무. 1996년 그는 어려서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던 비디오게임 개발에 뛰어들었다. 이후 그는 10년간 PC게임 및 PDA/모바일 앱 15편을 출시하며 업계에 주목을 받았다. 그러면서 한국 대학들이 앞다퉈 그에게 강의 요청을 해왔고 그는 지난 12년간 서울대, 연세대, 성균관대, 한예종 등에서 특강과 워크숍을 이어오고 있다.

#다큐 감독이 되다

그의 도전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5년 전 그는 한국전쟁을 다룬 다큐멘터리 '페이딩 어웨이(Fading Away·fadingawaymovie.com)'제작을 시작했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작고한 부친을 생각하며 아버지의 역사를 되짚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시작하게 됐죠. 저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와 아버지 세대를 이어주며 소통할 수 있는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막막한 도전이었지만 그의 다큐 제작 이야기가 본지에 소개되면서 LA는 물론 타주에서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수백여 명의 한인들이 그에게 연락을 해왔다. 그러면서 한국전쟁 참전 종군기자였던 프랭크 윈슬로씨를 알게 됐고 그에게 각종 사진 자료들과 기사를 얻으면서 다큐 제작은 급물살을 탔다. 그리고 마침내 2013년 100여명의 한인 및 타인종 참전군인들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다큐멘터리가 탄생했다, 이후 한국전쟁 종전 60주년을 기념해 미 국방부 주선으로 그의 작품은 UCLA, USC, 하버드, MIT 등 미 대학 30여 곳에서 상영됐고 특강도 함께 진행됐다. 이후 그는 총 3편의 다큐를 더 제작했다. 탈북자로서는 처음으로 미 시민권자가 된 20대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아이 앰 그레이스(I am Grace·2014년)'를 비롯해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다룬 '더 라스트 티어'(The Last Tear·2015년), 한국전쟁에 참가한 미국 내 일본인 3세 6000여명에 관한 이야기인 '레스큐드 바이 페이트(Rescued By Fate·2016년)'가 그것. 특히 존스홉킨스대학 한미연구소와 공동으로 제작한 '더 라스트 티어'는 지금까지 115개의 영화제에 참가, 60여개의 상을 수상했는데 2015년엔 칸 단편영화제에서도 입선하는 등 세계적으로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진정한 행복을 위해

현재 그는 내년 상영을 목표로 중앙아시아에 거주 중인 고려인 150주년을 소재로 한 '힐스 오브 아리랑(Hills of Arirang)'과 1963년 한국 내 정식 입양기관을 통한 미국 입양 첫 사례인 5명의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다룬 '플라이트 버디스(Flight Buddies)'를 제작 중이다.

"나는 누구이고 어디서 왔는가 하는 질문을 들고 아버지 시대의 궤적을 쫓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네요.(웃음) 제 영화엔 정치적 관점은 없습니다. 다만 험난한 역사를 온 몸으로 살아온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고 관객들도 그 시대를 공감하며 함께 소통할 수 있길 바랐을 뿐이죠."

현재 그는 또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바로 할리우드 상업영화에 도전장을 내민 것. 그가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시나리오 '힐(Hill) 433'이 바로 그것이다.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2019년 상영을 목표로 현재 사전 작업 중이다. 이처럼 다큐 제작으로 분주한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도 그는 2015년 한국 전래동화를 모티브로 한 동화책 '더 클레버 스왈로우(The Clever Swallow)'를 집필해 '인디펜던트 퍼블리셔 북 어워드'에서 금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올해 한국 청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성공하고 싶니? 성공이 뭔지 알아?'를 출판하기도 했다.

"오랫동안 한국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인턴십을 제공하고 워크숍도 해오면서 한국 청년들이 극심한 경쟁에 치여 행복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됐죠. 그래서 이들에게 진정한 행복이란 부와 명예를 얻는 것이 아닌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순간순간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오늘이 마지막이 아닌 내일에 대한 설렘으로 잠이 안 오는 삶이라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지금 성공했다 자부하고 진심으로 행복하다 말한다.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순간이었다.


이주현 객원기자joohyunyi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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